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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3 (월)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 끊어"…결국 자기 자신까지 죽인 살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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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변호사의 ‘죄와 벌’]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죗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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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추격자’ 포스터. 배우 하정우가 연쇄살인범 역을 연기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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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왜 사이코패스 살인마 같은 사람들을 사형에 처하지 않는가 하는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최근에 사회적 충격을 준 사이코패스로는 정유정이 꼽힌다. 정유정(1999년생)은 2023년 5월에 과외 교사 아르바이트 중개 앱에 가입한 뒤 중학교 3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인 척하며 영어 과외 교사를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한 20대 여성이 거리가 멀다고 거절하자 정유정은 스스로 교복을 입고 흉기를 든 채 그 여성 집으로 찾아가 그 여성의 목과 가슴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시체를 토막 내어 여행용 캐리어에 넣고 야산에 버렸다.

사이코패스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유영철 사건이다. 유영철(1970년생)은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부유층 노인이나 출장마사지사 여성 등 도합 20명을 살해한 인물이다. 유영철은 자신의 뒷모습이 CCTV에 찍혀서 수배 전단에 오르자 출장마사지사들이나 전화방 도우미들을 집으로 부른 다음 여성들의 머리를 해머로 때려죽이고는 시신을 토막 내서 암매장하기 시작했다(영화 ‘추격자’에서 배우 하정우가 흰 팬티를 입고 이 역할을 섬뜩하게 해냈다). 그의 잔인하고 끔찍한 수법과 기괴한 행태는 지면에 옮기기가 망설여질 정도다. 그가 반젤리스의 ‘Conquest of Paradise’란 음악을 들으며 피해자들의 시신을 훼손했다는 사실 쯤은 극히 점잖은 축에 든다.

프로파일러 사이에서 역대 가장 지독한 사이코패스로 꼽히는 인물은 1969년생 정남규다. 그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14명을 살해하고 19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그는 수사와 재판 중에도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 “더이상 살인을 못 할까봐 조바심이 난다” “절도, 강간, 살인 중에서 살인이 가장 짜릿하다” “마음속에 항상 웅웅거리는 무엇인가가 저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오르고 있는데 오로지 살인을 했을 때만 고요하게 가라앉는다”고 말했다. 정남규는 2007년 4월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생활을 하던 중 2009년 11월 구치소 거실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죄책감에 따른 행동이라기보다 더이상 살인을 못하게 되자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상대로 살인을 한 것이라는 프로파일러의 분석까지 나왔다.

한국 등 28개국 사형제 있지만 집행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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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마사지사 등 2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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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사람은 ‘우 순경 살인사건’의 주인공 우범곤(1955년생)이다. 1982년 4월 낮잠을 자던 파출소 순경 우범곤은 동거녀가 그의 몸에 붙은 파리를 잡으려다 잠을 깨우는 바람에 화가 나 술을 마신 뒤 동거녀와 그녀의 가족을 폭행한 다음, 예비군 무기고에 있던 M2 카빈총 2자루와 수류탄 8개를 탈취해서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눈에 띄는 마을 주민들 30여명을 무차별 살해했다. 그에게 목숨을 잃은 사람은 62명, 사건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한자리에서 죽인 것으로 기네스북까지 올랐다. 그는 다음 날 새벽 5시 반경 어느 민가에 들어가 잠자던 일가족 5명을 깨운 뒤 수류탄 2발을 터뜨렸다가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자신도 함께 죽었다.

변호사가 되고 보니, 이런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를 변호하게 되면 어떤 심정일까 상상해보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 공분을 야기하는 범죄자의 변호인에 대해서도 악인을 변호한다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나쁜 범죄자라도 자신의 범행 이상으로 처벌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조차도 어지간하면 유영철, 정남규, 정유정 같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를 변호하고 싶지는 않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들도 교화가 가능할까. 사람의 일에 100퍼센트는 없는 것이라지만, 누구도 이런 사이코패스가 교화될 것이라고 믿고 자신의 이웃으로 기꺼이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질문이 나온다. 교도소는 범죄자를 교화해서 사회로 돌려보내는 곳인데, 교화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없다면 교화가 무의미하므로 사형에 처해야 하는 것 아닐까.

