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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강제 징용' 흔적…인천 미쓰비시 줄사택 국가유산 등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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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남은 유일한 일제 강제동원 흔적"

"낙후된 주거지역 없앤다"…한때 철거 위기

일본의 '강제동원 역사 부정' 반박 증거 역할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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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인천 부평구 미쓰비시 줄사택. 부평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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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 노역 흔적이 남아 있는 '부평 미쓰비시 줄사택'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보존된다.

한때 철거한 뒤 공용주차장을 조성하는 사업이 추진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역사학계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뒤늦게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앞으로 일본 정부의 '식민역사 지우기' 시도에 반박하는 자료로 역할 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 남은 유일한 일제 강제동원 흔적"

10일 인천 부평구 등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은 최근 인천 부평구 '미쓰비시 줄사택'을 국가등록 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부평 미쓰비시 줄사택은 인천 부평구 부평동 760-285 등 34필지(1329㎡)에 있는 시설물로, 1939년 제작됐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제강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묵었던 합숙소이자, 국내에 유일하게 남은 미쓰비시제강의 강제 동원 흔적이다. 당시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병참기지화를 추진하면서 '조선인 강제 동원'을 본격화했다. 연립주택과 같이 여러 호의 집들이 줄지어 있어 '줄사택'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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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 미쓰비시 줄사택.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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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은 이 줄사택이 건축 당시 일본이 한반도를 병참 기지화하면서 건축재료를 제한한 흔적이나 당시 시대상, 생활상 등을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방 이후에도 이곳은 도시 노동자들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의 주거공간으로 사용돼 역사(歷史)와 주거사(住居史)적 측면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역사학계는 이곳이 그동안의 국가등록문화유산과 달리 한국인을 강제동원한 기업과 연관됐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보고 있다.

그동안 일제식민지 전쟁유적으로 등록된 국가등록문화유산은 지하시설이나 야산 등 방치된 '시설물'이었는데 부평 미쓰비시 줄사택은 일제의 군 지정 공장으로서 군수물자를 생산한 '기업'과 연관된 시설물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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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에서 내려다 본 미쓰비시 줄사택. 부평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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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후된 주거지역 없앤다"…한때 철거 위기

보존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시설물이지만 그동안 관리가 제대로 안되고 갈수록 슬럼화되면서 한때 철거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관할 지자체인 부평구는 2018년 이곳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주민공동이용시설과 행정복지센터를 지었고, 남은 줄사택은 매입해 공용주차장으로 만들 계획을 추진했다.

하지만 국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제 강제동원의 흔적을 보존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와 역사학계의 반발을 사면서 중단됐고 이후 부평구는 2021년 주민과 시·구의원, 역사학 교수, 도시공학 박사 등으로 구성된 자문기구 성격의 협의회를 만들어 향후 대책을 논의했고 2022년 말 이곳을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부평구가 나서 지난해 5월 미쓰비시 줄사택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해달라고 문화재청에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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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열린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관련 정부 규탄 기자회견' 모습. 참가자들은 우리 정부가 일본의 강제동원 역사 부정에 동조했다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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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강제동원 역사 부정' 반박 증거 역할 기대

미쓰비시 줄사택은 일본의 '식민지 역사 지우기'를 반박하는 증거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일본의 니카다현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니가타현 북서쪽 사도섬에 있는 사도광산은 도쿠가와 막부가 '에도시대'를 연 1603년부터 일본 최대 금 생산지로 명성이 높았다.

1918년 미쓰비시광업이 관리권을 인수한 이후 1939년부터 조선인 강제 동원이 본격화했고, 1941년부터 1945년까지 '태평양전쟁' 시기에는 광산 활동 초점이 전쟁 물자 확보에 맞춰졌다. 이 과정에서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은 혹독한 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 6월 일본에서 출판된 '사도광산·조선인 강제노동 자료집' 등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사도광산에 동원된 조선인 수는 1500명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조선인들은 일본 정부와 기업의 감시 속에 '목숨을 건 노동'에 시달렸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20세기 일제강점기 시절의 역사를 왜곡했다. 일제의 조선인 강제 동원은 1939년부터 본격화됐지만 일본 정부는 '징용'이 1944년 9월부터나 시행됐다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식민지 역사 지우기'였다. 당시 전원 동의 방식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지정된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가 이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1939년에 들어선 부평의 미쓰비시 줄사택은 일본 정부가 2차 대전 패망 1년여 전인 1944년에서야 '조선인을 강제 징용했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거다. 이에 따라 부평구도 줄사택을 근대 역사교육 현장으로서 전시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차준택 부평구청장은 "미쓰비시 줄사택은 부평지역의 아픈 역사를 담은 첫 국가등록문화유산"이라며 "종합정비계획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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