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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마비된 암 환자도 거부당했던 '응급실 뺑뺑이'의 속사정…"이건 응급실의 문제가 아니다"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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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조동찬] 의사-환자 간 신뢰 회복이 열쇠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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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저녁 서울대병원 응급실 앞, 대구에서 올라온 구급차가 3시간째 기다리고 있다. 구급차에는 마비 증세가 있는 암 환자가 타고 있었다. 구토 증세까지 있어 위험해 보이지만 의료진은 '위중하지 않다'며 치료를 거부했다고 한다. 다른 구급차에서는 인천에서 온 뇌경색 환자가 2시간 동안 기다리다가 다른 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최근 어느 방송 뉴스는 병원이 응급 환자를 거부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현장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 뉴스를 보면서 '도대체 응급실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응급실 밖의 사정을 저토록 모르는 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2024년 8월 25일 일요일, 한양대구리병원 응급의학과 김창선 교수는 오프였지만 가족들과 나들이는 아예 계획하지 않았다. 오프 때 잠을 자 두지 않으면 강도 높은 근무를 견뎌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기 전, 그는 응급실 빈 병실이 없는데도 심정지 환자를 받아 살려낸 이력이 있다.

심폐소생술실이 비어 있는 한 심정지 환자를 마다하지 않는 김 교수, 그가 쉬는 날인지 모르고 질문을 던졌다.

"응급실 바깥에선 마비된 암 환자가 3시간 넘게 기다리고, 뇌경색 환자가 2시간 기다리다 발길을 돌리는데 그때 응급실 안에서는 어떤 사정이 있었던 걸까요?"

무시해도 될 기자의 질문에 그는 적극적으로 답을 해왔다.

"당시 서울대병원 응급실의 사정은 모르지만, 저의 요즘 생활을 말씀드리면 충분히 답이 될 것 같습니다."

그는 며칠 전 119로부터 심장정지 환자를 받았던 날의 이야기를 꺼냈다. 심폐소생술을 해서 일단 살려둔 후 심정지 원인을 찾아야 했다. 중장년층의 급작스러운 심정지는 대개 심근경색이거나 뇌졸중이라서 두 가지 질환에 대해 빠르게 검사를 진행했는데 심근경색으로 확인됐다. 심장의 주요 혈관이 막힌 터라 막힌 혈관을 빠르게 뚫어주지 않으면 환자의 심장은 또 멈출 것이다. 김 교수는 재빨리 응급 심장내과팀에 연락했는데, 그 팀은 다른 환자의 심장 혈관을 뚫는 중이었다. 이럴 땐 기다릴지 아니면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할지(이건 응급실 뺑뺑이에 속한다) 빠르게 판단해야 하는데, 다행히 마무리 중이어서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그동안 환자의 상태가 악화한다면 김 교수는 법적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그러던 중 뇌졸중이 의심되는 환자를 받아야 한다는 연락이 도착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은 심장정지, 중증 외상, 흉통(심혈관 질환), 뇌졸중(뇌혈관 질환) 등 4가지 중증 응급 질환에 대해서는 수용 거부할 권한이 기본적으로 없다. 그는 뇌졸중 중에서 뇌경색(뇌혈관이 막혀 약물로 막힌 혈관을 뚫는 치료가 필요함)이기를 바랐다. 이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김 교수가 직접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환자 병명은 뇌출혈이었다. 응급 개두술을 할 수 있는 신경외과 팀은 다른 수술을 방금 시작한 상태였다.

급하게 다른 병원을 알아봐야 했는데, 이것도 응급실 뺑뺑이다. 다섯 번째 병원에 전화를 걸고 있을 때 뇌출혈 환자의 상태가 악화했다. 두개강 내 뇌의 압력이 높아진 탓일 것이다. 급하게 뇌압을 낮게 하는 약물을 투여했다. 그러는 중에 심정지에서 회복했던 환자의 혈압이 다시 떨어진다. 혈압 상승 약물을 투여하고 심정지에 대비해 심폐소생술 기구들을 챙기며 응급심장내과 팀에 재촉 전화를 넣는다. 이러는 사이 1시간 넘게 대기하는 환자가 10명을 넘어섰고, 응급실 밖에는 새로 온 구급차들의 불빛이 번쩍이고 있다.

