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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이영조 박사의 정치·경제 '까톡'] 우크라이나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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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이영조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아시아투데이는 8월 8일부터 '문명의 충돌'로 저명한 새뮤얼 헌팅턴의 지도 아래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진실화해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이영조 전 경희대 교수(현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의 칼럼을 <이영조 박사의 정치·경제 '까'톡>이란 문패를 달고 게재한다. 여기에서 '까'톡이란 '까놓고 말한다'는 의미로 비록 정치적으로는 인기가 없을지 모르지만 진실에 대한 직설적인 이야기(Politically Incorrect Straight Talk)를 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편집자 주>

미국 차기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유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하루 안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공언해 왔다. 저격 사건 이후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치솟자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러시아와 평화 협상을 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러자 우리나라 시장도 한때 뜨겁게 반응했다. 한동안 하락만 하던 우크라이나 재건 관련주들이 며칠 동안 폭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많은 사람들이 고대하는 것처럼 곧 끝날 수 있을까? 결론부터 까놓고 이야기하면 ('까톡'하면) 그렇지 않다는 게 답이다. 곧 끝난다면 그것은 우크라이나와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의 돈바스 등 지역을 점령하고 러시아의 행정구역(oblast)으로 편입한 현재 상태를 '기정사실(fait accompli)'로 수용할 때만 가능한 일로 보인다.

우선 상기할 것은 이 지역 주민의 압도적 다수는 러시아인과 러시아에 동화된 우크라이나인이라는 점이다. 이 점에서 2014년 주민투표로 러시아와의 합병을 선택한 크리미아 지역(러시아 해군기지가 있는 세바스토폴 연방시와 크림공화국)과 유사하다. 주민투표와 같은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면 이들은 러시아를 선택할 것이 분명하다.

다른 한편 러시아로서도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은 전략적인 요충지이다. 크리미아 반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우크라이나가 급격히 친(親)서방으로 선회하면서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러시아 입장에서 친서방 우크라이나는 '로디나'(조국)를 위협하는 창이 되었다.

바로 이 때문에 러시아는 평화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우크라이나군의 동부지역 철수, 적대행위 중지, 그리고 NATO 불가입을 내걸고 있다. 젤렌스키의 평화 회담 제의에 응하지 않는 것도 이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전선 상황은 우크라이나에 불리하다. 전쟁은 처음부터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었다. 서방 국가들의 도움 덕분에 2년 반이나 버티긴 했지만 전선은 교착상태이고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러시아도 지루한 소모전으로 바뀌고 있는 전쟁으로 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지만 우방의 원조 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어려운 우크라이나보다는 형편이 낫다. 그리고 서방 언론에서는 잘 언급되지 않지만 지금 러시아는 서방의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전시특수로 경제가 활황이다. 전쟁 피해, 종전 후 예상되는 경기 급락과 그에 따른 정치적 여진까지 고려하면 푸틴 대통령이 전략적인 목표에서 물러설 가능성은 없다고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보기에 서방 국가들의 행동이 마냥 미덥지만은 않다. 과연 러시아를 격퇴할 의지나 의도는 있는 것인지 의심할 여지가 충분하다. NATO가 개입하면 핵무기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푸틴 대통령의 엄포도 있고 해서 군대를 지원할 수 없으면 무기와 탄약의 지원이라도 파격적으로 늘려야 하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단지 러시아가 이미 점령한 동부지역 너머로 진격하는 것을 막을 정도의 지원만 하는 듯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우크라이나에 제공된 10대 미만으로 추정되는 F-16 전폭기이다. 러시아의 강력한 방공망을 고려하면 이 정도로는 러시아군을 현재의 전선에서 저지하는 약간의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전세를 역전하는 게임 체인저는 결코 되지 못한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계산으로는 러시아에 제대로 맞서기 위해서는 F-16 128대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렇게 조금씩 제공되는 군사 원조는 현상을 타파할 수도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게 만드는 일종의 희망고문이다. 과거 브레즈네프가 미국과 대체적인 힘의 균형을 달성했다고 큰소리 치자 미국이 군비를 늘려 구소련으로 하여금 능력 이상으로 군비 지출을 하게 만들어 구소련 경제가 회복 불능의 골병이 들게 한 적이 있는데, 지금도 서방은 우크라이나인의 피와 땀과 눈물을 제물로 러시아 경제가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게다가 미국 대선에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여전히 큰 상황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영토 일부 포기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하지만 영토 할양은 젤렌스키의 표현대로 '매우,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우크라이나 헌법상 정부가 결정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민투표를 통해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영토 할양에 동의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게다가 서방 국가들도 러시아가 외성을 넘어 내성 문 앞까지 오는 것에는 반대할 공산이 크다. 군사 원조를 조금 늘려 우크라이나가 외성에서 계속 싸우도록 만들 것이다. 반면 러시아의 푸틴은 전략적 그리고 정치적 이유에서 완강하게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손에 넣으려 할 것이다. 결국 이변이 없는 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 동안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영조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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