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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가장 힙한 재즈그룹' 윤석철트리오가 '손흥민 위한 곡'을 새 앨범에 담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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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앨범 '나의 여름은 아직 안 끝났어'
약 2년 만의 새 앨범...10곡 수록
손흥민 위한 노래 '소니 겟츠 네버 블루'
한국일보

윤석철트리오의 베이시스트 정상이(왼쪽부터), 피아니스트 윤석철, 드러머 김영진. 안테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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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에 윤석철트리오를 시작했는데 내년이면 마흔이 됩니다.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싫어했지만 인생의 여름이 지나려 하네요. 서핑하는 분들의 구릿빛 피부 같은 생명의 에너지가 부럽더라고요. 왜 난 내 여름을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여름이란 단어에 담아 표현했습니다.”(윤석철)

한국에서 가장 힙한 재즈 음악가로 꼽히는 피아니스트 윤석철이 이끄는 그룹 윤석철트리오(베이시스트 정상이, 드러머 김영진)가 여름이 끝나갈 무렵 새 앨범 ‘나의 여름은 아직 안 끝났어’를 들고 돌아왔다. 재즈에 국악을 녹여낸 미니앨범(EP) ‘익숙하게 일정한’ 이후로 2년여 만이고, 정규 앨범으로는 ‘송북(Songbook)’ 이후 5년 만이다. 세 멤버가 개별 활동을 하는 동안 지난해 윤석철은 인디 듀오 옥상달빛의 세진과 프로젝트 앨범 ‘더 브렉퍼스트 클럽’을 발표하는 등 창작 활동을 쉼 없이 이어왔다.

어렵게 연주하지만 쉽게 들리는 음악... "우리 음악이 재즈에 대한 진입 장벽 낮추길"


새 앨범에 담긴 10곡은 윤석철이 모두 작곡했다. 첫 곡은 축구공이 통통 튀는 듯한 리듬과 경쾌한 관악 연주가 인상적인 ‘소니 네버 겟츠 블루(Sonny Never Gets Blue)’. 재즈 애호가라면 소니 롤린스나 소니 클락, 소니 스팃 등 여러 재즈 연주자를 떠올리겠지만 축구 팬이라면 손흥민을 위한 곡임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만하다. 22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윤석철은 “작업에 부침이 있거나 곡이 잘 안 써지고 의기소침해질 때마다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보며 힘을 얻곤 해서 그의 에너지를 음악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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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철 트리오의 '나의 여름은 아직 안 끝았어' 앨범 커버


뜨거운 여름날 축구장의 열기는 남미의 삼바 리듬을 서울의 밤거리에 이식한 ‘삼바 드 서울’, 반복되는 구절의 변주가 귀를 잡아 끄는 ‘루틴 없는 루틴’, 늦여름에 맞는 선선한 바람 같은 상쾌한 타이틀 곡 ‘너와 나는 같은 걸 보고 있었어’로 이어진다. 윤석철은 타이틀 곡에 대해 “연인 간 대화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 이해의 차이가 시간이 갈수록 커질 수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윤석철트리오의 음악은 대중적으로 듣기 편한 선율과 리듬 뒤에 실험적인 시도를 감춘다. 그래서 쉽고 재밌다는 평을 듣는다. 느긋하게 연주하는 듯하지만 ‘오일장’은 지난 EP에 이어 국악적 요소를 접목한 5박자의 곡이다. ‘내게 루틴이란 무엇일까’ 생각하다 일주일에서 연상되는 7박자를 토대로 듣기 편한 곡으로 만든 ‘루틴 없는 게 루틴’도 있다. 쇼츠 동영상에 중독돼 “뇌가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을 표현”(윤석철)한 ‘쇼츠하이’는 불규칙한 템포와 변칙적인 구성으로 긴장을 준다.

정상이는 “석철이가 쉽게 들리지만 새롭고 독특한 음악적 요소를 넣은 곡을 만들어 연주하기에도 재밌고 음악적으로도 자극을 준다”고 했다. 김영진은 “재즈를 대중적으로 선보이는 우리 음악이 재즈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우리 다 죽어도 음악으로 기억됐으면"




윤석철은 백예린, 자이언티, 선우정아, 폴킴 등 싱어송라이터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다. 재즈 피아니스트이지만 프로듀서를 겸하며 일렉트로닉, 힙합, 발라드, 가요를 넘나든다. 고전적 형식에 멈추지 않고 현대적 감각을 담아내 재즈 음악가 가운데선 드물게 20~40대 팬들이 많다. ‘즐겁게, 음악’ ‘여대 앞에 사는 남자’ 같은 히트곡도 있다. 서울재즈페스티벌 등 젊은 관객이 많은 음악 축제에 자주 초청받는 이유다. 꾸준한 인기 덕에 비주류 장르인데도 15년간 멤버 변동 없이 그룹을 이어왔다. 윤석철은 “우리 셋 다 죽고 음악만 남게 될 때 한국의 재즈 스탠더드 중에 이 팀이 있었구나 하고 기억될 수 있다면 가장 행복하겠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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