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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 (월)

‘아침 이슬’ 보다 김민기 [노원명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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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가수 김민기


염천에 이른 감이 있지만 가을 노래를 생각한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가을 노래에는 여러 곡이 있다. 가을 초입에 많이 불리는 ‘가을이 오면’, 낙엽 쌓일 때 들어야 제맛인 ‘가을 편지’가 대표적이다. 유명하다 보니 원작자 외에 여러 가수가 불렀고 리메이크곡이 원작의 명성을 뛰어넘기도 한다. ‘가을이 오면’은 1987년 발표된 이문세 4집 앨범에 수록된 노래인데 요사이 라디오에선 서영은의 리메이크곡을 더 많이 듣게 된다. ‘눈부신 아침 햇살’ ‘호숫가 물결 잔잔한’ 처럼 미세한 초가을 대기 변화와 그 공기 입자속 설렘을 전달하는 데는 경쾌한 여성 목소리가 더 호소력 있게 다가올 때가 있다. 물론 취향 문제다.

‘가을 편지’는 김민기가 작곡하고 나중에 직접 부르기도 했다. 놀랍게도! 왜 놀라운가 하면 한국 사람 십중팔구는 이 노래를 이동원의 음성으로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김민기 골수팬들은 화를 내겠지만 ‘이동원의 가을편지’가 ‘김민기의 가을편지’보다 열배쯤 유명할 것이다. 나도 이동원에서 시작해 김민기로 거슬러 올라가 듣게 된 사람 중 한명이다. 이동원의 ‘가을 편지’가 절창에 가깝다면 김민기가 부르는 ‘가을 편지’는 수수하다. 둘 다 제각각 아름다움이 있다. 우열을 가릴 이유는 없지만 꼭 한곡만 들어야 한다면 나는 이동원 쪽이다.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려면 이동원처럼 코트깃도 세우고 좀 멜랑콜리한 편이 어울린다.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김민기의 창법은 너무 정갈해서 그 마음이 낙엽에 흔들릴 것 같지 않다.

김민기 하면 ‘아침이슬’이다. 그러나 나는 소싯적부터 이 노래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노래가 너무 거대담론적인 것이다. ‘긴 밤’ ‘설움’ ‘광야’ ‘묘지’ ‘시련’ 같은 은유는 좀 뻔하다. 1970년대 장발족에게나 통할 메시지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에게 ‘아침이슬’은 너무 모던한 노래였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김민기가 불렀을 때 최고인 노래’는 ‘늙은 군인의 노래’라고 생각한다. 김민기가 나지막하게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고 물어올 때 마다 변변찮은 인생을 생각하고 그 변변찮음을 기꺼이 용납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는다. 오십이 넘은 남자들에게 김민기는 큰 선물을 하고 떠났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로 시작하는 노래 ‘상록수’는 정치인 노무현이 불러 더 유명해진 노래다. 노무현이 대통령이었을 때 그에게 오만정이 떨어진 사람들에게 ‘상록수’가 그와 동일시되던 시절도 있었다. 노무현은 떠났고 김민기도 떠났지만 노래는 남았다.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머리 위에 이글거리나’. 새해 벽두 방송국에서 자주 내보내는 노래 ‘내나라 내겨레’를 들으면 한해 내내 잊고 살았던 조국이 생각난다. 그때 한번 생각하는 것이다. 김민기는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큰 선물을 했다.

큰 사람이 떠나면 큰 부음기사가 뜨고 아주 크면 신문은 부음 사설을 쓴다. 김민기가 별세한 후 보수지 한곳과 진보지 한곳에서 그의 부음 사설을 보았다. 특이한 일이다. 나는 김민기가 그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김민기의 ‘진보 진영’ 친구들이 쏟아내는 헌사가 너무 오글거린다는 느낌도 받았다. 다만 김민기는 인생을 잘 산 사람 같다. 그에겐 재능이 있었고 그 재능을 백배 천배 확장한 것은 그의 인격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말과 욕심을 아낌으로써 주변을 위로한 사람. 그의 노래처럼 작게 부름으로써 더 크게 부른 사람. 그런 인격이 탄생하고 숙성한 것이 우연한 천재가 아니라 하나의 지적 공간으로 존재하였으면 좋겠다. 한국 지식인의 품성에 대해 회의할 때 ‘다 그런 것은 아니다’는 위로를 안겨주고 김민기는 떠났다. 그래서 나는 ‘아침 이슬’보다 김민기가 몇배 몇십배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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