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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스타 임영웅은 ‘이 여자’의 손에서 탄생했다...손대는 것마다 대박 ‘트로트 대모’ [신기자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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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자 톡톡-15]
서혜진 크레아스튜디오 대표 인터뷰
한·일 트로트 경합 ‘한일가왕전’ 등
세상에 없던 콘텐츠 선보이고
한·일 문화콘텐츠 교류에 앞장
‘유리천장’ 깬 SBS 예능 PD 출신
‘미스터트롯’ ‘미스트롯’ 트로트 돌풍
“임영웅, 재능·매력 넘쳐 스타된 것”


매일경제

서혜진 크레아스튜디오 대표. <사진제공=크레아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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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방 전국 시청률 11.9%, 분당 최고 시청률 12.5%.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트로트 실력자들이 경합하는, 즉 국가 대항전 콘셉트로 기획돼 올해 4월 2일부터 약 한 달 동안 MBN에 방영됐던 ‘한일가왕전’이 첫 번째 방송에서 세운 기록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최초의 예능 프로그램임에도 첫 방송부터 전국 시청률 11.9%를 기록하며 엄청난 화제가 됐다.

최근 몇 년 새 우리나라에서 드라마, 예능, 뉴스 등 어떤 장르의 프로그램도 본방 시청률이 10%를 넘으면 기적이라고 감탄할 정도로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한일가왕전’은 방영 내내 시청자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여러 번 일본 언론에 소개될 만큼 일본인들에게도 크게 주목받았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최초로 한국에서 일본 가수들이 일본 가요를 자연스럽게 부르는 모습을 TV를 통해 여러 차례 자연스럽게 보여줬으며, 내년 ‘한일수교 60주년’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의 문화교류 활성화에 공헌했다고 평가받았다.

‘한일가왕전’을 기획하고 만든 사람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능 피디(PD)이자 콘텐츠 제작자, 사업가이기도 한 서혜진 ‘크레아스튜디오’ 대표이다.

서혜진 대표는 SBS 간판 예능 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킹’, ‘동상이몽2’ 등을 기획·연출했던 PD다. 여성 PD가 거의 없었던 1997년 서 대표는 SBS PD가 됐다. 남성들이 평정해오던 PD 세계에 뛰어들어 유리천장을 깼다.

서 대표는 2018년 SBS를 퇴사하고 같은 해 TV조선으로 이직해 예능 프로그램 ‘아내의 맛’, ‘연애의 맛’, ‘내일은 미스트롯’, ‘내일은 미스터트롯’과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 등을 기획하고 만들었다. 이후 2022년 7월 콘텐츠 제작 기업 ‘크레아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사업가로 변신했다.

서 대표는 대한민국 최초로 트로트와 오디션 결합한 새로운 장르를 선보였으며, 대한민국에 트로트 열풍을 불러온 장본인이다. 자신이 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해 일정 순위까지 오른 참가자들의 공연(콘서트)도 열며 콘텐츠 제작 범위를 오프라인 공연까지 넓혔다.

세계무대가 아닌 한국으로만 국한했을 때 세계적인 그룹 가수 방탄소년단(BTS)보다 수입이 더 많은 연예인으로 알려진 임영웅도 그가 발굴했다. 무명이었던 임영웅은 ‘미스터트롯’에 출연해 우승하며 ‘국민 가수’로 등극했다. 서 대표는 임영웅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렸고 장점을 극대화해 임영웅이 출연하는 동안 최고의 무대를 보여줄 수 있도록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우리나라 드라마·웹툰 등이 세계 여러 국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코로나19의 여파와 급격히 높아진 배우들의 출연료 등의 이유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제작되는 드라마·영화·예능 등 프로그램 투자 시장이 코로나19 이전보다 위축된 상태다. 이런 상황과 달리 서 대표가 만드는 프로그램에는 무조건 투자하겠다는 투자자도 등장할 만큼 서 대표는 우리나라 영상 콘텐츠 제작 업계에서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다.

서 대표는 문화콘텐츠 수출에도 힘쓰고 있다. 크레아스튜디오가 제작한 후 2022년 12월부터 2023년 3월 초까지 MBN에 방영된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불타는 트롯맨’은 일본에 포맷 수출돼 ‘트롯걸즈 재팬’으로 일본 최대 위성방송 ‘와우와우’ 등에 방영됐다. 포맷은 국가, 언어, 문화와 상관없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지식재산권(IP)이다.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요리책 같은 것으로, 콘텐츠 제작 기술이다.