현실의 제도 중에서 사형 제도만큼 찬반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제도가 드물다.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멕시코, 콜롬비아 등 2018년 기준 106개국이 사형제를 폐지했다. 반면 미국, 일본, 중국, 대만, 태국, 예멘 등 57개국은 사형제를 유지하면서 집행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러시아, 스리랑카, 미얀마 등 28개국은 사형제는 존재하지만 집행은 하지 않는 나라로 분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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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과외 앱으로 만난 20대 여성을 살해한 정유정.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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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엠네스티 등 인권단체, 종교단체들은 우리 정부에 사형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사형제를 강력하게 반대하며 사형제 국가와의 교류를 제한한다. 사형반대론의 주된 논거는 인간의 생명은 다른 어떠한 가치보다 중요하므로 어떠한 이유로도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정당화되지 않으며, 국가는 중범죄인이라도 끝까지 교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에 오판 가능성이 있다거나 사형제가 범죄를 막는 데 효과가 없다는 점도 흔히 언급되는 근거다.

영화 중에서도 사형제에 반대하는 뉘앙스를 풍기는 경우가 다수다. 영화 ‘데드 맨 워킹(1996)’은 사형집행 과정을 가장 실감나게 보여주는 영화다. ‘데드 맨 워킹’은 사형수가 집행장으로 갈 때 주저하는 걸음걸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잔혹한 강간살인범이자 인종차별주의자이고 나치를 신봉하며 반성하지 않는 매슈가 사형을 앞두고 인간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영화는 아무리 악독한 죄인이라도 국가가 사형에 처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형을 다룬 우리나라 영화로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이 있다. 불우하게 컸고, 그 불우함으로 인해 범죄자와 어울릴 기회가 생겼고, 다른 공범의 죄까지 짊어진 채 사형장에서 생을 마감하는 주인공 윤수의 모습을 보면 (게다가 그 주인공이 강동원이라면) 많은 사람이 사형에 찬성하기 어려운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사형찬성론의 논거 또한 지면이 부족할 정도로 들 수 있다. 물론 사람의 생명은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가치 있는 생명을 무참히 죽인 사람은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정의의 기본적인 요청이다. 정의의 관점에서는 아무리 긴 종신형도 사형을 대체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지금의 사형은 과거처럼 사지를 찢어 죽이거나 불에 태워서 죽이는 방식처럼 고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므로, 사형을 두고 과거의 신체형과 같이 야만적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유럽 국가들이나 남미 국가들이 사형제를 폐지한 것은 기독교 전통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까지도 끝까지 교화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국가에게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이상적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사형제가 범죄 억제에 효과가 있다는 통계도 있다.

법무장관 사형집행 명령은 재량 아닌 의무

우리나라 법률상 사형은 법무부장관의 명령에 의하여 집행하는데, 장관은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명령해야 하고, 명령이 있으면 5일 이내에 집행해야 한다. 재량이 아닌 의무이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도 1996년과 2000년에 사형제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런데도 행정부가 이를 집행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 정의와 삼권분립원리에 반하고, 유족에게 근거 없이 고통을 주는 것이며, 법과 재판의 권위를 전체적으로 손상시키며, 흉악범죄 억제력을 발휘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란 비판도 만만치 않다.

사형제에 대한 찬반이 맞서는 가운데, 사형수 중에서 유영철, 강호순과 같이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만을 집행하자는 말도 나온다.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사형수 중에서 일부만 선별해서 집행하는 것은 그 근거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 이래 사형집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 59명의 사형수가 있다. 법과 현실의 딜레마, 법리와 정책의 괴리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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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민 변호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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