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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 (일)

변곡점 맞은 미 대선…누가 되든 한국 부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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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사퇴로 한국 외교·안보 전략도 변곡점

경향신문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겸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 7월 24일 흑인 여대생 클럽 ‘제타 파이 베타’가 주최한 행사에 참여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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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미국 대통령선거지만 미국만의 선거는 아니다.’ 한국시간으로 지난 7월 22일 새벽 전해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재선 도전 포기’ 속보는 해당 명제가 모순이 아님을 보여준다. ‘세계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적합한지와 별개로 ‘미국 대통령이 누구냐’는 진영화·파편화된 국제질서에서도 여전히 최고의 관심거리다. 특히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에 편승한 일부 국가들에는 생존 문제로까지 확장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유럽의 우크라이나, 중동의 이스라엘 그리고 동북아시아의 한국이다.

실제로 한국이 직면한 안보 환경을 ‘종속변수(Dependent Variable)’로 놓으면 북한은 ‘상수(Constant)’, 미국 행정부는 ‘독립변수(Independent Variable)’가 된다. 과거 대북 ‘협상력’을 또 다른 ‘독립변수’로 만든 정부도 있었지만, 적어도 윤석열 정부에선 미국 외의 독립변수는 보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한국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누구이고, 어떤 한반도 정책을 쓰느냐’에 따라 생존 환경이 달라진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 사퇴로 미국 대선에 변곡점이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한국 외교·안보 전략에도 중대한 변곡점이 생겼다는 의미다.

바이든 대통령이 비운 대선후보 자리는 그의 러닝메이트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채울 것이 확실시된다. 오는 8월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는 해리스 부통령의 대선후보 추인식이 될 전망이다. 이미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공화당 후보로 나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일부 미국 언론 등을 중심으로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미국 대선은 아직도 100여 일 가까이 남았다는 점이다. 석 달 전, 바이든 대통령의 중도하차를 확신한 사람은 없었다. 또 간접선거와 승자독식 방식의 미국 대선에서는 전체 여론과 선거 승자가 같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새롭게 형성된 대선후보 간 대결 구도가 낯설지가 않다는 점도 짚어봐야 한다. 2016년 미국 대선도 ‘최초의 여성 대통령’과 ‘백인 남성 트럼프’의 대결이었다. 결과는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패배였다. 생존을 위한 다른 ‘독립변수’가 없는 한국은 해당 상황을 보다 냉정한 시각으로 지켜봐야 한다.

역전인가, 균형인가


올해 미국 대선이 주목받는 것은 이른바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s)’로 분류될 수 있는 여건에서 치러지기 때문이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에 따르면 특정 선거가 중대 선거로 인식되기 위해선 ‘두 후보 간 선명한 입장 차이’가 주요 요건이 된다.

미국 사회는 이미 노동, 이민, 성소수자 등 사회문화 현상에 대한 집단 간 입장차가 뚜렷하다. 각각의 현안을 두고 진보, 보수 정치 진영 역시 한 가지 입장을 정하고 대립하고 있다. 이를 이른바 ‘문화 전쟁(culture war)’이라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벌여온 대결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해리스 부통령도 자유로울 수 없다. 문제는 인도, 자메이카계 다문화 가정의 흑인 여성인 해리스 부통령의 ‘정체성’이 51 대 49로 판가름 나는 구도의 선거에서 장점이 될 수 있는가이다.

양극화된 사회에서 치러지는 전국단위 선거는 지지층을 최대한 결집하고, 상대방 지지층의 1%를 빼앗아오는 것으로 승패가 결정된다. 민주당의 2016년 패배와 2020년 승리 역시 해당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즉 바이든 대통령은 공화당 지지층의 결집을 와해할 만한 요소를 갖고 있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하상응 서강대 정외과 교수는 “고령의 백인 남성 이미지를 가진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당이 여성, 성소수자, 인종소수자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기에 적당했다”며 “민주당이 승리하기 위해선 다양성, 형평성, 포괄성(diversity, equity, inclusion: DEI)에 기반한 정체성 정치가 가져오는 역풍을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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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24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재선 불출마 결정에 대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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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바이든 대통령의 중도사퇴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는 점이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해리스 부통령의 부상과 함께 ‘정체성’ 정치는 다시 시작됐다. 이는 자연히 지지층 결집을 불렀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이 이를 방증한다. 동시에 이는 서서히 반대쪽 진영의 결집도 부른다. 이들은 소수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주류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논리로 무장한다. 양 진영이 결집한 상태에서 치러진 전국단위 선거의 결과는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한 2016년 대선이다.

선거 공학적으로 불리한 정체성 정치를 탈피하기 위해 해리스 부통령 역시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공식 석상에서 ‘여성’, ‘흑인’을 강조하기보다 ‘전직검사(해리스 부통령) 대 범죄인(트럼프 전 대통령)’의 구도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주류 언론, 민주당 지지층은 여전히 정체성 정치에 더욱 관심을 갖고 홍보하고 있다. 서 교수는 “지금 나오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는 해리스가 선거에서 우위를 점했다가 아닌, 이제야 트럼프와 지지율이 비슷해졌다로 해석해야 한다”며 “결국 승부처인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등 중·서부 3개 경합주에서 승리해야 하는데 백인, 노동자 계층 등과 접점이 없는 해리스가 이들을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하 교수 역시 “해리스 부통령이 승리하기 위해선 바이든 정부가 지난 4년간 추진해온 백인 및 중산층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을 얼마나 잘 계승하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은 양 진영의 대외전략이 일치하는 역설을 만든다는 점이다. 민주당, 공화당 할 것 없이 보다 강경한 ‘미국 우선주의’의 확립이다.

부담 늘어나는 한국


민주당 정권의 연장 가능성이 녹록지 않은 상황은 한국의 부담을 키운다. 이는 실상 ‘민주당의 동맹’과 ‘공화당의 고립’이 같은 방향을 지향하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가 요구가 바이든의 동맹 간 ‘경제협력 강화’로 치환되는 식이다. 이는 모두 미국으로 자본이 흘러가는 방향이다.

바이든 행정부 출신인 해리스 부통령 역시 외교·안보정책이 크게 다를 수 없다. 그가 당선되면 중국에 대한 과학·기술 공여 금지와 동맹 간 공급망 재편이 지속될 전망이다. 선거가 어려워질수록 동맹을 향한 기여 요구가 커질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도 한반도 문제에 있어선 바이든 대통령과 같이 사실상 “입장 없음”이 유지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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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7월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월터 E.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공동취재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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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한반도 문제의 현상 변화 측면에선 트럼프의 복귀가 나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7월 18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북한 김정은과 잘 지냈다. 많은 핵무기를 가진 누군가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가 재집권하면 나는 그(김정은)와 잘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 간 개인적 친분을 전제로 한 발언이지만 이를 북·미, 남북·미 대화로 풀어낼 수 있느냐는 한국 정부의 해결 의지, 역량에 달렸다. 이를 두고 미국을 방문 중인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미국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이야기는 트럼프와 김정은 간의 또 다른 정상회담과 같은 인게이지먼트(관여)가 가능할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고 평가절하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도 분명히 있음에도 그의 발언에 대한 대비는 하고 있지 않는다는 의미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해리스 부통령이든, 트럼프 전 대통령이든 한반도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작다. 어느 쪽이 당선되든 안보를 미국에 편승한 상황에서 한국의 부담은 늘어날 전망이다. 결국 ‘문제해결’이 아닌 ‘현상유지’에도 추가 비용이 드는 셈이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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