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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DNA의 힘, 타고 난 바람기는 막을 수 없다는 데… [이환석의 알쓸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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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알아두면 쓸모있을 유전자 이야기. 바이오 산업의 새로운 혁신과 도약으로 머지않아 펼쳐질 미래 유전자 기반 헬스케어 전성시대를 앞서가기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 동향에 대한 소개와 관련 지식을 해설한다.
한국일보

TV조선 드라마 'DNA러버'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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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결정론의 한 드라마
배우자 선택과 면역 다양성
DNA 검사예측 맹신 안돼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중에 'DNA러버'라는 로맨틱 코미디가 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연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주요 줄거리다. 유전자 검사가 이미 일상생활 속에서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상황이므로 꽤 흥미로운 설정이다. 만일 유전자 염기서열 안에 이미 '가장 잘 맞는 짝'이 어떤 사람인지가 정해져 있다면, 글자 그대로 '천생배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면역 유전자로 인해서 생기는 체취를 이용해서 유전적으로 이상적인 상대방을 찾는 내용이 등장한다. DRD4 유전자 타입을 이용해 바람기가 많은 상대방을 거른다는 내용이 가장 큰 축으로 활용되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맞는 말이다.

우선 드라마에서 면역 유전자라고 부르는 대상의 공식 명칭은 '주요 조직적합성 복합체'이다. 복잡한 이름을 갖는 이 부분은 실제로는 단일 유전자가 아니라 수백 개의 유전자들로 구성된 유전자들의 집합이다. 영어 공식 명칭은 MHC(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이며 사람의 경우에는 HLA(Human Leukocyte Antigen)라고도 부른다.

당초 다른 개체 간에 조직을 이식하면 거부 반응이 생기는 현상을 통해 처음 발견됐다. 그러나 이후 광범위하게 응용되면서 면역 체계에 중추적 기능을 하는 것이 알려지게 됐다. 이제는 MHC를 빼고 면역을 논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유전자들이다.

면역 활동의 출발은 외부 침입자들을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다양한 침입자를 인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러러면 서로 다른 면역 유전자 조합을 가질수록 생존에 유리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MHC 조합에 따라 달라지는 체취를 이용해 나와 다른 체취, 즉 나와는 다른 MHC 조합을 가진 배우자를 선택하는 결정이 필요한 셈이다. 생존이 가장 중요하던 옛 시절에는 이런 방식도 '천생배필'을 고르는 현명한 기준이었을 수 있다.

실제로 이성의 옷에 밴 땀 냄새를 통해 호감도를 조사한 연구에서 본인과 MHC 조합이 다른 이성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결과도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조사 대상들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 경향성이 줄어드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어 아직은 논란이 있기는 하다.
한국일보

그래픽=강준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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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는 스토리 전개의 또다른 축으로 '풍기문어발' 유전자라고 불리는 DRD4 유전자가 사용된다. 쉽게 말해 타고 날때부터 바람기가 많은 사람이 존재하며, 그런 사람의 염기서열은 그렇지 않은 이와 다르다는 얘기다. 드라마에서는 특정 서열의 반복 횟수가 바람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해당 서열이 2번 반복되면 DRD4-2R 타입이라 부르고, 4번 반복되면 DRD4-4R 타입, 그리고 7번 반복되면 DRD4-7R 타입이라고 부른다. 반복 횟수가 많아질수록 바람기가 커진다고 이야기되곤 한다(가끔 DRD4-7R 유전자라고 부르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는 부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고, DRD4 유전자의 7R 타입, 혹은 DRD4-7R 유전형이라 부르는 게 맞다).

DRD4 유전자는 도파민 수용체의 여러 종류 중 하나다. 아직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특정 서열의 반복 횟수가 모험, 중독성과 강한 연관성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불륜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접근되고 있으나 역시나 경향성일 뿐이며, 언제나 동일한 결과가 보고되는 건 아니다.

도파민은 파킨슨병 같은 운동신경 관련 질환과 ADHD나 투렛 증후군 그리고 우울증 같은 정신과 장애와 관련이 깊다. 또 다행감과 쾌감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므로 마약 중독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기능들이 얽히고설킨 유전자들의 네트워크 세상에서 특정 유전자의 특정 타입이 어떠한 신체적 특성이나 정신적 특성을 단순하게 규정하는 일은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극 중에서 유전자 검사를 통해 몇 살에 무슨 병에 걸리고 하는 식의 예측을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부분은 아직은 허구다. 유전자 관련 장면의 사실과 상상을 구별하는 지혜가 점점 더 필요해지는 세상이다.

이환석 유전자 라이프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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