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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의사 이어 4살 아동까지…연이은 성폭력으로 들끓는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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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인도에서 이달 초 근무 중이던 의사가 병원에서 강간 뒤 살해된 데 이어 지난주 4살 아동들이 학교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하며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인도를 휩쓸고 있다.

인도 매체 <타임스오브인디아>, <힌두스탄타임스> 등에 따르면 20일(현지시간)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주 바들라푸르에서 지난주 발생한 3~4살 여자 어린이 2명에 대한 성적 학대 사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었다. 분노한 학부모들과 지역 주민 등으로 구성된 약 2000명의 시위대는 사건이 발생한 학교 밖에서 책임자 엄중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기차역으로 이동해 선로를 점거했다. 철도 선로를 10시간 가량 점거해 열차 운행을 막은 시위대는 용의자를 사형에 처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주 초 이 지역 한 학교 화장실에서 유치반 수업을 듣던 어린이 2명에 대한 성적 학대 사건이 발생했다. 아이가 고통을 호소해 사건을 인지한 피해 아동 부모의 신고 뒤 학교 청소 직원인 23살 남성이 체포됐지만 신고 과정에서 경찰이 피해 아동의 부모를 12시간이나 대기하게 하는 등 사건 처리 절차가 지연된 것이 알려지며 불만이 커졌다.

정부는 사건 처리 지연 관련 경찰관 3명을 정직 처리하고 학교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 확인되면 학교에 처분을 내리겠다고 밝힌 상태다. 해당 학교 경영진도 교장, 담임 교사 등에 대한 정직 조치를 취했지만 분노가 가라앉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경찰 고위 간부들이 용의자를 엄벌에 처할 것을 약속하며 해산을 유도했지만 시위대가 응하지 않자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긴 봉을 휘두르며 강제 해산 절차에 돌입했고 시위대는 경찰을 향해 돌을 던졌다. 이 과정에서 28명이 체포됐다.

이번 아동 성폭력 항의 시위는 이달 초 서벵골주 콜카타에서 여성 의사 강간·살해 뒤 인도 전역에서 항의 행동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일어났다. 지난 9일 콜카타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던 31살 여성 수련의가 살해돼 주검으로 발견됐다. 부검 과정에서 이 여성이 성폭력을 당한 것이 확인됐고 병원 자원봉사자 남성이 용의자로 체포됐다.

관련해 지난 14일 콜카타에서 수만 명의 여성들이 항의 행진을 벌인 것을 비롯해 델리, 뭄바이 등 인도 전역에서 여성 안전 보장을 촉구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동료 의사가 살해된 데 분노한 의사들의 비필수 진료 거부 등 단체 행동도 일었다. 의사 단체인 인도의학협회(IMA)는 여성 의사의 안전한 휴식 공간 부족과 36시간 근무 등 업무 환경에 문제를 제기하며 지난 주말 24시간 동안 진료 거부 운동을 벌였다. 살해된 수련의는 36시간 근무 뒤 휴게 공간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빈 세미나실에서 잠을 자던 중 피해를 입었다.

<타임스오브인디아>는 20일에도 콜카타에서 해당 수련의가 살해된 병원 의사들과 의과대 학생들이 거리에 사건에 항의하는 낙서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북부 찬디가르의 의사들도 연대 시위를 벌였다.

피해자의 신상 정보가 소셜미디어(SNS)에 공개되며 법원이 이를 즉시 삭제할 것을 명령하기도 했다. 영국 BBC 방송, <타임스오브인디아> 등을 보면 20일 이 사건 심리를 시작한 인도 대법원은 피해자의 이름과 사진,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유포된 데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관련한 모든 게시글의 즉시 삭제를 지시했다. 인도에선 성폭력 피해자 이름 공개가 금지돼 있다. 대법원은 사건 처리 과정에서 경찰이 절차를 지연한 것을 비판하고 의료 기관의 휴게 공간 부족, CCTV 미작동, 보안 인력 부족 등을 지적하며 의료 종사자들의 안전을 위한 국가 태스크포스(NTF) 설치도 명령했다.

2012년 뉴델리의 버스 안에서 일어난 집단 강간·살해 사건 뒤 인도에선 강간의 정의가 확대되고 성범죄에 대한 신속 재판 도입 및 형량 강화가 이뤄졌지만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해당 법률이 효과적으로 집행되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15일 성명을 통해 대부분의 민간 부문과 관공서에서 성희롱 관련 위원회가 "서류상으로만 존재할 뿐"이라며 이번 의사 강간·살해 사건에서도 시위대가 병원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단체는 끔찍한 범죄에 대한 사형이 대중적 호소력은 발휘할 수 있겠지만 여성을 학대와 폭력으로부터 보호할 수는 없다며 직장과 기관에서 법을 잘 집행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짚었다. 2012년 뉴델리 사건 용의자 중 4명에 대한 사형이 2020년 집행된 바 있다.

인도에서 활동하는 변호자이자 여성운동가 브린다 그로버도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에 "정부와 기관이 여성이 이미 성폭력을 당하고 종종 해당 사건으로 사망한 뒤에야 대응하는 것이 유감스럽다"며 예방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것에 대해 지적했다.

프레시안

▲16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의료 종사자들과 학생들이 이달 초 서벵골주에서 일어난 수련의 강간·살해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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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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