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회의에서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고 밝혔다. 금통위는 “수도권 주택가격 상승세와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하고 외환시장의 경계감도 남아 있다”며 “정부의 부동산 대책과 글로벌 위험 회피 심리 변화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창용 한은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중 4명이 ‘향후 3개월 내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이런 견해를 표명한 위원이 지난 7월 회의 때 2명에서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통화정책 방향 문구도 “통화정책은 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하는 가운데”에서 ‘충분히’라는 말이 빠졌다. 표면적으론 10월 열릴 다음 금통위 회의에서 정책 전환이 있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 셈이다.
배경은 일단 ‘피벗(Pivot·통화정책 전환)’의 밑그림이 그려져서다. 최근 내수는 힘이 빠졌고, 물가 상승 압력은 약해지면서 금리 인하를 위한 전제조건이 맞춰졌다.
한은은 이날 경제성장률,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수정 전망치를 발표했다. 올해 성장률은 2.4%로 지난 5월 전망보다 0.1%포인트 낮췄다. 이번 한은의 전망치는 정부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망치(2.6%)는 물론,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치(2.5%)보다 낮다. 수출 증가세에도 성장 전망치를 내린 건 내수 경기가 더 위축되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2분기 민간 소비성장 기여도는 -0.1%포인트로, 성장을 끌어내렸다.
‘불안한 물가’는 안정에 근접했다. 한은은 물가상승률을 기존 2.6%에서 2.5%로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이 총재는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2%)에 수렴할 것이란 확신이 커졌다”며 “물가 수준만 봤을 땐 기준금리 인하 여건이 조성됐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하의 발목을 잡은 건 불안한 집값이다. 이 총재는 “한은이 유동성을 과잉 공급함으로써 부동산 가격 상승 심리를 자극하는 실수를 범해선 안 된다”며 “내수는 시간을 갖고 금리 인하 폭 등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부동산 가격과 그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 등 금융 불안은 지금 막지 않으면 더 위험하기 때문에 동결을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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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커진 한은, 금리동결… 용산 “아쉽다” 이례적 언급
여러 지표가 이 총재의 우려를 뒷받침한다. 앞서 한은이 지난 20일 발표한 가계신용 통계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늘어 2분기 가계부채가 1896조원을 기록해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8월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18로 전달보다 더 올라섰다. 정부의 8·8 부동산 공급 대책 발표 이후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보다 0.32% 오르며 약 6년 만에 가장 높은 주간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작심한 듯 부동산과 가계부채 현황을 우려하고 위험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쏟아냈다. 부동산이란 단어만 40번 넘게 썼다. 그는 “서울 등 특정 지역 부동산 가격이 통화정책의 수량적 목표가 될 수 없다”면서도 “한국 경제 전체로 볼 때 부동산 가격이 소득과 비교해 너무 오르면 버블(거품)이 꺼지는 걱정뿐 아니라 자원배분 측면에서도 부동산에 대출 등으로 돈이 몰렸다가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부동산 경기를 살려야 하는 고리를 끊어줄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 한은의 금리 인하 시점이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10월 인하설이 유력하지만, 두 달 안에 집값·가계대출 급등세가 뚜렷하게 잡히지 않으면 피벗은 11월 이후로 미뤄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
김경진 기자 |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기 위한 마지막 퍼즐 조각이 집값 안정”이라며 “한은이 쓸 수 있는 수단은 금리라 한계가 있다. 정부가 정책과 규제를 활용해 집값을 안정시켜 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기준금리 동결 결정에 대해 아쉽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금리 결정은 금통위의 고유 권한이지만 내수 진작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다”며 “다음 주 중 추석 성수품 공급 등 민생 안정 대책과 함께 소비진작 대책을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금통위 결정에 의견을 밝힌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대통령실 내부에서 금리 인하의 필요성을 높게 봤다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정부는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 방침을 내놓으면서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만큼 불과 두 달 뒤인 10월에 한은이 안심하고 기준금리를 낮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영희 디자이너 |
오는 9월 열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9월 금리 인하 결정도 중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시장은 21일 공개된 7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을 토대로 9월 금리 인하를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관심은 ‘얼마나 내릴 것인가’로 옮겨갔다. 9월 0.25%포인트 인하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지만, 연내 1회 이상의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 가능성도 나온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10월에도 가계부채·부동산·환율 여건이 좋지 않을 경우, 한은은 11월 이후로 인하 시점을 미룰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시장에선 미국이 올해 0.75~1%포인트가량 금리를 내릴 수 있다고 보고 있는데, 한은 입장에선 이런 인하 폭과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향후 인하 폭을 결정할 때 고민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곽재민·오효정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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