‘트롯걸즈 재팬’과 ‘한일가왕전’이 일본에서도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며, 올해 6월 ‘한일가왕전’ 주역들은 일본 도쿄 지요다구 오테마치 미쓰이홀에서 ‘트롯걸즈재팬 2024’ 오프라인 공연을 개최하기도 했다.

서 대표는 여성 PD가 거의 없었던 1997년 PD의 길에 들어선 후 약 30년 동안 콘텐츠 제작 업계에 몸담아왔다. 서 대표가 걸어온 길, 앞으로의 계획 등에 관해 들어봤다.

-어떻게 PD가 됐나. 어렸을 때부터 PD가 되길 꿈꿨나.

▷어렸을 때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수학 공부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고등학생 때 문과를 선택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곧바로 동대학원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석사 막바지 무렵 기자 혹은 PD가 되고 싶어졌다.

그런데 석사를 끝내고 마케팅회사에 취업하며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일은 잘했지만 PD 일을 해보고 싶었다. 이후 케이블 방송사로 옮겨 프로그램 제작 경험을 쌓은 후 1997년 SBS 경력 PD로 이직했다.

-일반 예능, 오디션 예능, 드라마 등 장르를 넘나든 PD인데, 어떤 장르가 상대적으로 제작하기 쉽나.

▷쉬운 건 없다. 콘텐츠 산업은 기술 발전과 같이 진화해왔다. 자본과 기술이 콘텐츠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왔는데, 이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새 콘텐츠 산업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사람들이 환호할 콘텐츠를 만들면서 큰 수익까지 창출해야 한다.

-왜 트로트에 주목했나.

▷TV조선에 몸담고 있었을 때 TV조선의 주된 시청자들인 중장년층이 선호할 예능 프로그램 제작을 고민하고 있었다. 어떤 게 좋을지 고심하다가 트로트 오디션이 떠올랐다. 깊게 고민하지 않고 트로트 오디션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미스터트롯’ ‘미스트롯’ 등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이렇게 성공할 줄 몰랐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제작비만 1회당 최소 수억원 이상 필요하다. 참가자들이 무대에서 가장 멋진 공연을 펼칠 수 있도록 노래·춤 등을 훈련시켜야 하고, 참가자들이 시청자에게 매우 매력적이게 보일 수 있도록 화장(메이크업), 의상 등을 통해 참가자들을 꾸며줘야 한다. 이런 비용도 꽤 많이 든다. 게다가 그동안 누구도 시도한 적 없었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것은 도박 중의 도박이었다.

-최근 우리나라 대중가요는 아이돌을 중심으로 한 ‘케이팝(KPOP)’과 트로트로 양분화됐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트로트 열풍이 대단하다. 트로트 인기가 왜 이렇게 뜨겁나.

▷트로트가 갑자기 확 떴다는 진단보다 ‘가요의 문’이 크게 열렸다, 확장됐다고 평가하는 게 더 적합한 것 같다.

‘미스터트롯’, ‘미스트롯’ 등에 출연해서 스타가 된 연예인들은 이미 탄탄한 음악 능력을 보유한 실력자들이다. 이들이 대중에게 주목받지 못했던 것뿐이다. 실력자들이 트로트를 부르니까 대중이 트로트에 확 관심 갖게 된 것이다. 실력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그들을 열렬히 지지하는 ‘팬덤’까지 생겼다.

-트로트의 최대 전성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데. 언제까지 트로트의 인기가 지속될까.

▷그런 게 어디 있나. 어떤 트로트 스타가 탄생할지가 관건이다. 앞으로도 트로트의 인기는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트로트가 없어질 장르였다면 이미 없어졌을 것이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약 트로트를 찾는 수요가 완전히 없어지면 트로트도 없어질 수 있겠지.

-임영웅을 발굴하고 키웠는데. 임영웅을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임영웅 씨가 실력이 탄탄하고 매력적이라서 본인 스스로 성장한 것이다. ‘미스터트롯’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동안 특정 출연자에게 감정이 이입되면 안 되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종영될 때까지 임영웅 씨를 따로 만난 적도 없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제작자는 모든 참가자들에 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참가자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협업해보고 싶은 연예인, 음악인 등이 있을 것 같다.

