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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김정은 비위 안맞춘다는 해리스, 미국 외교에 도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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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외교정책 방향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정세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8월 22일(현지시각) 해리스의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은 그의 외교관과 세계관의 일단을 드러낸 것이어서 국내외에서도 큰 관심을 모았다. 그는 "해외에서 미국의 안보와 가치를 확고히 증진하겠다"며 "나는 최고사령관으로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치명적인 전투력을 확보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또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안보와 이상을 수호하는 데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며 "왜냐하면 민주주의와 폭정 사이의 투쟁에서 나는 어디에 서야 하고 미국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최고사령관으로서는 최강의 군사력을 건설하고, 대통령으로서는 폭정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이는 민주당이 정강 정책을 채택하면서 외교 정책의 목표를 "전 세계에서 미국 리더십의 강화"로 정한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그의 연설에선 적대국이나 전략적 경쟁자를 상대로 어떤 외교를 펼처나갈 것인가에 대한 비전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민주당의 정강 정책이나 해리스의 연설은 과거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쥐락펴락했던 네온콘의 노선을 연상시킨다. 세계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보면서 국제사회의 문제 해결이나 대응 방식으로 외교보다는 군사력을 신봉하고 있기에 그러하다. 그만큼 민주당의 외교정책 방향의 일탈이 '뉴노멀'이 되고 있다.

특히 해리스는 "나는 트럼프를 응원하는 김정은과 같은 폭군이나 독재자의 비위를 맞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조선(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반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김정은과 친분을 과시하면서 자신이 재집권하면 북미관계 개선을 추구하겠다는 공약을 겨냥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해리스가 백악관에 입성하면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짙은 우려를 자아낸다. 김정은 정권을 '악마화'할수록 집권 이후 미국의 외교적 선택지와 유연성이 좁아지고 미국의 전략적 우려도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실패한 대북정책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세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 첫째는 바이든 행정부가 1990년대 초반에 북미대화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조선과 대화를 한 번도 하지 못(안)한 정부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조선이 대화의 문을 닫아건 것이 주된 원인이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대화를 제의하면서도 도덕적 비난과 대북 제재, 그리고 한미(일) 연합훈련을 비롯한 억제 일변도의 정책을 고수한 탓도 크다. 그런데 해리스는 바이든의 대북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쪽에만 치우쳐 있다.

둘째는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의 목표로 내세워온 한반도 비핵화에는 단 1인치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도 핵전략을 재검토할 정도로 조선의 핵 능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8월 20일자 <뉴욕타임스>는 바이든이 지난 3월에 승인한 '핵무기 운용 지침' 개정안을 단독 보도한 바 있다. 이 매체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조선이 현재 60기 이상의 핵무기와 다량의 무기급 핵물질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는 3년 사이에 두 배 가량 늘어난 것이다.

더욱 주목할 점은 미사일방어체제(MD)의 한계를 인정하는 내용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조선의 "한 줌의 핵무기"는 미국 주도의 MD로 대응할 수 있다고 자신해왔다. 그런데 조선의 핵능력이 양적·질적으로 강화되고 북·중·러 공조도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우려가 미국 내에서 제기되면서 대응 전략도 크게 바뀌고 있다.

MD와 기존의 핵전력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미국도 추가적인 핵무기 증강에 나설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핵무기에 대한 안보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공약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흐름이다.

그런데도 해리스의 안보 공약은 아직까진 동맹·억제력·MD 강화에 머물러 있다. 바이든의 바통을 이어받겠다는 해리스 집권 시 북핵 고도화가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셋째는 바이든 임기 동안 조선의 전략적 입지가 크게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조선의 대러 무기 제공과 북·러 동맹 복원, 그리고 북중관계 강화는 미국의 주요한 전략적 우려로 떠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효능감을 상실한 바이든의 대북정책과 더불어 중국과의 치열한 전략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예방 실패 및 장기화 선택,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인도·태평양 전략 강화 및 둘 사이의 연계 시도 등이 맞물린 결과이다.

정리하자면 바이든의 4년을 거치면서 조선은 더더욱 만만치 않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는 미국의 대북 인식과 정책도 진화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 출발점은 네오콘의 향기가 짙게 묻어나는 발언부터 자제하는 데에 있다. 상대를 자극하는 발언을 일삼을수록 정작 외교가 필요한 시기에 제 발목을 잡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22일(현지시간)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이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DNC)의 마지막 날 대통령 선거 후보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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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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