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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사설] “기후위기 대응은 국가 책무”라는 헌재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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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계획 없어”





탄소중립기본법 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원전·재생에너지 정략적 접근 지양해야



헌법재판소가 지난 29일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국가 기후 정책의 위헌성 판단이 내려진 것은 아시아에서 최초다. 눈길을 끈 것은 청구인들의 면면이다. 2020년 헌법소원을 제기한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청소년 19명과 2022년 비슷한 청구를 낸 어린이 62명 등 미래세대가 주역이다. 당시 태아까지 청구인단에 이름을 올려 화제가 됐다.

헌재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대목을 심각하게 봤다. 재판관 9명의 일치된 의견이다. 2031년이면 7년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구체적 감축 목표를 세우지 않은 것은 국민 기본권 침해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올여름 한반도는 각종 폭염 기록을 갈아치웠다. 서울 열대야 연속 일수가 30일을 넘겨 2018년의 기록(26일)을 깼다. 에어컨 가동이 늘면서 지난 20일 전력 수요는 역대 여름철 최대치(97.1GW)를 기록했다. 매년 심각해지는 기상 이변은 전 지구적인 현상이다.

세계 195국이 2015년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파리협정을 맺은 이후 9년이 지났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는 목표를 세우고 각국 실정에 맞는 온실가스 감축을 실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파리협정 이후에도 온실가스 배출은 상승 추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지구의 온도 역시 올라가고 있다. 지난 4월 해수면 평균 온도가 21.07도로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등 지구 온도가 1.5도 상승을 돌파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지만 우리 정부의 정책은 미흡하다. 정치권의 노력 부족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특히 심각한 피해로 돌아간다는 것이 헌재의 시각이다.

헌재는 현행 법령상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감축하도록 규정한 부분은 기본권 침해가 아니라고 봤다. 그러나 2031년부터 2049년까지 “어떤 정량적인 감축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면서 “이는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이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보호조치를 해야 하는 ‘과소보호금지 원칙’을 위반했다고 헌재는 판단했다.

헌재 결정 직후 송두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지적했듯이 “기후위기의 영향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노인·장애인·아동·노숙인 등 기후 취약계층에 더욱 중대한 문제”임이 틀림없다. 헌재는 “미래세대는 기후위기의 영항에 더 크게 노출될 것임에도 현재의 민주적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제약돼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정부가 정책을 미루는 현실을 문제 삼았다. 중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 계획에 대해 정부가 입법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는 건 ‘법률유보원칙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헌재 결정에 따라 정부는 2026년 2월까지 해당 법 조항을 수정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 임기 내 해결해야 할 책무다. 이번 헌법소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해 윤석열 정부에서 결과가 나왔다. 기후위기 대응은 정권을 초월한다. 그런데도 지난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였고, 현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소홀히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위기에 놓인 미래세대를 생각해 정부와 여야는 온실가스 감축 문제만이라도 정략적 접근을 지양하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산업계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기후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찾아내는 것은 책임 있는 국가가 마땅히 져야 할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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