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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진흙탕 싸움에 개인 질병 이력까지 노출”…국회 청문회 싹 다 바꾸자 [김대영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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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 싸움장 된 청문회
‘김건희 살인자’ 등 막말 난무
美선 능력·정책검증에 충실
흠집내기 치중 韓과는 달라
사생활 검증도 비공개 원칙


지난 14일 열린 2개의 국회 청문회는 정치인들의 민낯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법사위에서는 권익위 간부의 사망 사건을 놓고 여야 의원들이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급기야 전현희 민주당 의원은 “김건희, 윤석열이 죽인 것이다. 살인자”라고 소리쳤다. 여당 의원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청문회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과방위에서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 과정의 불법성을 밝히겠다는 민주당이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과 맞서면서 고성과 설전이 오갔다.

매일경제

지난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의 ‘불법적 방문진 이사 선임 등 방송장악 관련’ 3차 청문회‘가 열렸다. 이날 청문회는 핵심 증인인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과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부위원장)이 불출석하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열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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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선진국의 청문회는 어떤가. 올해 1월 말 미국 연방 상원 법사위가 개최한 청문회는 한국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온라인에서 아동의 안전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5개 SNS 기업 경영자들이 사과했다. 청문회 후 미 상원은 미성년자 온라인 프라이버시 보호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미성년 보호를 위해 한목소리를 낸 것이다.

왜 한국과 미국의 청문회가 이처럼 차이가 날까. 한국의 청문회는 본래 목적을 벗어나 정쟁의 장으로 변질됐다. 진실 규명이 아닌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목적이다. 의원들의 전문성도 부족하고 사전 준비도 미흡해 청문회의 질이 형편없다.

특히 정부의 고위직을 검증하는 인사청문회에서 양국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미국은 지명자의 자질과 적격성 검토에 초점을 맞춘다. 철저한 사전 조사와 질의응답을 통해 후보자의 정책적 역량과 전문성, 도덕성을 따진다. 상원 청문회에서 승인이 있어야만 해당 인사가 최종 임명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인사청문회는 사생활 검증이란 명분으로 흠집 내기에 집중한다. 고위공직자로 지명된 본인뿐 아니라 친인척에 대한 마구잡이식 검증이 이뤄진다. 최근 있었던 유상임 과기부 장관 청문회는 인권침해 논란까지 불렀다. 야당 의원들이 유 장관 장남의 질병 기록을 집요하게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비공개로 하기로 했던 질병 이력이 노출됐다. 유 장관은 청문회 대기실에서 아들이 아파서 군대에 못 간 것을 좋아할 부모가 누가 있겠느냐고 흐느꼈다고 전해진다. 장관 후보자 배우자들 가운데는 이 같은 사생활 침해가 두려워 공직 진출을 만류하는 사례도 있다고 알려졌다. 이는 유능한 잠재적 공직자를 놓치게 되는 국가적 손실이다. 물론 조희대 대법원장 사례처럼 적합한 후보자를 내면 야당도 무턱대고 반대할 수는 없다. 충분히 논란이 예상된 후보를 내정하고 임명을 강행하는 대통령실의 태도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면 청문회 제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우선 청문회 목적에 맞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 공개적인 청문회 때는 정책 검증과 후보자의 직무 능력 평가만을 하도록 해야 한다. 사생활 검증은 철저하게 비공개로 하고 이를 공개할 경우 의원들이 처벌이나 징계를 받도록 해야 한다. 청문회를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초당적 협의체를 구성해 가동해야 한다. 청문회에서 특정 정당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검증이 이뤄지도록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청문회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해 철저한 후속 조치가 이뤄지도록 관련 절차도 강화해야 한다. 인사청문회의 경우 검증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가 이뤄지고 그 결과에 따라 임명 여부가 정해지도록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국민들이 납득하고 청문회를 신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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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국차장 겸 컨슈머마켓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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