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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 (일)

[설왕설래] 웃는 은행과 현금 부자들, 우는 ‘영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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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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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 2년11개월만에 최대 폭 증가’, ‘우리나라 가계빛 세계 4위’, ‘상반기 주택담보대출 27조원 증가, 3년만에 가장 큰 폭’···. 가계빚 증가에 대한 경고음이 하루가 멀다하고 나온다.

사람 심리가 그렇다. 주택 가격이 떨어졌을 때 사면 좋으련만. 집값 하락기에는 기다리면 더 떨어질 거라고 믿고 구매를 미룬다. 그러다가 주택 가격이 상승할 때 따라붙는다. 자칫 상투를 잡기도 한다. 2020년 말부터 부동산 가격이 급등할 때 그랬다. 너나 없이 주택 구입을 서두르면서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늘었다. 1∼2%의 저금리로 대출에 부담도 없었다. 20∼30대 젊은층까지 ‘영끌’에 나섰으니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가팔라질 수밖에 없다.

2022년 6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밟으면서 여기저기서 ‘악’ 소리가 났다. 미국 금리를 좆아가다보니 국내 대출금리가 6∼7%까지 치솟았다. 집을 사면서 3∼4억원만 빌렸어도 200만원 넘는 원리금을 갚아야 하니 가계들로선 감당하기가 벅차다. 허리띠를 졸라매 외식과 비필수품 등 구매를 줄일 수밖에 없다. 이른바 ‘존버’에 들어간 가계가 많으니 경기가 살아날 리 없다.

은행들은 저금리든, 고금리든 가만히 앉아 있어도 돈이 굴러 들어온다. 저금리 때에는 대출이 팍팍 늘어나니 이자수익이 급증한다. 고금리 시기가 되더라도 ‘나는’ 대출금리에 ‘기는’ 예금금리로, 예대마진의 꿀맛을 톡톡히 본다. 그러니 연말이면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것 아니겠는가.

아파트를 위주로 하는 주택담보대출은 떼일 염려가 전혀 없다. 정부가 가계빚 관리라는 명분으로 은행이 손쉽게 수익을 내게끔 판을 깔아줬다. 10여년전부터 일시 상환이나 거치 기간엔 이자만 내다가 원리금을 갚는 방식의 대출을 원리금 균등분할상환 방식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했다. 정부가 이자에 원금까지 따박따박 갚게 해준 셈이다. 고금리 시기만에라도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가계 부담을 줄여주면 좋을텐데 말이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어떤가. 이런 규제로 인해 서울에선 10억원 짜리 아파트에도 대출금이 5억원을 넘지 않는다. 은행은 대출 원금의 110∼120%를 담보로 잡는다. 메가톤급 경제 위기가 아니고서는 은행이 도저히 돈을 떼이지 않는 구조다.

최근 다시 집값과 가계대출 움직임이 심상찮자 금융당국이 대출금리를 올리도록 유도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29일부터 주택 등 부동산담보대출 금리를 0.2%포인트 올리기로 했다. 다른 은행에서 빌린 주담대를 국민은행으로 갈아타는 대환 대출도 제한하기로 했다. 가계대출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라고 하니 다른 은행 동참은 시간문제다.

미국의 피봇(pivot·통화정책 전환)이 임박해 대출금리를 내려야 할 판인데, 부동산 시장까지 고려해야 하는 당국의 사정이 딱하다. 결국 금리가 올라 은행들 수익은 더 불어나게 생겼다. 대출이 꽁꽁 막혔으니 경쟁자 없는 시장에서 알짜 부동산을 ‘줍줍’한다는 현금 부자들은 또 웃게 생겼다.

박희준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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