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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교원평가’라는 무딘 칼 [똑똑!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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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해 7월29일 전국 교사와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지하철 경복궁역 일대에서 ‘공교육 정상화 집회’를 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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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 | 초등교사·동화작가



10여년 전 1급 정교사 연수를 받을 때였다. 교직 실무 강의 중에 강사가 교원능력개발평가 결과 잘 받는 법을 소개했다. 교원능력개발평가가 학교 현장에 처음 도입된 지 2년째였지만 나는 평가 때마다 학교 평균을 깎아 먹는 점수를 받았던 터라 귀가 솔깃했다. 강사의 말에 따르면 학생들에게 교원평가 항목에 나오는 내용을 교육하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시키는 것이 좋은 결과를 받는 비법이라고 했다. 학부모는 학교 현장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만족도 조사를 할 때 자녀의 의견을 참고로 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교육 활동의 의도와 결과를 평가의 언어로 바꾸어 생각하기 어렵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지금 뭘 하고 있는지를 평가의 언어로 말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막상 그대로 하지는 않았다.



경력이 쌓이고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면서 학교 평균과 비슷한 점수를 받게 된 뒤에도 교원평가 결과를 열람할 때면 늘 긴장됐다. 서술형 문항의 답변 때문이었다. 내가 교사로서 갖고 있는 특성은 ‘학생들에게 친절하고 수용적이다’라는 평가와 ‘학생들에게 좀 더 엄격했으면 좋겠다’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곤 했다. 어느 해 옆 반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엄격한 편이었는데 ‘질서가 잘 잡혀서 좋다’라는 평가와 ‘선생님이 안 웃어서 무섭다’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성격을 반씩 섞었으면 좋겠다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엄격하면서 친절한 교사’는 그야말로 유니콘 같은 존재라는 푸념과 함께.



교원평가는 모두 익명으로 실시된다. 드물지만 서술형 평가에서 장난스러운 말이나 악의적인 말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교사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이라고 해도 이름을 밝히거나 얼굴 맞대고는 하지 못할 무례한 표현을 보면 힘이 빠진다. 평가 결과는 그해에만 열람할 수 있지만, 한번 마음에 박힌 말은 좀처럼 잊히지 않아 십수년이 지나도 문득 떠오른다.



이렇게 말 많고 탈 많은 교원능력개발평가가 ‘교원역량개발지원제도’(가칭)로 탈바꿈한다고 한다. 교육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개편 방향(안)을 살펴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학부모, 학생 만족도 조사의 서술형 평가 폐지다. 2022년 학생 만족도 조사에서 심각한 교권 침해 사례가 있었던 것 또한 큰 영향을 미쳤다. 학생 만족도 조사의 서술형 평가는 없어지고, 학부모 만족도 조사는 선다형과 서술형 모두 폐지하는 대신에 학교 평가의 서술형 문항에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선다형 학생 만족도 조사는 ‘만족도’가 아니라 교사의 교육 활동과 학생의 성장과 변화를 동시에 확인하는 ‘학생인식조사’로 바뀌었다. 동료교원평가의 경우 교원 성과급 지급을 위한 성과평가와 다면평가, 교원평가까지 세번에 걸쳐 중복되어 이루어지던 것을 다면평가와 연계하여 교사가 필요한 역량을 개발하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교원평가 결과에 따라 강제로 부여했던 능력향상연수제도는 폐지되었다.



교육부에서 교원평가를 실시하고자 하는 목표는 교사의 전문성 신장이다. 평가 결과를 수렴하여 부족한 능력을 객관적으로 살피고 개선해 나가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제도의 본질적인 문제는 학습지도와 생활지도에 걸친 교사의 역량을 정량화하고 객관화하여 평가하기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교사가 자신의 역량을 개발해 나가는 과정에서 교원평가 결과를 참고로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으나 그 결과에 부족한 지표를 채우는 식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뜻이다. 평가 결과를 학습연구년 대상 선정과 연계하여 인센티브로 부여하겠다는 계획 또한 걱정스럽다. 연구년은 연구가 필요한 교사에게 주어져야지, 점수가 높은 교사에게 상처럼 주어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교원평가제도가 진정으로 교사의 전문성을 신장하는 데 도움이 되려면 교사가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계획을 조정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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