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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 (수)

“도쿄에 터질뻔한 핵폭탄, 한국계 후손이 막았다”…일본 2차대전 항복 비화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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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사용 불가론 많았지만
일본 지도층 항복의사 없어
종전 기획한 美전쟁부장관
히로시마 사진에 심장 발작
평화주의자였던 사령관은
오히려 도쿄에 원폭 주장


매일경제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뒤 버섯 구름이 피어오른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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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항복 전날, 日황궁에선 쿠데타가 모의됐다

1945년 8월 그날,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核)이 차례대로 떨어졌다. 두 도시는 검은 타르처럼 끓어올랐다. 첫 투하에 수 만명이 즉사했고 피해자 숫자는 예측조차 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훗날 누군가는 연합군의 저 무참하고도 냉혹한 선택을 날선 목소리로 비판하곤 한다. “일본의 자멸은 확정적이었으므로 핵을 쓸 필요까진 없었고, 2기나 사용할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는 주장이다.

신간 ‘항복의 길’의 저자 에번 토머스는 좀 다른 시선을 유지한다. 자국 땅에서 진짜로 핵이 터지자 전쟁을 이끈 일본 최고전쟁지도회의 6인은 항복 여부를 투표에 부쳤다. 결과는 ‘3대 3’이었다. 군 강경파는 전쟁의 지속을 원했고, 이를 위해 심지어 황궁 내 쿠테타까지 모의했다. 결국 이 책에 따르면 일본군은 항복 의사가 없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무기인 핵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킨 과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본 이 책은 “하마터면 핵 2기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종전(終戰)을 설계한 한 미국인, 핵 투하 실무작업을 총괄했던 또 다른 미국인, 또 일본 최고전쟁지도회의 멤버였던 한 명의 일본인을 응시하면서 ‘평화와 무력의 함수관계’를 고민한 책이다.

책이 주목하는 첫 번째 인물은, 미국 전쟁부 장관 헨리 스팀슨이다.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은 핵 사용에 대해 “나 혼자 결정했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그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스팀슨은 전쟁을 이끄는 행정부 최고 각료로서,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핵을 쓸지를 트루먼과 결정해야 하는 위치였다. 스팀슨은 핵이 ‘악마 같은 무기’임을 알고 있었지만 국익을 위해 스스로 냉혹해져야 했다. 트루먼 옆에서 그는 ‘핵을 언제, 어디에 쓸지’를 결정한 장본인이었음을 책은 기술한다. 하지만 핵으로서 종전을 기획한 스팀슨 역시 한 명의 ‘인간’이었다. 핵 투하 며칠 뒤 잔해만 남은 히로시마 사진을 트루먼에게 내밀던 순간에 스팀슨은 ‘심장발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설계자로서의 두뇌가 있다면 실행자로서의 신체도 있는 법. 두 번째 인물은 미국 육군 항공대 사령관 칼 스파츠다. 스파츠는 폭탄 투하 명령의 책임자여서 유럽과 일본에 수천 톤의 화약을 뿌려댔다. 하지만 핵은 무게감이 달랐다. 그래서 그는 핵을 반대했다. “워싱턴이 처음 핵에 관해 논의했을 때, 나는 주민 전체의 죽음을 내모는 도시 파괴에 찬성하지 않았다”고 스파츠는 회고했다.

그는 평화주의자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스파츠는 일본에 ‘세 번째 핵’을 쓰자고 제안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세 번째 핵 투하 장소는 도쿄였다. 스파츠는 자신이 이끄는 항공대의 B-29 폭격기 7대를 도쿄 상공에 띄워 가로 4인치, 세로 5인치의 전단(삐라) 500만장을 살포했다. 떨어진 삐라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늘은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전쟁을 종결할 기회다. 천황(일왕)을 설득하라.” 그중 비행기 한 대는 도쿄의 황궁 위를 유유히 날았다.

연합군이 핵으로 압박하더라도 일본 내에서 항복을 주장한 인물은 따로 있었다. 당시 일본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였다. 도고의 설득이 제124대 천황 히로히토를 움직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 황군을 이끈 건 최고전쟁지도희의였다. 내각총리대신, 육군대신, 해군대신, 육군참모총장, 해군참모총장, 그리고 외무대신이 참여하는 회의였다. 그들 가운데 군인 신분이 아닌 사람은 외무대신 도고뿐이었다. 육군대신 아나미를 비롯한 군인들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워야 한다. 핵 100기를 투하해도 일본은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핏대를 올렸다.

그러나 도고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현실주의자였다. 연합군은 다음 핵 타격 목표지가 도쿄라고 공언했다. 저들은 언급한 일에 있어선 계단을 한 걸음씩 차곡차곡 오르듯 실행하는 자들이었다. 목숨을, 흩날리는 벚꽃잎처럼 가벼이 대할 순 없었다.

이를 감지한 일본 군부는 쿠데타를 계획했다. 그들은 황궁을 장악한 뒤 천황의 옥음이 육성으로 녹음된 테이프(무조건 항복 선언)를 뒤지고 다녔다. 천황은 결국 출혈과 파멸 대신에 군 수뇌부에 뜻을 하달했다. “외무대신(도고 시게노리)이 말한 것이 나의 의견이오. 우리는 죽음에서 삶을 찾을 것이오.” 특이하게도 도고는 16세기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 도공의 후손이었다는 점도 이 책은 함께 다룬다.

이 책은 항복의 운명 속에는 무수한 인간의 악의와 선의가 뒤섞여 있었음을 간파한다. 그런 점에서 평화란 저 선악의 거미줄에 간신히 매달린 비항구적인 긴장상태에 불과하다. 승리를 결정지은 자들은 죽을 때까지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 했으며, 패배를 수용한 자들 중 일부는 살아 있을 때 패배를 수용한 적이 없음도 이 책은 말한다. 한 번 펼치면 끝까지 손에서 놓기가 어려울 정도로 흥미로운 전개가 빛이 난다.

월스트리트저널, 커커스리뷰, 월터 아이작슨, 존 미첨의 추천을 받았다. 원제 ‘Road to Surrender’.

항복의 길: 제2차 세계대전 종식을 향한 카운트다운

에번 토머스 지음, 조행복 옮김, 까치 펴냄, 2만2000원

매일경제

에번 토머스 ‘항복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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