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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이슈 미술의 세계

시공간 넘나드는 배달기사 이야기…'ACC미래상' 김아영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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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 활용…"AI는 주체적 창작 못 해…끊임없는 인간 돌봄 필요"

연합뉴스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 작품 이미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배달 플랫폼 '딜리버리 댄서'에 소속된 여성 배달기사 에른스트 모, 그리고 또 다른 가능 세계(실제 세계가 아니라 가능한 모든 세계)에서 에른스트 모와 완벽하게 닮은 존재인 앤 스톰.

에른스트 모는 먼 미래의 고립된 가상 도시인 '노바리아'에서 우연히 소멸된 과거의 시간관이 담긴 유물들을 배달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시간관과 가능 세계가 충돌한다.

과학소설(SF)이나 웹소설 내용 같은 이 이야기는 미디어 아트 작가 김아영이 30일부터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선보이는 신작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ACC가 혁신적인 미래 가치와 가능성을 확장한 창조적 예술가를 발굴하기 위해 융복합 예술분야 작가를 대상으로 제정한 'ACC 미래상'의 첫 수상작으로 가로 길이 11m 크기의 대형 스크린 3개를 사용한 대규모 작품이 1천560㎡ 규모의 복합전시1관에서 관람객들을 만난다.

'딜리버리 댄서의 선'은 가상 도시 서울을 배경으로 에른스트 모가 가능 세계에서 앤 스톰을 만난 이야기를 털어놓는 식으로 구성된 전작 '딜리버리 댄서의 구'에서 기본 인물 설정을 빌려왔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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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작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23일 만난 작가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시간'"이라며 "고대의 시간관과 미래의 시간관이 혼재된 시간관을 그린다"고 설명했다.

"행성의 움직임을 관찰해 우주를 이해하는 우주관이 녹아있던 것이 과거의 달력이었다면, 위치정보시스템(GPS)을 통해 방위를 계산하고 디지털시계가 시간을 알려주는 이 시대에 소멸된 우주와의 연결된 감각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작품입니다."

제작 방식도 달라졌다. '딜리버리 댄서의 구'는 실사 영상과 게임 엔진, 라이다 스캔, 3D 모델링 등을 활용했지만 '딜리버리 댄서의 선'은 절반은 게임 엔진으로, 절반은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제작됐다.

작가는 "기존에는 시나리오를 짠 뒤 제작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시나리오를 열어두고 작업 과정에서 AI와 대화하며 세계관을 설정해 나가는 방식으로 제작했다"며 "AI 작업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수많은 우발적인 미학적 가능성을 제시해 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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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 전시 포스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작가는 AI가 만능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AI 프롬프트(명령어)를 하나하나 다듬고 발전시키는 작업에 참여한 제작진을 AI를 돌봐야 하는 'AI 베이비시터'라고 표현했다.

"저는 기술 긍정론자도, 비관론자도 아니에요. 이번 작업 과정을 통해 AI가 만능이 아니고 너무나 많은 돌봄이 있어야 하는, 선택 노동을 우리에게 강요하는 도구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작가는 이제 AI가 모든 것을 대체한다기보다 당연히 쓰이는 도구의 하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편집 프로그램인)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없이 작업할 수 없듯이 AI는 기본적으로 쓰게 될 것 같아요. 이제 그 정도 수준인 거예요. 그러나 아직까진 AI가 작업의 도구이지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창작할 수는 없는 수준인 것 같아요. 10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기술 수준으로는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많은 고민과 고통의 시간, 시간의 더께, 이런 것이 AI의 노동에는 없기 때문에 결국 그것을 의미화하는 것은 인간의 노동일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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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 작품 이미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딜리버리 댄서의 선'에는 전작 '딜리버리 댄서의 구'에 대한 호평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25분 분량의 영상 작업인 '딜리버리 댄서의 구'는 지난해 세계 최대 미디어 아트 상인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에서 최고상인 '골든 니카'상을 받았다. 이 상이 1987년 시작된 이래 한국인이 골든 니카상을 받은 것은 김아영이 처음이다. 수상 이후 주목도가 높아지면서 '딜리버리 댄서의 구'는 영국 테이트모던에 소장됐고 최근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도 상영회가 열렸다. 또 내년 2월에는 독일 베를린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관인 함부르거 반호프에서 '세미 회고전'이 예정돼 있다.

작가는 "(수상 이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일이 많았다"면서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강도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지만 관심도가 커졌다"고 말했다.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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