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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트럼프 때문에" 3년 새 9140명 떠났다…일할 사람이 없는 반도체 공장[칩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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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관세인상·비자제한에 인력난 심화 논문

2029년까지 미국 내 14.6만명 부족 전망

인력 수요·공급 안 맞아 당분간 격차 클 듯

"격차 메우려면 패러다임 전환 필요"

미국이 심각한 반도체 인력난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부터 실시한 관세 인상, 비자 제한 등 각종 보호무역주의 정책으로 이러한 인력난이 심화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제조시설을 확보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설에서 일할 직원이 필요한 만큼 난제를 해결할 묘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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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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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올리고 취업비자 막자…3년 새 9140명 반도체 업계 떠나
메흐메트 카나야즈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와 이실 에렐 오하이오주립대 교수, 유미트 그룬 텍사스대 교수는 지난달 '보호무역주의가 인재를 빼앗아갈 때' 논문을 통해 2018년 이후 미국에서 시행된 보호무역 정책이 반도체 산업 내 노동력에 타격을 줬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제조 관련 기술을 갖춘 160만명의 기술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이 논문은 지난달 미 민간 싱크탱크인 케이토연구소와 유럽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소(CEPR) 등에 보고됐다.

2017년 트럼프 정부가 시작된 이후 각종 관세율이 높아졌고, 고숙련 노동자나 외국 기업의 미국 주재원 비자 발급이 제한되는 등 각종 보호무역 정책이 쏟아졌다.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통상 기술 이민자들이 미국에 입국할 때 신청하는 '전문직 단기취업(H1B)' 비자 발급자를 기술 인력으로 봐선 안 된다며 이를 포함한 일부 취업비자를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미국 일자리를 보호하고 자국에서 생산한 제품 수요를 키우겠다는 목적이 있었으나, 정작 필요한 인력 수급에 타격을 준 상황이 됐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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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교수가 분석한 논문 내용을 보면 이러한 보호무역 정책으로 미 반도체 회사 내 과학자와 엔지니어를 채용하는 활동이 2019년 대비 2022년 9% 감소했고, 전체 일자리도 3% 줄어드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연평균 엔지니어와 과학자 2285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누적으로 보면 2017년 말 엔지니어 6만6382명, 과학자 9768명이 업계에 있었으나 2019~2022년 중 9140명이 이탈했다.

연구진은 "특히 신입 직원이나 어린 연차 직원들이 급격한 고용 감소를 경험했다"면서 "노동력 중에서도 어린 직원들에게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더 큰 문제로 지적된 부분은 앞으로 반도체 산업을 이끌어 나갈 학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반도체 제조와 관련한 기술을 전공하는 미국 학생의 경우 학부생이 보호무역 정책 실행 이전인 2017년 6만5290명 수준이었으나 2022년 1만2311명으로 대폭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대학원생도 3만9019명에서 2만명 대로 50% 가까이 감소했다.

이들은 반도체 기술 대신 금융, 마케팅이나 다른 고소득 일자리로 이동했으며 미국 내에서 반도체 제조 산업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계기가 됐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현재 대학을 졸업하는 규모로 보면 미국 내에서 필요한 반도체 인력을 모두 채우기 위해선 16년가량이 걸릴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해결책 안 보이는 美…"패러다임 전환 필요"
이러한 보고서가 눈에 띄는 건 미국의 반도체 인력난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매켄지가 이달 초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9년까지 미 반도체 산업에서 추가로 필요한 반도체 엔지니어와 기술자 수는 최대 16만4000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 기간에 새로 업계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력은 1만8000명에 불과해 2029년까지 14만60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 반도체산업협회(SIA)가 1년 전만 해도 예상 인력 부족 규모로 밝힌 6만7000명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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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반도체지원법을 제정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제조시설을 자국에 유치한 조 바이든 대통령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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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에서 반도체 산업이 인기 직종이 아니라는 점도 인력 부족을 심화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매켄지가 미 인구조사국 데이터를 인용해 설명한 바에 따르면 미국 엔지니어링 기술 졸업생 중 엔지니어로 입사하는 비중이 52%인데, 그중 반도체 업계에 취직하는 비율은 3%, 약 1500명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 미 전역에서 반도체 인력을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으나 교육 기간이 길고 교육을 끝까지 받는 비율도 비교적 낮은 편이다.

빌 와이즈먼 매켄지 수석 파트너는 "중요한 인재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기 위해 수많은 이니셔티브가 계획되거나 진행 중이지만, 수요와 공급 격차가 상당하며 이러한 격차는 꽤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격차를 메우기 위해 미 반도체 산업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자 인력을 양성, 확보, 유지할 수 있도록 접근 방식을 대대적으로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심각한 반도체 인력난을 겪는 사이 반도체 제조시설은 연이어 건설되고 있다. SIA가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16개 주에서 25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며 이 프로젝트는 향후 20년간 3500억달러(약 467조7400억원)의 총 투자가 이뤄질 예정이다. 대부분은 2030년까지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 정부는 이 프로젝트에 324억8760만달러의 보조금과 288억달러의 대출 보증 지원을 약속했다.

반도체 인력난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등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향후 10년간 5만6000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도 래피더스, TSMC 공장 등을 유치하면서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 일본의 반도체 분야 엔지니어 구인 건수는 2013년 대비 2021년 7배 이상, 2022년 13배 이상에 달했다는 구인 업체 분석도 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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