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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시시비비] ‘기적의 교과서’ 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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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설립된 아일랜드과학재단(SFI)은 한 해 3000억원이 넘는 과학기금을 각 분야에 지원하면서 아일랜드를 혁신 낙오자에서 혁신 우등생으로 탈바꿈시켰다. SFI 초창기를 이끈 빌 해리스 전 사무총장과 피트 메이키 전 디렉터는 최근 SFI 성공비결을 담은 책(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을 냈다. 이들은 "미국이 아일랜드의 성공비결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혁신, 교육, 연구개발(R&D)에서 다른 국가들보다 뒤처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SFI가 미국 국립과학재단을 롤모델로 설립됐는데 이제는 미국이 SFI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아시아경제

뉴질랜드 공공정책 싱크탱크 ‘뉴질랜드이니셔티브(NI)’는 지난해 ‘아일랜드 비밀-아일랜드 번영의 교훈’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인구도 500만명으로 비슷하고 19세기 대기근을 겪은 아일랜드가 어떻게 전 세계가 놀라는 번영을 이루고 있는가를 분석하고 뉴질랜드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담았다. 보고서는 아일랜드에서 배울 점으로 ▲모두를 위한 교육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한 개방성 ▲기업친화적 문화 등을 꼽았다. 아일랜드의 25~74세 고등교육 이수자 비율은 50%에 육박해 유럽연합(EU) 40개 국가 중 1위다.

뉴질랜드가 저성장·고물가·청년실업을 겪는 반면에 아일랜드는 사실상 완전고용 수준이다. 2023년 3분기 기준 15~64세 고용률은 74.1%, 15세 이상 인구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65.8%였다. 코로나19 당시에도 5% 이상 성장했고 2021년에는 EU 평균의 2배를 넘는 13.5%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출산율은 2021년 기준 1.72로 우리나라(0.8)의 2배가 넘는다. 2022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0만달러를 넘어 룩셈부르크에 이어 세계 2위다. 아일랜드는 ‘유럽의 본사’ ‘유럽의 실리콘밸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2003년부터 20년간 법인세 세율을 12.5%(참고로 우리나라 명목 법인세율은 26.5%)로 낮게 유지한 덕분에 구글·메타·아마존·애플·IBM·화이자·GSK·아스트라제네카 등 IT·제약·바이오기업의 유럽 전초기지다. 1500개 이상의 다국적 기업들이 아일랜드에서 창출하는 일자리만 27만개에 이른다.

아일랜드는 우리와 닮은 점이 많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고 독립전쟁으로 북아일랜드와 남아일랜드로 분단됐다. 최빈국에서 짧은 시간 내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1995~2007년 사이에 호황기를 누려 켈틱 타이거(Celtic Tiger)로도 불렸다. 2010년 EU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다가 3년 만에 조기상환한 것도 우리와 닮았다. 외신들은 ‘한강의 기적’은 끝났다고 하지만 아일랜드는 지금도 기적을 쓰고 있는 ‘기적의 교과서’다.

아일랜드 성장은 한두 가지 정책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거쳐 목표를 정하고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 NI 보고서에서 눈길은 끈 대목은 기업친화적 문화다. NI는 "아일랜드는 민간기업을 번영하는 지역사회에 ‘필요악’이 아닌 ‘필수’로 인식한다"면서 "뿌리 깊은 기업친화적 문화가 공공정책의 모든 부문에 적용되면서 놀라운 성공을 이뤄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뉴질랜드도 하루아침에 이런 문화를 바꿀 수 없지만 작은 발걸음 하나하나로 문화적 지형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아일랜드처럼 법인세를 낮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달라던 우리 경영계가 곱씹어볼 대목이다.

이경호 이슈&트렌드팀장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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