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3 (금)

최저임금 차등은 저출생 대책이 아니다 [세상읽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지난 6일 아침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입국한 뒤 버스로 이동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장영욱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안녕하세요 글로리입니다. 필리핀 대학에서 마케팅 공부했습니다. 한국에서 좋은 추억 만들고 싶습니다.”



‘서울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참여자로 인천공항에 도착한 글로리 마시나그씨가 한국말로 이렇게 소감을 전했다. 글로리씨를 비롯한 100명의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4주간 교육을 거쳐 9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한다. 서비스 대상은 5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서울의 157가구다.



참 논란이 많았던 사업이다. 최저임금 적용 여부부터, 가사관리사의 자격과 업무 범위,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돌봄노동 자체의 열악한 근로 여건, 외국인과 경쟁하게 될 내국인의 처우, 그리고 저출생 대책으로서의 실효성까지 답 내기 쉽지 않은 문제가 여럿 얽혀 있다. 그래도 이번 시범사업에선 그간 논의를 반영한 흔적이 보인다. 사용자의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시간제를 도입하면서도 서비스 제공자에게 최저임금과 주 30시간의 최소 근로시간을 보장하기로 했다. 국가 공인 돌봄노동 자격증을 보유한 인력을 모집함으로써 자격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고, 시행업체를 선정해 근로와 생활 중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최대한 관리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논란이 다 사라진 건 아니다. 역시 비용이 제일 큰 문제다. 최저임금에 보험료까지 더하면 전일제 서비스는 238만원, 일 4시간 서비스는 119만원을 내야 한다. 내국인 임금보다는 조금 낮지만 여전히 부담이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서비스 신청 및 선정 가구가 강남, 서초, 용산, 성동 등 부유한 지역에 몰렸다. 출생아 수를 고려한 가사관리자 선정 건수는 자치구별 1인당 생산량과 뚜렷한 양의 상관관계를 나타냈다.



현재 방식으론 ‘돌봄 부담 완화를 통한 출생률 제고’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고려하고 있는 카드는 최저임금 차등이다. 국적에 따른 최저임금 차등은 국내법이나 국제 기준상 명백한 차별이므로 ‘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에선 불가능한 선택지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게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과 가사사용인 사적 계약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업종별 차등은 최저임금법 4조에 따라 지금도 적용할 수 있다. 그런데 가사 서비스업의 최저임금을 낮게 책정할 경우 외국인뿐 아니라 내국인 돌봄종사자의 임금까지 영향을 받는다. 비용을 낮추겠다고 임금을 깎으면 그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의 처우가 안 좋아지고 임금이 높은 다른 업종으로 옮겨갈 유인이 커진다. 가사, 간병, 돌봄 서비스는 앞으로 인력이 부족해질 대표적인 업종들이다. 대우를 좋게 해줘서 붙잡아도 모자랄 판에 임금 차등이라니. 현명한 방안은 아니다.



다음으로 사적 계약을 보자. 내국인이어도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가사사용인은 근로기준법상 최저임금 적용 예외다. 유학생 비자, 결혼 비자 등 이미 체류 자격이 있는 외국인이 돌봄 또는 가사 서비스업에 진입할 수 있게 열어줄 경우 최저임금 적용을 합법적으로 우회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데 가사사용인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커서 이미 제도가 개선되고 있다. 2022년부터 시행 중인 ‘가사근로자법’은 가사근로자가 전문 중개기관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게 정해뒀다. 문제가 있어서 고쳐가고 있는 제도를 유독 외국인에게만 적용하겠다는 발상은 가히 차별적이다.



임금은 사용자에겐 비용이지만 노동자에겐 생계의 수단이다. 특히나 최저임금은 그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살도록 하는 ‘최소한의 보상’에 대한 약속이다. 사용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동자의 존엄을 허물 수는 없다. 외국인이라고 쉽게 생각하진 말자. 외국인 가사관리사 고용 비용의 반대편에는 대학 공부를 마치고 나서, 한국에서 추억을 만들고 싶고, 고향에 남아 있는 가족을 부양하고 싶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은, 글로리씨 같은 ‘사람’이 있다.



최저임금 차등이 답이 아니라는 합의가 이뤄지면 비용 부담을 줄이는 다른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체류 자격을 완화하면 시간제를 더 활성화하거나 시설형과 재가형 돌봄에 적절히 인원을 배치하여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것조차 부담되는 가정에는 정부 보조금을 지급할 수도 있다. 어떤 대안을 생각하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과 제공받는 사람이 동등한 사회의 구성원임을 전제로 하자. 아이 낳고 키울 만한 사회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에 힘을 더해주세요 [한겨레 후원]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