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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시론] ‘연속 열대야 일수’ 역대 최장, 잠 못 드는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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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


‘독사의 이빨/ 개의 혓바닥’.

홍해리 시인의 ‘중복(中伏)’이다. 이렇게 짧은 시는 처음 봤다. 그렇다. 한여름 무더위는 구태여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냥 “덥다”라고만 해도 되는 것을 독사의 이빨 같은 화염(火焰)에 늘어진 개의 혓바닥으로 시인은 표현했다. 정곡을 찌른 표현을 보면서 금세 숨이 턱 막혀온다.

수도 서울의 최저 기온(오후 6시 1분~다음날 오전 9시)이 25도를 넘는 열대야가 7월 21일부터 31일째 계속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종전까지 최장 기록이었던 2018년 기록(26일)을 가볍게 제쳤다. ‘118년 만에 최장 연속 열대야’는 당분간 이어질 듯하다. 이런 기세로 간다면 지금까지 열대야 일수가 가장 많았던 1994년 기록(36일)도 넘어설 것 같다.



기존 26일 최장 기록 연일 경신

습도와 구름양이 최악 조건 제공

기후위기 저지 노력에 동참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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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에 열대야가 역대 최장 연속 기록을 경신한 원인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전 지구적인 온난화 현상의 영향이 가장 클 것이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올해 7월이 역사상 가장 더운 달이면서 2023년 6월부터 2024년 7월까지 14개월 연속 지구 평균 월간 최고 기온 신기록을 세웠다고 밝혔다. 유럽 중기예보센터(ECMWF)는 올 7월 22일의 전 지구 평균 기온이 17.16℃로 새롭게 최고 기록을 세웠다는 보고서를 냈다. 지구 대기의 기온이 올해 여름에 이례적으로 더 뜨겁다는 말이다.

열대야는 기온이 높은 해일수록 많이 발생한다. 그런데 말이다. 올해 7월부터 8월 17일까지 서울의 평균 최고 기온은 역대 기온이 가장 높았던 2018년보다 2℃ 정도 낮았다. 평년보다는 더웠지만, 최악의 폭염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열대야는 가장 오래가고 있다. 왜 그럴까.

첫째, 열대야가 많이 발생한 것은 소나기가 자주 내리면서 습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습도가 높으면 밤에 기온이 내려가는 것을 방해한다. 이 때문에 고온의 열대야가 발생한다. 연속적인 열대야가 시작한 올해 7월 21일부터 8월 17일까지 서울에 내린 소나기 일수는 20일이다. 종전에 최장 열대야 기록을 보유해온 2018년(7일)보다 약 3배 정도로 많았다

둘째, 같은 기간 동안 서울의 평균 상대습도는 76.4%였다. 기존에 최장 열대야 기록을 세운 2018년의 59.9%보다 크게 높았다. 셋째, 같은 기간에 서울의 평균 구름양은 6.5(구름이 하늘을 65% 덮었다는 뜻)였는데, 이는 2018년(4.1)보다 약 1.6배 많은 양이다. 구름이 많을수록 복사냉각을 막아주기 때문에 열대야가 많이 발생한다. 이처럼 올해 여름에 이례적인 기후 조건이 만들어지면서 열대야 지속 일수를 크게 늘렸다.

열대야는 사람의 건강에 큰 영향을 준다. 높은 기온으로 잠 못 이루면서 피로가 누적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수면 부족으로 면역력이 떨어지고, 스트레스가 증가한다. 쉽게 짜증을 내거나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심혈관 질환이나 천식 등 호흡기 질환자에 특히 위험할 수 있다.

예전에 “열대야는 ‘열 대야’로 이긴다”는 속설이 있었다. 열대야를 이기기 위해 대야에 물을 채워 열 번을 뒤집어쓰면 열대야를 이긴다는 뜻이다. 먼저 실내온도를 적절하게 조절하고, 밤에도 충분히 물을 마셔야 한다. 가벼운 면 소재의 잠옷을 입고, 규칙적인 수면시간과 패턴을 유지해야 한다. 밤에는 과식을 피하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전 지구적인 합의였던 2015년의 파리협약이 9년 지났는데도 여전히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고 있다. 이로 인한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 미래에는 폭염이나 열대야는 더 강하게, 더 많이 발생할 것이다. 올해 전 세계적으로 극한 폭염이 발생하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극심한 더위는 점점 더 경제를 어렵게 하고, 불평등을 확대하고,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를 훼손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더위로 인한 사망자가 태풍 피해 사망자보다 약 30배 더 많다”면서 “전 지구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윤석열 정부도 기후 위기를 저지하는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미래의 폭염 재난에 대처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회복력과 생태계의 회복력을 높여나가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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