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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휴일 갑자기 출근시키는 軍, 간부 밥값이라도 제대로 줘야[김관용의 軍界一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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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간 전 휴일 출근 통보, 군 간부들 '우왕좌왕'

출근했는데 할 일 없어 '멍', 밥은 전투식량으로

후진적 군 문화와 열악한 군 간부 대우 문제 드러내

15년째 동결 간부 식대 현실화, 훈련식비 예산 절실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북한이 지난 5월 28일부터 6월 2일 두 차례에 걸쳐 오물을 실은 풍선 980여개를 남측으로 살포했습니다. 이후 6월 8~9일 3차 오물풍선을 살포하자 우리 군은 9일 일부 대북확성기 방송을 실시하고, 10일에는 전 대북확성기 방송 시행 준비를 완료했습니다.

물론 북한이 오물풍선에 독가스나 유독 물질 등을 넣어 살포했다면 매우 큰 문제입니다. 전쟁을 불사해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2차 오물풍선에서 실제 위협이 되는 생·화학 물질 등 유해 요소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유독성이 있을 수 있다는 공포를 조장해 우리 국민에 혼란을 주기 위한 심리전의 일환으로 평가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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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국방부 및 합참 주요직위자들이 지난 달 9일 국방부에서 개최된 2024년 전반기 전군주요지휘관회의 시작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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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북한이 3차 오물풍선 살포에 나선 8일 토요일 밤 갑자기 전군에 9일 일요일 정상출근 및 정상근무 지시를 내립니다. 첫 지시가 8일 밤 11시께 이뤄지다 보니 예하 각 부대들의 전파 시간은 자정을 넘겨 출근 당일 새벽까지 이어졌습니다. 지상작전사령부 예하 부대에 근무하는 한 간부는 지휘통제실로부터 9일 오전 12시 7분에 “현 상황 관련 6.9.(일) 지작사 예하 전부대 정상출근 및 정상일과 시행”이라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전군 휴일 출근 지시…‘붕짜데이’ 비아냥 낳아

군의 특성상 유사시가 되면 휴일이건 새벽이건 출근은 당연합니다.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11조에 따라 국방부 장관은 휴일 정상근무를 지시할 수 있습니다. 군인복무기본법 47조 역시 침투 및 국지도발 상황 등 작전상황이 발생한 때와 경계태세 강화 등 긴급한 소집이 요구될 때 ‘비상소집’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오물풍선 ‘도발’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전과 같이 긴급을 요하는 사태가 아니었습니다. 북한의 잇딴 탄도미사일 발사 등에도 시행된 적 없는 전군 휴일 근무를 오물풍선과 같은 저강도 도발 상황에서 지시한 것에 군 내부에서 과잉 대응이란 불만이 나왔습니다. 개인 일정 등으로 출타한 군인들은 급히 돌아와야 했고, 부부 군인들은 육아 문제로 전전긍긍이었습니다. 이번 사례는 여전한 후진적 군문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출근을 시켰으면 임무를 주고, 하다 못해 단독군장이라도 착용해 심적 대비태세를 유지토록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번 지시에 따라 육군의 경우 군인 및 군무원 10만명이 일요일 출근을 했는데, 할 일이 없어 휴대전화만 만지작 거리고 TV만 보다 퇴근했다고 합니다. 낮은 계급의 군 간부들은 ‘작업’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놓고는 점심식사로 전투식량을 배부했다고 합니다. 갑작스런 휴일 근무 지시였다 보니 군 식당에 음식이 모자랄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온라인상에선 ‘붕짜데이’라는 조롱섞인 신조어가 나돌았습니다. 신 장관이 지난 2019년 9월 21일 부산 ‘문재인 하야 1000만 서명운동’ 집회 당시 “안 내려오면 쳐들어간다”고 발언하며 ‘붕짜자 붕짜’를 외친 것을 갖다 붙인 것입니다. “긴급하게 주말에 소집하여 정상일과를 하고 전투식량을 소진하는 날”이라는 붕짜데이 개념까지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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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윤석열 대통령이 계룡대 전시지휘시설(U-3)을 방문해 2024년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 준비상태를 점검하고, 장병들을 격려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사진=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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兵급식비 지속 증액…간부 밥값 15년째 동결

갑작스런 휴일 근무 지시도 그렇지만, ‘보급품’으로도 볼 수 있는 먹기 싫은 전투식량을 영내 식사라는 이유로 간부들로부터 돈을 받는다는건 문제입니다. 영내 급식을 하는 일반 병사들과 달리 군 간부들은 봉급에 급식비를 포함해 받습니다. 한끼가 아닌 하루 단가가 4784원입니다. 이 단가는 2009년 이후 15년째 동결된 액수입니다.

영내 급식을 하는 병사들 급식비는 꾸준히 상승해 조식 3800원·중식 4900원·석식 4300원 등 하루 1만3000원입니다. 간부들은 병사들 점심 식대도 안되는 돈을 급식비로 받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영외자들은 주로 중식을 영내에서 하기 때문에 차액이 116원(4900원-4784원)으로 이를 전체 군 간부로 확대하면 26억7000만원 규모입니다. 이에 더해 안그래도 ‘박봉’인데 야간근무를 위한 저녁식사나 당직근무로 인한 저녁·아침식사 비용은 순전히 자기들 돈으로 내고 있습니다. 이번처럼 갑작스런 휴일 근무 식대 역시 책정돼 있지 않아 ‘내돈내밥’입니다.

게다가 작전이나 훈련으로 불가피하게 영내 식사를 해야 하는 경우에도 간부 자신이 부담해야 합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육군 대다수 부대의 연평균 훈련일수는 30일 가량으로, 최소 24만 6480원의 식대를 추가 부담하면서 훈련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이에 국방부는 올해 161만명분의 간부훈련급식비 등의 명목으로 615억원을 요구했지만, 재정당국 등의 반발에 부딪혀 133억원만 반영돼 집행되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의 정부 예산안 심사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군 장병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합리적 예우’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군인이라는 이유로 자비를 내면서 작전이나 훈련에 임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밥값이라도 제대로 줄 수 있도록 초과근무 및 당직근무 영외자의 영내 급식비 별도 편성이 필요합니다. 평일 중식비도 현행처럼 영내자 급식비 기준으로 공제하되, 영외자 급식비와 영내 급식비 차액(26억7000만원)은 예산으로 메꿔줘야 합니다. 혹여 기재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국회가 이를 증액하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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