"제가 심정지 환자와 뇌출혈 환자에 동분서주할 때 응급실 밖에서는 뺑뺑이가 벌어지고 있었겠죠. 응급실 뺑뺑이의 본질은 응급실이 아닙니다. 단언컨대 구급차 타고 온 중증 응급 환자를 여력이 있는데도 이리저리 뺑뺑이 돌리는 응급의학과 의사는 없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응급실 뺑뺑이는 뇌출혈, 중증 외상 등을 치료하는 의료진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거예요."

'응급실 뺑뺑이' 사건 처리가 '응급실 뺑뺑이'를 악화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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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대구에서 17세 청년이 4층 건물에서 추락했다. 목격자의 신고를 받고 119가 출동했을 때 환자는 의식이 있었으며 간단한 대화 정도는 가능했고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 등 바이털 사인도 양호했다. 4층 높이에서 추락하면 그 누구라도 중증 외상을 피할 수 없다. 운이 나쁘면 바로 목숨을 잃지만, 운이 좋으면 이 청년처럼 당장은 상태가 양호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청년이 4층에서 추락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게 했고, 결국 비극적 결말로 이어지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청년을 실은 구급차가 여러 병원을 거친 후 경북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응급실엔 빈 병실이 없었고 이 이유를 들어 의료진은 청년을 수용하지 않았는데, 경북대 병원 관계자는 바로 이 지점을 무척 안타까워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4층 건물에서 떨어진 환자라고 연락을 받았다면 응급실에 없는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수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회에서 만난 당시 경북대 권역외상센터 당직 응급의학과 교수는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나중에 확인을 해보니 추락 환자가 우리 병원에 도착한 시간에 저는 전공의랑 병원 옥상에 있었습니다. 타 지역에서 뇌졸중 환자가 구급 헬기를 타고 도착했거든요. 그럼에도 그 청년이 4층에서 떨어진 걸 알았다면 저와 전공의 둘 중 한 명은 그 친구에게 달려갔을 겁니다."

이 사건으로 경북대병원을 포함한 4개 병원이 행정처분을 받았는데, 환자가 병원을 들렀는데도 적절한 처치를 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이다. 특히 대구파티마병원 전공의는 개인 자격으로 기소됐다. 반면 중증 환자 진료 중이어서 추락 환자를 수용할 수 없다고 전화로 얘기한 두 개 병원은 처벌에서 제외됐다. 정부가 현장 조사를 통해 신중하게 내린 결론이겠지만, 현장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수도권 어느 대학병원 의료원장은 다음 날 바로 아래와 같은 지시를 내렸다.

"신경외과, 외과 등 여력이 안 될 것 같으면 중증 환자 문의가 전화로 왔을 때 아예 안 된다고 하세요. 괜히 환자를 직접 보고 결정하겠다는 알량한 의협심 같은 거 하고 싶거든 본인이 병원 만들어서 직접 하세요."

지난해 응급의료법이 개정된 이후 4대 중증 응급 질환일 경우 대형 병원 응급실 여력이 없어도 환자를 수용해야 한다. 법적 책임은 환자를 수용한 병원 의료진에게 남아있게 되고 이런 까닭에 의료진의 태도는 더욱 방어적으로 가고 있다.

법보다 신뢰 관계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젊은 뇌출혈 환자가 지방대학 응급실을 찾았다. 빈 병실이 없었지만, 의료진은 보호자가 환자를 싣고 온 개인 자동차에서 진료를 시작했다. 의료법으로 따지면 불법일 테지만, 촌각을 다투는 젊은 생명을 두고 의료진은 주저 없이 진료하고 수술실로 인계했다. 이 청년은 결국 사망했지만, 보호자는 의료진에게 소송을 걸지 않았고, 여전히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말콤 글라드웰이 쓴 '블링크'에는 미국의 의료 소송 변호사의 얘기가 나온다. 그는 미국에서 의료 소송을 가장 많이 담당하고 있는데, 그가 내린 결론은 다소 동화 속 이야기 같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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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찬 의학전문기자 dongchar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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