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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뿌리는 캄캄한 곳에서 꽃을 피운다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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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아프리카 아시아계 흑인이라는 핸디캡, 어려서 부모가 이혼했다는 아픔을 극복하고 잘 성장하여 미국의 여성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15일 메릴랜드주 프린스 조지스 카운티에서 대선 유세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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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 올림픽에 이어 세계의 눈길을 끌며 나날이 뉴스로 중계되는 일이 있는데, 미국 대통령 선거다.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970년 이후로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미국 대통령 셋을 들라면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 분의 주요한 공통점은 '아버지가 없거나 큰 힘이 되지 못해 가난한 집에서 자란 왼손잡이 대통령'이다. 이들 모두 비싼 사립기숙학교를 다니지 못했지만 자기만의 계획과 자존감을 가지고 학교 생활을 했다.

레이건의 아버지는 여러 마을을 돌며 신발을 파는 외판원이었는데 알코올중독자였다. 레이건은 십대 때부터 알바를 했고 열여섯 살부터 6년간 인명구조원을 하며, 익사할 뻔한 사람을 77명이나 살려냈다. 그는 서른 살 때 눈밭에서 얼어 죽은 아버지를 발견했다.

클린턴은 아버지가 숨진 후에 태어난 유복자였다. 의붓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였는데 그의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다가 화가 나서 총으로 쏘았다.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죽을 수도 있었다. 후회하는 의붓아버지와 함께 가족은 이사를 갔는데, 밤에 마당을 가로질러 '변소'에 가야 하는 시골집이었다. "그 변소에 앉으면 가끔 독이 없는 큰 뱀이 밖에서 들여다보기도 했다"고 자서전 '마이 라이프'에 썼다.

오바마는 어려서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인도네시아로 갔다. 하지만 의붓아버지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아 하와이로 와서 외조부모 슬하에서 자랐다.

이들은 가난했지만 누구도 "돈, 돈"거리지 않았다. 레이건은 운동을 좋아했지만 공부는 보통이었다. 사람들을 관찰하며 언행을 학습했고 영화배우로, 정치가로 살며 자산으로 삼았다. 클린턴과 오바마는 어려서부터 평생 책을 끼고 사는 독서광으로 살았다. 클린턴은 "열일곱 살 때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연설을 텔레비전에서 보며 울었고, 연설이 끝나고서도 한참을 울었다. 그 연설에 담긴 꿈을 실현하기 위해 평생 무엇이든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썼다. 오바마는 대학을 마치고 스물다섯 살 때부터 시민운동가가 되어 시카고의 교회가 하는 빈민 지원에 참여했다. 가난한 이들에게 직업을 구해주고 집을 고치고 환경을 손보는 일을 계획, 실행했다. 이후에 하버드 로스쿨를 마쳤지만 돈을 벌기보다는 민권운동을 하고, 정치가의 길을 갔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올곧고 부지런한 어머니가 "힘들어도 물러서지 말라"고 엄하게 격려했다는 점이다. 클린턴은 때때로 맞기도 했다. 이들은 이런 훈육을 고맙게 받아들이며 어려운 이들에게 따스한 연민을 키웠다. 그래서 이들은 음울하지 않고 낙관적이며, 매우 유머러스하고 웅변가다운 성품을 키웠다.

이들처럼 어려운 시절을 견디며 자랐지만 큰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자탄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사회 시스템과 행운의 힘이 도와야 한다. 모두가 똑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우주는 비범보다 평범을 더 사랑하여 세상에는 평범한 이들이 훨씬 더 많다. 똑같이 평범한 삶을 살아도 유복하게 자란 이들은 대부분 그 가치를 잘 모른다. 그래서 경솔하거나 부주의하기 쉽다. 어렵게 자란 사람이라야 그 소중함을 알고 가족과 삶을 아끼며 살아간다. 뿌리는 캄캄한 곳에서 꽃을 피운다. 뿌리가 더 깊이 내려가면 더 많은 꽃이 만발한다.
한국일보

권기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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