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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퇴근 후 카톡 금지' 한국과 호주 대처 다른 이유 [마켓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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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연 기자]

우리나라는 지난 8년 동안 '퇴근후 업무 카톡 금지'를 추진해 왔다. 하지만 제대로 된 논의 테이블조차 만들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호주가 26일부터 근로자의 '단절될 권리'를 침해하면 기업에 최대 약 846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법을 시행한다. '노동자의 천국'으로 분류되는 호주와 우리나라의 현실을 1대1로 비교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한번쯤 따져볼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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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의 단절될 권리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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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절될 권리=세계 몇몇 나라의 근로자들은 회사와 직장 상사로부터 업무 외 시간에 '단절될 권리(Right to Disconnect)'를 보장받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이 가장 앞서 있고, 8월 26일부터 시행한 호주가 가장 강력한 처벌 규정을 가졌다.

프랑스 대법원이 '단절될 권리'를 인정한 건 2004년이지만, 노동법에 포함한 건 2016년 8월, 실제 적용한 건 2017년 1월이다. 프랑스 노동법은 직원이 휴식이나 휴가 중에 회사로부터 단절될 권리가 필요한 이유를 직원의 건강 때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은 2003년 기존 근무시간법이나 직업 안전 및 건강 관련법을 통해서 이 '단절될 권리'가 존재한다고 확인했다. 별도의 법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독일 연방 노동법원은 이 권리가 직원의 건강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규정했다. 그래서 독일 노동부가 2016년 관련 백서를 발표하기 이전에 이미 이를 시행하는 기업들이 등장했다. 도이치텔레콤은 2010년, 폭스바겐은 2011년 관련 규정을 만들었다.

근로자의 단절될 권리는 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에서는 일반적이다. 캐나다·호주를 포함해 세계 14개 나라가 이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유럽 의회는 이미 2003년에 직원의 근무 시간과 작업 안전 및 건강 보호를 위한 지침을 내렸다. 그래서 유럽과는 다른 환경인 한국·호주 등이 이 '단절될 권리'를 어떻게 법제화하는지가 중요했다.

■ 호주 임금 문제=호주는 26일부터 근로자 15명 이상 사업장의 사용자나 상사가 근로자에게 업무 외 시간에 이메일, 메신저, 전화 등으로 연락하면 벌금을 낸다. 올해 2월 호주 의회가 이런 내용의 근로기준법을 통과시켰다. 이를 어기면 회사는 최대 9만4000호주달러(약 8460만원) 벌금을 낸다. 연락을 취한 상사 개인도 최대 1만9000호주달러(약 1710만원)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호주의 단절될 권리는 무급 초과근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연결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근로자가 약속된 휴식을 보장받고, 이를 통해서 건강을 관리한다는 기존 인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기업이 근무가 끝난 근로자에게 연락하면 그만큼 무급 추가근무 시간이 늘어난다는 문제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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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민간 싱크탱크인 호주연구소(Australia Institute) 산하 미래일자리센터는 지난해 단절될 권리 관련 보고서를 내고 "호주 근로자는 주당 평균 5.4시간, 연간 약 281시간 무급 추가근무를 했다"며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1300억 호주달러(약 880억 달러)"라고 주장했다.

무임금 추가근로가 청년층 저연차 직원들에게 몰리는 현상도 문제였다. 호주연구소의 지난해 '칼퇴 보고서(Go home on time 2023)'에 따르면 호주의 18~29세 근로자의 무급 추가근무 시간은 주당 평균 7.4시간에 달했다. 30대 5.3시간, 40대 4.5시간, 50대 4.3시간, 60대 이상 3.6시간보다 월등히 많았다.

■ 한국 여가 문제=우리나라는 지난 2016년 신경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하 당시 직함)이 처음으로 단절될 권리에 해당하는 '업무 카톡 금지법'을 추진했다. 취지는 근로자의 사생활 자유 침해였다. 지난해에도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같은 내용으로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역시 취지는 근로자의 사생활 침해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었다.

한국법제연구원은 2017년 '퇴근 후 업무카톡 금지법안의 주요내용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근로시간과 업무 범위를 구체화하는 법안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산업재해보상 방안 등 스마트워크 관련 업무 가이드라인을 하루빨리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도 당시 검토보고서에서 "입법 취지는 타당하지만 업무시간 외라도 긴급한 연락이 필요한 경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업종별로 여건 차이가 크기 때문에 법률로 일괄해 금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카톡 금지법'을 여가와 사생활 보호가 아닌 임금의 문제로 접근했다면 어땠을까. 호주와 달리 우리나라에는 무급 초과근무 통계가 없다. 다만, 전체 초과 근무시간이 여전히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인데, 더 오래 일한다고 임금을 더 주지 않는 포괄임금을 도입한 기업의 수가 압도적으로 높다. 우리나라 무급 초과근무가 호주보다는 상당히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다.

■ 단절될 권리와 포괄임금=우리나라 직장인 10명 중 8명은 무급 초과근무를 하고 있다. 잡플래닛이 올해 3월 실시한 포괄임금제 현황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83.4%가 "포괄임금제 적용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근로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포괄임금제를 시행중이라고 응답한 사람도 19.9%였다. 그래서 근로시간을 정확하게 셀 수 없다고 응답한 직장인은 80.5%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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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가 26일부터 근로자에게 근무외 시간에 연락하면 벌금을 부과하는 단절될 권리 법안을 시행한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모습.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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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포괄임금제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오직 판례로만 존재할 뿐이다. 고용노동부는 노동포털에서 "포괄임금이나 고정초과근무(OverTime·OT)는 근로기준법상 제도가 아닌 판례에 의해 형성된 사업장의 임금지급 계약 방식"이라며 "포괄임금, 고정OT 방식으로 임금을 지급해도 최저임금법, 근로기준법 등을 준수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노동포털은 "고정연장근무를 월 10시간 계약을 하고, 초과근무가 10시간보다 더 많았는데 고정OT만 지급하면 신고대상"이라고 적시했다. 단절될 권리인 '업무 카톡 금지법'이 포괄임금을 포함한 무급 초과근무 문제와 함께 다뤄져야 하는 이유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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