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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단독] '넥슨 집게손 마녀사냥' 피해자 "경찰이 페미 공격 정당화…일상이 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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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넥슨 집게손 마녀사냥' 피해자 A씨가 자신을 향한 비난을 "논리적 귀결이 인정된다"고 정당화한 경찰의 수사 결과에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프레시안> 인터뷰를 통해 호소했다. 그러면서도 A씨는 "모든 창작자들이 손가락 모양을 검열해야 하는 억지 사태를 하루빨리 멈추게 하고 싶다"라며 경찰에 이의를 신청하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관련기사 : [단독] '넥슨 집게손 마녀사냥' 사이버불링 최소 3500건…경찰 "실익없다" 수사 종결)

A씨가 온라인상에서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넥슨코리아가 운영하는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홍보 영상에 집게손이 들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였다. 해당 영상은 A씨가 속한 애니메이션업체 B사가 제작했는데, 과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페미니즘 관련 게시물을 올렸던 A씨를 두고 '남성을 비하하기 위해 어색한 손동작을 삽입했다'는 주장이 남성중심(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졌다.

그러나 논란이 된 장면을 그린 애니메이터는 B사의 외주를 받은 40대 남성 작가였으며, 집게손이 그려진 다른 장면 또한 남성 작가들의 작업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씨를 향한 집단 린치는 계속됐다. 사건 발생 이후 두 달여간 A씨 측이 수집한 온라인 괴롭힘은 3500여건에 달했으며, 성적 모욕 등의 괴롭힘은 올해까지 이어졌다.

A씨는 괴롭힘 중 가장 심각한 308건을 각각 267건과 41건으로 나눠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집게손은 그림을 그리다 보면 들어가는 자연스러운 손동작"으로, "모든 창작자들이 집게손을 검열해야 하는 상황을 하루빨리 멈추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초경찰서는 "집게손을 기업광고에 사용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것이 현재의 풍토", "A씨는 관련 그림 담당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나 페미니스트를 동조하는 듯한 사실이 있다", "수사 실익 없음이 명백하다" 등의 이유를 대며 A씨가 고소한 41건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A씨는 서초경찰서의 불송치 통지서를 받은 뒤 자신의 상태에 대해 "하루 종일 업무에 손을 댈 수 없었다"며 현재까지도 "사고가 멈추고 물건과 기억들을 쉽게 잊어버리며, 무기력증을 겪는다"고 했다.

A씨는 자신을 향한 집단 괴롭힘을 "논리적"이라며 가해자들의 편을 들어준 경찰의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가해자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지 않으면 익명에 힘입어 타인을 괴롭히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날 뿐더러 괴롭힘의 수준도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가해자들이 처벌받을 수 있도록 이의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지난 2일 서울 구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A 씨 인터뷰 전문이다.

프레시안

▲'넥슨 집게손 마녀사냥' 피해자 A씨 ⓒ프레시안(박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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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손을 그렸다는 의심만 받아도 괴롭힘 당하는 일이 괜찮다?"

프레시안 : 현재 건강상태는 어떠한가.

A : 사건 발생 이후 계속해서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심한 우울증을 겪었고 지금까지도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약을 받고 있다. 또한 사람들을 만나는 게 너무 두려워졌는데, 밖에 나가면 누가 나를 알아볼까 무섭고 옆에 사람이 지나가기만 해도 나를 보는 것 같아 걸음이 빨라지곤 한다.

특히 수사 결과 통지서를 받은 날에는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지금도 종종 생각이 멈추고 물건과 기억을 잊어버린다. 무의식적으로 계속 눈물이 나고, 앞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막막해 두려움을 느낀다.

프레시안 : 가해자들을 향한 고소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A : 집게손은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그림을 그리다 보면 들어가는 자연스러운 손동작이다. 그러나 집게손이 비난의 대상이 되면서 나를 포함한 업계 창작자들이 손 모양을 전부 검열해야 하는 시기가 와버렸다. 이런 억지 사태를 멈추기 위해서는 가해자들이 벌을 받도록 고소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경찰은 "집게손을 기업 광고에 사용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것이 현재의 풍토"라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A : 집게손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논란이 되고 있는 현재 상황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집게손을 그렸다는 의심만 받아도 심각한 수준의 괴롭힘을 당하는데 수사기관이 나서서 '업계 금기인 사안이니 창작자에게 비난을 가해도 괜찮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경찰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가해와 피해를 잘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경찰은 내가 집게손을 그리지 않았다면서도 SNS에 페미니즘 관련 게시물을 올렸다는 이유로 공격을 합리화했다. 이는 '페미니스트는 공격을 당해도 된다'는 말과 같다.

프레시안 : 이의 제기를 신청할 계획인가.

A : 그렇다. 경찰이 수사를 포기한다고 고소를 중단하면 가해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죗값도 받지 않게 된다. 그러면 익명에 힘입어 타인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수위도 세질 것이다. 누군가는 가해자들을 붙잡고 벌 받게 해 본보기로 보여줘야 한다. 불송치 결정에 앞날이 무섭고 두렵지만, 그래도 끝까지 싸워야겠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넥슨 집게손 마녀사냥 피해자 A씨가 'X'를 통해 전달받은 성적 모욕 발언 ⓒA씨 제공



프레시안 : 고소한 사건 중 꼭 처벌되길 바라는 사례들은 무엇인가.

A : 내가 '페미니스트'라서 영상에 집게손을 넣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집게손을 그렸다는 이유가 아니라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공격했다. 커뮤니티뿐 아니라 SNS를 통해 패륜적이고 성적인 욕설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페미니스트를 하나의 약점으로 보거나 페미니스트는 비난을 당해도 싸다며 괴롭힘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

프레시안 : 게임업계를 비롯해 국내에서 벌어지는 집게손 마녀사냥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 집게손은 여러 영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손동작에 불과하다. 국회의원들이 집게손 모양을 취한 사진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일상에서도 자주 쓰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게손 마녀사냥은 게임업계를 넘어 실사 광고에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를 막지 못하면 순간적인 장면을 캡처해 특정 의도를 가진 집게손을 발견했다며 창작자를 괴롭히는 현상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우리 사회가 마녀사냥의 심각성을 깨닫고 경찰과 기업이 나서 하루빨리 이 같은 억지 사태가 끝났으면 좋겠다.

[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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