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권 짓밟는 대통령 등장” 경고
대법관 종신제 폐지도 개혁안 담겨
해리스도 지지… 대선 쟁점화 시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9일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린든 존슨 대통령 도서관’에서 민권법 제정 60주년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 오스틴=로이터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연방대법원을 개혁 대상으로 지목했다. “극우 세력의 무기로 전락했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진짜 표적은 11월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나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4개 사건으로 기소돼 사법 리스크에 직면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경화한 대법원으로부터 면책특권을 받아 무소불위 우파 대통령으로 군림하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게 바이든 대통령의 메시지다.
‘법 위에 아무도 없다’는 원칙
바이든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텍사스주(州) 오스틴에 있는 ‘린든 존슨 대통령 도서관’에서 행한 민권법 제정 60주년 기념 연설을 통해 대법원 개혁을 공식 제안했다. 구체적 방안은 △대통령 면책특권 제한을 위한 헌법 개정 △대법관 종신제 폐지 △구속력 있는 대법관 행동 강령 제정 등 세 가지다.
연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몇 년간 대법원의 극단적 판단이 오랜 기간 확립된 시민권 원칙과 보호를 약화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연방 차원 임신중지(낙태)권을 인정했던 ‘로 대 웨이드’ 판례(1973년 1월)를 49년 만에 폐기한 2022년 6월 24일 판결, 대통령의 재임 중 행위에 광범위한 형사상 면책특권을 부여한 올해 7월 1일 결정 등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특히 대통령 면책특권 확대와 관련, 바이든 대통령은 “법원이 극단적이고 견제받지 않는 (보수) 의제 추진을 위한 무기로 이용되고 있다”며 “대통령이 그 면책권을 갖고 얼마나 멋대로 시민권과 자유를 짓밟을 수 있을지 상상해 보라”고 경고했다. 명백히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연설에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국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도 “이 나라는 대통령이든 대법관이든, 아무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원칙 위에 건국됐다”며 개헌을 요구했다. 이어 “개헌안은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 저지른 범죄에 어떤 면책권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29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앰블러에서 열린 유력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선거 유세에는 조시 셔피로(왼쪽) 펜실베이니아 주지사와 그레첸 휘트머(오른쪽) 미시간 주지사가 참석했다. 셔피로 주지사가 휘트머 주지사의 연설을 듣고 있다. 앰블러=AFP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실현 어려워도 선거에 도움
그러나 당분간 개혁안의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단 대통령 면책권 제한에는 개헌이 필요하다. 대법관 종신 임기도 헌법에 규정돼 있다. 하지만 개헌은 발의부터 까다롭다. 상·하원 각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양분된 상원에서도, 공화당이 다수당인 하원에서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엑스(X)에 “(대법원) 결정이 마음에 안 든다고 건국 이래 미국을 이끌어 온 (사법) 시스템을 바꾸려는 시도는 위험한 도박”이라며 “하원 도착 즉시 (개혁안은) 폐기될 것”이라고 썼다.
바이든 대통령도 알고 있다. 미국 온라인 매체 액시오스는 “백악관은 민주당 소속 딕 더빈 상원 법제사법위원장과도 입법이 필요한 이 일을 상의하지 않았다”며 “대선 전 메시지 발신이 원래 의도라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2020년 대선 결과 부정의 상징인 ‘거꾸로 성조기’를 게양한 새뮤얼 얼리토, 공화당 후원자 등으로부터 뇌물성 향응을 받은 클래런스 토머스 등 보수 성향 대법관들의 일탈은 대선 쟁점으로 삼기에도 좋다.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레이스 하차 후 민주당 대선 후보로 유력해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곧바로 지지 성명을 내고 “법원 신뢰를 회복하며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개혁”이라고 거들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