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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갭투자 원천차단 VS 서민 주거위협…사라지는 '조건부 전세대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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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한 남성이 전세자금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 창구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강민석 기자 kms@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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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시중은행들이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위해 잇따라 전세대출을 조이면서 실수요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부동산 갭투자 감소를 기대하고 있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서민들의 주거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강화된 전세대출 규제가 가계부채 총량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부작용은 불가피하다고 평가했다.

이달 서울 아파트 전세계약을 맺은 30대 A씨는 최근 불안감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경기도 소재 자가 아파트에 살다가 서울로 거주지를 옮기기로 했지만 시중은행들이 선순위 채권 말소 조건의 전세자금대출을 없애고 있어서다. 전세대출을 받지 못할 경우 계약금을 날리거나 높은 금리로 2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해야할 처지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 KB국민은행은 각각 다음달 2일과 3일부터 임대인 소유권 이전, 선순위 채권 말소 등 조건부 전세대출을 잠정 중단한다. 앞서 신한은행도 지난 26일부터 조건부 전세대출을 멈췄다.

그간 시중은행들은 임대인이 전세 보증금으로 선순위 주담대를 상환하는 조건으로 전세대출을 내줬다. 하지만 앞으로는 임차인의 전세 대출금으로 집주인의 주담대를 갚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또한 임차인이 대출 실행일에 주택을 매도하는 조건으로 받는 전세대출도 중단된다.

금융당국 금리인상 제동걸자 대출총량 억제 총력

시중은행들이 잇따라 전세대출을 조인 이유는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위해서다. 5대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지난 7월부터 22차례나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인상했지만 가계대출 증가세는 금융당국의 관리 범위를 넘어섰다. 지난 4월부터 폭증세를 이어가고 있는 가계대출 잔액은 이미 연간 목표치의 초과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4대은행의 올해 가계대출 증가액은 연간 경영 계획 대비 150.3%로, 50.3%p를 넘어선 상태다.

특히 금융당국이 금리인상에 제동을 걸면서 시중은행들은 총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가계대출 관리에 나서고 있다. 주담대에 이어 전세대출까지 틀어막아 가계대출 수요를 누르겠다는 복안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조건부 전세대출을 중단하기로 한 건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수하는 갭투자 수요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며 "자금이 부족한데도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주택을 매수하려는 투기행태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갭투자자가 아닌 서민 실수요자는 버팀목 전세대출 등 정책대출을 받기 때문에 조건부 전세대출 금지에 따른 영향은 제한적이란 설명이다.

이에 대해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조건부 전세대출 중단은 시장에서 나오는 얘기대로 갭투자가 줄어드는 효과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특히 입주장(아파트 준공후 입주하기까지의 시간)이 있는 지역의 임대료를 낮추는 순기능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전세 공급 부족 악화 우려…"선별적인 핀셋 규제 필요"

다만 일각에선 은행권의 전세대출 조이기에 따른 실수요자들의 불편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다주택자가 아닌 무주택자가 전세대출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건부 전세대출 제한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보유자금으로 전세 세입자가 거주하는 주택을 매수하는 통상적인 갭투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윤지해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 중과가 여전하기 때문에 다주택자가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수할 유인이 크지 않다"며 "결과적으로 전세대출 수요를 억제했을 때 서민 실수요자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서울 강남권 등 고가의 주택 시장이 대출에 의존적일지는 생각해 볼 문제"라며 "조건부 전세대출 중단 이후 전세 공급 부족 현상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고, 주거지를 바꾸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월세로 밀려나 주거비가 늘어날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가계부채 총량 관리라는 목적은 달성하겠지만 "병든 닭 목 비틀기"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전세대출 규제를 강화하더라도 서울 등 수도권의 전세가격 상승은 막지 못할 것이란 의견도 있다. 자금력이 부족한 서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가계대출 억제도 달성하려면 다주택자 규제 완화와 동시에 차주별 선별적인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들이 가계대출 관리를 명목으로 주담대와 전세대출을 줄이고 있지만 가계부채 문제는 이미 20년도 더 된 얘기"라며 "집값이 오르면서 전세보증금도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가계부채 총량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 정부는 과도하게 강화된 부동산 규제의 완화를 통한 시장 정상화를 대선공약과 국정과제에 담았지만 여전히 다주택자 규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며 "현재는 다주택자가 갭투자를 시도하는 건 어렵기 때문에 규제 완화를 통해 임대시장 매물을 늘리고 가격을 안정화하는 게 먼저"라고 부연했다.

또 서진형 광운대학교 부동산법무학과 교수 겸 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은 "전세대출을 조이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 맞지만 무주택자 등 서민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선별적인 핀셋 규제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전세대출은 너무 조이면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해치고 지나치게 풀면 주택가격 상승이 우려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적정선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보 기자 p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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