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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 (수)

[K-VIBE] 이동일의 인사이드 K컬처...로봇 아티스트 백남준-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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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이에 연합뉴스 K컬처팀은 독자 제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이동일 연출가(연극학박사). 전 단국대 교수, 현 서강대 초빙교수.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과 '밀레니엄 프로젝트, DMZ 2000: 호랑이는 살아있다(Tiger Lives)' 연출, 덴마크 합작 프로젝트 '전쟁 후에(After war)' 등 총체극과 통섭형 작품 다수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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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일 교수
본인 제공



"1950년 이전의 예술가들은 추상적인 공간을 발견했다.

1960년 이후의 비디오아티스트들은 추상적인 시간을 발견했다.

아무 내용 없는 시간을."

- 백남준, '노스탤지아는 피드백의 제곱이다', 1992 -

이전 연재에서 4회에 걸쳐 필자는 현대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 선생과 함께 한 프로젝트에 관해 설명한 바 있다. 백 선생은 조각, 회화, 음악, 미디어아트 등 수많은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였지만 그가 요즘 인공지능과 함께 뜨는 로보틱스 기술에도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백 선생은 1986년 시카고 아트페어에서 '로봇 가족'(Robot Family)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로봇 가족은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아기 로봇까지 3대에 걸친 로봇으로 구성돼있고 1940~1950년대 초기 생산 TV 모델부터 당시의 최신 TV를 사용해 만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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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가족: 어머니'와 '로봇 가족: 아버지 (1986)
사진출처 백남준아트센터



그런 다음 선생은 햄릿, 다윗, 볼테르 등 여러 인물을 로봇으로 만들었다. 또한 장영실, 세종대왕, 선덕여왕 등의 한국의 위인도 로봇으로 만들었다.

그 이후에도 선생은 로봇 작업을 계속 이어갔다. 2001년 만든 슈베르트와 밥 호프(미국의 전설적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은 각각 실재의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다. 선생이 로봇으로 재해석한 슈베르트는 빨간 오래된 축음기 스피커를 고깔처럼 쓰고 샬롯 무어맨(아방가르드 아티스트, 백 선생의 오랜 동료)의 영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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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백남준을 부둥켜안고 공연하는 샬롯 무어맨
사진출처 바바라 무어



백남준 선생의 로봇 시리즈는 로봇 같은 융복합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면 더욱 놀랍다.

현대인은 이미 로봇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첨단 기술의 산물을 신개념의 '가족'으로 보는 혁신적 발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백 선생만의 특별한 예술철학에서 시작됐다.

선생은 늘 '내일 세상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라는 추상적 시간의 흐름이라는 개념 속에서 유쾌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필자는 백 선생이 로봇 작업을 1961년부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선생은 이미 당시에 사이버네틱스 기반의 미디어 아트의 초기 작업에 몰두해 있었다. 사이버네틱스는 메카닉 기반의 테크놀로지를 인공지능으로 진전시키기 위해 인간과 기계 사이의 연합을 시도한 기술 과학이다.

로봇은 1921년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1890~1938)의 희곡 'R.U.R'에서 최초로 유토피아적 존재로 등장했고, 1932년 영국 런던 엑스포에서 '알파 로봇'이라는 실제 몇 가지 동작이 실현된 메카닉 형태가 최초로 선보였다.

차페크의 희곡에 나온 로봇은 생식능력이 없던 로봇끼리 사랑을 나눔으로써 로봇의 생명성을 그렸다. 백 선생은 이러한 발상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즉, 런던 엑스포의 알파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는 '새로운 노동자'로서 대체되는 존재라면, 차페크의 로봇은 '해방된 존재'로서 포스트 휴먼의 진전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백 선생은 필자에게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로봇이 아니라 고장이 잦아서 오히려 인간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존재가 로봇이라고 강조하셨다.

그래서 그는 가족의 이름을 지닌 로봇 시리즈를 만들었다. 인간형 로봇을 예술의 장으로 끌어온 것이다.

1986년에 창작된 '로봇패밀리'는 대가족으로서 백남준 선생이 생각해 온 인간과 기계의 연합적 생명력이 표현된 작품이다. 선생은 필자에게 유라시아 문명을 전달하는 매개자로서 샤먼과 같은 역할을 하는 춤추는 로봇을 제작해 필자가 연출한 'DMZ2000-호랑이는 살아있다'에 출연시키자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이 아이디어는 그의 'LIBIDO 2000'의 일부로서 단절의 공간 비무장지대에서 인간과 로봇의 생명성을 강조하는 춤을 통해 상생의 굿판을 벌이자는 작품 제작 초기 컨셉트의 일부였다.

김남수는 2016년에 열린 '백남준 그루브 흥이라는 전시'의 서문에서 로봇과 관련한 백 선생의 작업을 "백남준의 영상들은 현대음악과 춤이 개척해 온 급진적 성과를 현대미술(조형예술)과 융합하는 시도였고, 그 후 전개된 그의 일렉트로닉 TV 시리즈, 로봇 시리즈, 위성아트, 레이저 아트 등은 자신이 추구하던 예술적 변동상태(파동)를 새롭게 등장하는 뉴미디어에 적용하는 작업이었다. 파동이 차차 증폭되어 선율적 풍경을 만든다고 할까. 이처럼 파동이라는 아이디어로 '전자와 예술과 미디어 융합'이라는 그의 20세기 비전을 30세기(AD3000년)의 시간과 빅뱅 우주라는 공간으로 확장했던 백남준의 사유의 스케일은 놀랍고 그의 사유의 센스는 흥겹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김남수, 백남준 그루브 흥,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2016)

이렇게 이미 1960년대에 '로봇 틱 아티스트'라는 또 하나의 페르소나를 완성한 백 선생은 1964년에 일본의 엔지니어이자 오랜 동료인 슈야 아베와 함께 '로봇 K-456'을 만들었다.

이 로봇은 사람 크기의 20채널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여성 휴머노이드 형태다. 상상해보라. 사람과 비슷한 키의 여성형 로봇이 뉴욕의 거리를 오가는 장면이 어떤 느낌일지.

또한 '로봇 K-456'은 팔을 흔들거나 콩을 뱉고 존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수락 연설을 스피커를 통해 내보냈다.

큰 네모 모양의 머리와 장난감 비행기 프로펠러 눈, 스티로폼 가슴 등의 고물로 만들어진 이 로봇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인간의 풍자화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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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K-456
사진출처 백남준아트센터




1982년 이 로봇은 '21세기의 첫 대재앙'이라고 명명된 퍼포먼스에서 횡단보도에서 내려와 자동차에 부딪혀서 망가지는 고의적인(?) 사고를 겪게 된다.

백남준 선생은 이 퍼포먼스를 통해 로봇에 깃들어있는 해학과 풍자정신이라는 예술의 힘을 역설했다.

예술의 힘이 머지않아 다가올 기계 중심의 억압적 시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넘어설 것이라는 확신도 보여줬다. 현재 우리는 로봇이 호텔에서 손님을 체크인하고 룸서비스를 책임지며 드론이 오지를 촬영하고 물건을 배송하는 일이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다.

오래전 4차 산업혁명의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의 미래를 예견한 백남준 선생의 혜안은 '로봇 나무' 창작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

백 선생의 말이 다시 한번 뇌리를 스친다.

"전자 기억은 잊어버리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너무 많은 양의 모든 정보를 기억한다면 강박적이며 편집증적으로 되어갈 수밖에 없다. 결국 그것을 던져버리기 위해 심리학자(혹은 예술가)를 찾아가야 할 것이다."

<정리 : 이세영·성도현 기자>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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