▷걸그룹 ‘뉴진스’의 히트곡 ‘하입 보이(Hype Boy)’를 작곡한 작곡가 ‘250’의 음악을 들어봤는데, 그가 천재처럼 느껴졌다. 이 분과 협업해보고 싶다.

-어떻게 크레아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사업가로 변신했나.

▷평소에 ‘언젠가는 반드시 사업해야지’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직장인 생활을 청산하고 콘텐츠 제작사를 세우게 됐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창업을 결심한 후에는 재빠르게 일을 추진했다.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결정하면 강한 추진력으로 곧바로 실행하는 편이다.

-걸그룹 육성 프로젝트 ‘언더피프틴(UNDER15)’을 기획하고 있다고.

▷국적 불문, 한국 가요를 사랑하는 만 15세 이하 소녀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오디션이다. 내년 상반기 방영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시즌제로 만드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세계 여러 국가의 많은 청소년들이 소위 ‘케이팝(KPOP)’으로 불리는 한국 가요를 좋아한다. 한국에서 가수가 되길 꿈꾸는 10대 외국인들도 많다. 마치 ‘코리안 드림’처럼. 한국의 음악을 ‘언더피프틴’을 통해 세계에 더욱 알리고 싶다.

-‘한일로맨스 혼전연애’도 준비 중이라고.

▷이달 26일부터 MBN을 통해 방송될 예정이다. 한국 남자들과의 연애를 꿈꾸는 일본 여성들과 한국 남자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들의 연애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이다.

-크레아스튜디오의 지향점은.

▷크레아스튜디오는 트로트 오디션 콘텐츠를 기획한 후 트로트 공연, 콘텐츠 포맷 수출까지 이뤄내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다. 트로트 오디션처럼 콘텐츠 기획에서 출발해 새로운 시장까지 창조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또 만들어보고 싶다.

-PD로 일하면서 언제 가장 힘들었고, 언제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나.

▷만삭일 때도 밤늦게까지 회사에 남아서 영상을 편집하면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출산 후 한 달 보름 정도만 쉬고 2000년 겨울 무렵 다시 복귀했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어서 일을 그만둘까 고민했다.

하지만 경력이 단절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크기가 육체적으로 힘든 정도보다 더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일을 그만두지 않고 꿋꿋이 버텼다. 성취감이 가장 컸을 때는 첫 번째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작했을 때였던 것 같다.

-SBS 재직 시절 ‘집에 안 가는, 퇴근을 안 하는 PD’로 유명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일했나. 열심히 살게 한 원동력은.

▷당시 빚이 있었기 때문에 생존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자릿수의 시청률을 달성한 프로그램 2개를 만들고 싶은 목표도 있었기에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별로 잠을 안 잤다.

-PD가 안 됐다면.

▷운동에 관심이 많다. 지금 같은 마음이라면 건강하고 보기 좋은 몸을 만드는 운동 유튜버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PD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

▷없다. 힘들었고 남몰래 운적도 많지만, 일은 재미있었다. 영상을 편집할 때도 즐거웠다. 최대한 편집을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PD 지망생이 명심해야 할 사항은.

▷1분 미만의 짧은 영상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에 짧은 영상 기획·제작에 몰두하는 PD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콘텐츠 전체의 줄거리·흐름 등을 파악하면서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인생 선배로서 청년들한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린다.

▷누가 누구 인생에 관해 말할 수 있겠나. 각자 자신의 인생을 본인이 사는 것이다. 내 자식에게도 왈가왈부, 이래라저래라 지시하지 못하는데 무슨 조언을 하겠나. 조언하는 것 자체가 꼰대 같다. 꼭 말해야 한다면 어떤 일이나 문제에 처했을 때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는 것만은 알려 주고 싶다. 꼭 명심하면 좋을 것 같다.

신수현 기자

* 신기자 톡톡은 화제의 인물, 특정 분야에 성공한 사람, 독특한 인생을 살고 있거나 살아온 분, 특수 직종 종사자 등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 연재 코너입니다. 아래 ‘기자페이지’의 ‘+구독’을 누르시면 놓치지 않고 기사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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