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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네이처 “한국, 연구개발 투자 대비 성과 저조... 낡은 방식이 혁신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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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인덱스 3년 만에 '한국 특집호'
R&D 투자비중 이스라엘 이어 2위지만
국가 주도 규제에 글로벌 혁신은 10위
여성 과학자 열악한 연구 환경도 문제
한국일보

8월 22일 발간된 '네이처 인덱스' 한국 특집호. 네이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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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연구개발(R&D) 투자 대비 성과가 저조하다는 국제학술지의 분석이 나왔다. 규제 중심의 단기적인 R&D 투자가 혁신을 저해하면서 글로벌 혁신지수 역시 내려앉았다. 인구 감소로 인재가 부족한데 여성과 외국인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한국 과학기술 경쟁력 하락의 원인으로 꼽혔다.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22일 발간한 ‘네이처 인덱스’ 한국 특집호는 “한국은 다른 주요 국가들에 비해 인구당 연구자 비율이 높고 다른 선도국보다 R&D에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연구 성과는 놀라울 정도로 낮다”고 평가했다. 네이처가 한국 특집을 발간한 건 1993년과 2020년에 이어 세 번째다.

특집호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R&D 투자 금액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5.2%로, 이스라엘(5.6%)에 이어 2위다. 이어 미국(3.6%), 일본(3.4%), 독일(3.1%) 등 순이다. 그런데 올해 발표된 네이처 인덱스 순위(2023년 1~12월 연구 기준)에서 한국은 8위였다. 분야별로 보면, 가장 성과가 좋은 물리학에서도 중국, 미국, 독일, 영국, 일본에 이어 6위였다. 화학은 이보다 한 단계 낮은 7위를 기록했다. 지구·환경과학은 13위로 더 낮고, 생명과학과 건강과학은 14위에 그쳤다. 모든 분야에서 중국, 일본에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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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과학 분야별 한국 순위. 그래픽=강준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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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1위는 중국이다. 2022년 1위였던 미국과 순위가 뒤바뀌었다. 이어 3위부터 독일, 영국, 일본 순이다. 2020년 13위였던 인도는 지난해 순위가 9위까지 올라 한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네이처 인덱스는 자연과학·의학 분야 145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을 바탕으로 국가, 지역, 기관별 논문 수와 기여도 등을 분석해 네이처가 자체 산출하는 연구 성과 지표다.

네이처 인덱스는 한국이 과거 국가가 성장을 주도한 시기에 구축된 낡은 R&D 방식을 고수하면서 혁신이 저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틴 헴메어트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특정 분야를 우선시하고 연구를 미세하게 관리하는 방식이 학술 부문에서 혁신을 촉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명목으로 전략 기술을 선별하거나 ‘연구중심 대학’을 지정하면서도 연구 전략을 연구자 자율에 맡기기보다 규제를 더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에 2021년 5위까지 올랐던 한국의 글로벌 혁신지수(GII)는 지난해 10위로 크게 떨어졌다.

연구 자금 지원이 약 1~3년으로 단기적인 것도 문제로 꼽혔다. 햄메어트 교수는 “일본에서는 과학자들이 동일한 주제를 여러 세대에 걸쳐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연구한다”며 “일본 과학자들은 꽤 많은 노벨상을 수상했지만, 한국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R&D 예산 삭감의 여파도 지적됐다. 과거 한국에선 뛰어난 학생들이 공학자의 꿈을 꿨지만, 요즘은 안정적이고 돈을 더 벌고 명예롭다는 이유로 의사를 선택한다는 점을 네이처 인덱스는 짚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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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혁신지수(Global Innovation Index) 상위 10개 국가. 네이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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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과학자들의 연구 환경 개선 필요성도 제기됐다. 네이처 인덱스는 “한국 연구 인력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23%에 그치고, 정부 연구과제 책임자 중 여성은 17.7%에 불과하다”며 “여성의 경력 중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한국이 과학 분야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할 한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또 한국이 인구 감소로 외국 연구원과 학생들을 인재로 수혈하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언어 장벽과 문화 차이로 이들 중 상당수가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네이처 인덱스는 한국의 연구 성과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제 공동연구 등 개방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명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존 국제 연구협력에서는 우리나라 연구기관의 담당자가 중간에 자꾸 바뀌는 등 연속성이 부족해 정보 비대칭이 심해지고 효율적이지 못했다"며 “정책 변동의 영향에서 벗어나 긴 호흡으로 안정적 협력 기반을 구축하고 유럽 국가 등 다양한 파트너 구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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