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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지금 나는 우울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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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수의 마음 읽기]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일상에서 만나는 동료, 친구 모두 활기차고 행복해 보이는데, 유독 나만 기운이 없다. 의욕도 없고 신경이 자꾸 예민해진다. 시간만 나면 자고 싶고 머리가 예전처럼 잘 돌아가지 않고 안개 낀 것처럼 잘 안 돌아간다. 요즘 겹치기로 일어나는 집안일이나 직장 문제 때문일 것 같기는 한데, 혹시 지금 우울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사람들이 우울이나 불안증 이야기를 하고 많이 하고 있어서 누구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잘 모르고 그저 요즘 일들이 워낙 복잡해서 그러려니 하고 참고 지내다가 감정폭발이나 심한 불안, 늘어짐, 폭식이 나타나고 의욕이 너무 없어져서 오셨다는 분들을 종종 만난다.

우리 모두는 일상에서 스트레스 받는 일들을 자주 겪는다. 그 중 일부는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주는 카테콜아민을 나오게 해서 그 사건을 감정이 채색된 기억으로 저장하게 만든다. 좋은 기억은 ‘추억’으로 남겠지만, 아픈 상처였다면 ‘트라우마’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스트레스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 클루코코디코이드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인해 만성염증처럼 신경 회복력을 떨어뜨린다. 그러다 보면 불면증과 왠지 모를 불안을 느끼기도 하고, 감정 조절을 잘 못하는 경우도 많아진다.

우울증 혹은 우울장애는 우울함을 중심으로 하는 감정 증상 및 비관적 사고와 더불어 신경성 두통, 요통 등 신체 증상이 반복되는 분들에게 붙이는 의학적 진단명이다. 가벼운 증상은 감기처럼 푹 쉬고 나면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오래 지속되면서 직장과 학교 일을 하기 힘들 정도로 심해지면서 폐렴보다 더 고통스러운 질병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우울증 진단


클리닉이나 상담소에 가면 이런 증상이 있는지 물어볼 것이다.

(1) 일에 대한 흥미나 재미가 없는지 (2) 가라앉은 느낌이나 우울감 혹은 절망감. 이 둘 중에 하나 이상이 있다면 다음 증상이 있는지 체크해보라 (3) 불면증이나 잠이 너무 많아짐 (4) 피곤함과 기력 저하 (5) 식욕 저하 혹은 식욕 과다 (6) 자기 비하나 자책감 (7) 집중력 저하 (8) 행동과 말이 느려지거나 안절부절 못함 (9) 차라리 죽었으면 혹은 죽고 싶은 마음.

이 중 5개 이상의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고 있다면 당신은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우울증 척도’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흔한 메신저 서비스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찾아볼 수 있다.

우울 증상으로 클리닉에 가면 일단 어떤 증상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를 물어볼 것이다. 부모와 형제, 직장 이야기를 포함해 마치 당신의 평전을 한편 쓰기라도 할 것처럼 이것저것 물어볼 것이다.

같은 우울 증상이라도 공황장애 같은 불안증 때문에 그런 경우도 있고, 언젠가의 트라우마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일 수도 있다. 특히 조울증에서 발생하는 우울증인 경우는 약을 잘못 쓰면 오히려 악화될 수 있기에 정확한 진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증상 척도를 사용하기도 하고, 성격 검사와 뇌 기능 검사, 약물 검사를 하기도 한다. 이 밖에 현재 삶에 얼마나 적응하는지, 심리적 회복력(resilience)은 어느 정도인지를 잘 파악해 당신에게 맞는 적당한 약물과 정신 치료, 상담을 시작할 것이다.

◇항우울제가 도움이 될까?


약물 치료는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농도를 조절하면서 우울, 불안, 충동성을 조절해주는 치료법이다. 현재까지 나온 치료법 중에서 가장 효과와 안정성을 믿을 수 있는 ‘과학적’인 치료법이다.

약이라는 게 모든걸 해결해 주는 건 아니지만, 너무 심한 증상이 있어서 미처 나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 볼 여유조차 없을 때, 급한 불을 빨리 꺼주는 역할을 한다.

우울증 치료를 긴 마라톤에 비교한다면 항우울제는 초창기 수십킬로 고생길을 단축하는 역할을 한다.

모든 약이 다 내게 맞는 건 아니기에 전문의와 의논해 본인에게 가장 효과적인 약을 골라서 처방해야 한다. 정밀 의학이 발전하고 있는 요즘은 다양한 검사를 통해 가장 효과적이고 부작용이 없는 약을 찾아내려 한다.

약물 말고도 광(光) 치료, 자기장 치료, 전기 치료 같이 뇌 신경 자체를 자극해주는 치료법도 있으니까 증상과 상황에 따라 본인에게 알맞은 치료법을 찾는 것이 좋다. 음악이나 독서, 운동 등도 우울 증상을 완화해 주는 보조적 역할을 한다.

혼자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가장 좋지만 좋은 상담가나 의사를 만나서 러닝코치와 함께 달리듯이 마음을 보듬는 연습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잘 치료받은 경우라면 우울 증상은 거의 없어지고, 학교와 직장에 복귀해 사람들과 내 마음 편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상처입지 않는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수시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지금 불안한 건 아닌지, 억지로 견디는 건 아닌지 성찰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돌볼 수 있다면 가장 완벽한 힐링 상태라 할 것이다.

사실 당신만 그런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나 상담가, 동료들은 내일을 살아가는 당신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약을 복용하고 심리 치료를 받지만, 결국 인생을 돌아보고 내 마음을 바로 세워야 할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한국일보

한창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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