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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이슈 경찰과 행정안전부

경찰, 딥페이크 성범죄 방조 혐의로 텔레그램 법인 상대 내사 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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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만 딥페이크 피해 88건 접수… 피의자 24명 특정

조선일보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창업자 겸 CEO. 지난 24일 프랑스 당국은 파벨 두로프를 체포했는데, 미성년자 성 착취물 유포와 마약 밀매 등을 방조했다는 이유로 그를 공범으로 보고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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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2일 딥페이크(AI로 만든 진짜 같은 가짜 콘텐츠) 성범죄 방조 혐의로 텔레그램 법인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다. 경찰이 텔레그램 법인을 대상으로 내사(입건 전 조사)를 벌이는 것은 처음이다. 내사는 의혹에 대해 정식 수사를 할지, 말지 결정이 안 된 상태를 말한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2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청이 텔레그램 법인에 대해서 입건 전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텔레그램 측에 이메일로 공문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프랑스에서 텔레그램 파벨 두로프 창업자 겸 CEO가 체포된 것처럼, 향후 수사 공조 차원에서 한국 경찰도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 본부장은 “텔레그램은 2000년대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이용 범죄가 발생해 관련 수사 자료 등 요청했지만, 공유가 잘되지 않는다”며 “이번 기회에 프랑스 수사 당국이나 국제 경찰 기구 등과 공조해 텔레그램 수사를 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메신저 앱인 텔레그램을 통해 딥페이크 성범죄, 사기, 마약 밀매 등 각종 범죄 행위가 이뤄지고, 유해 콘텐츠가 전파되고 있는 데도 이를 차단하기 위한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아 ‘범죄 방조’ 혐의로 내사하겠다고 밝혔다. 텔레그램은 암호화된 비밀 채팅 기능으로 보안성이 뛰어나 전 세계 사용자가 9억명에 이른다.

다만 텔레그램 법인에 대한 내사 착수 조치는 상징적 측면 외에 실효성은 거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의 텔레그램 본사와 서버에 대해 국내 수사기관의 관할권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텔레그램 본사는 두바이에 있다. 경찰은 그동안 텔레그램 측에 수사 협조 요청을 보냈지만, 답신을 받은 경우는 ‘0′다.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은 텔레그램 서버 위치에 대한 질문에 “미국 수사당국도 그걸 모르겠다고 한다”고 했다. 향후 수사로 진척될 경우엔 최소 텔레그램 본사 위치를 알아야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텔레그램에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본부장은 “텔레그램이 우리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계정 정보 등 수사 자료를 주지 않는다”며 “지난해 8월 미국 뉴욕에 출장을 갔을 때 미국 연방 수사기관과도 이야기했는데, 거기서도 ‘텔레그램이 답이 없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난감해했던 기억이 있다”고 설명했다.

텔레그램 등 주요 빅테크가 메신저에 주로 사용하는 것은 ‘종단 간 암호화(End-to-End Encryption)’ 기술이다.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든 과정이 암호화된다. 수신자와 발신자 외에는 대화 내용을 알 수 없고, 메신저 업체의 서버에도 내용이 남지 않는다. 만약 수사기관이 메시지를 확인하려면 수신자와 발신자를 직접 조사하는 수밖에 없다. 딥페이크 사건처럼 범죄에 대규모 인원이 연루되면 사실상 수사가 불가능한 것이다.

경찰은 딥페이크 봇을 만든 제작자에는 범행 공모 및 방조 등의 혐의 적용을 검토할 계획이다. 현재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딥페이크 합성물을 생산하는 텔레그램 방 8곳에 대해 내사 중이다. 우 본부장은 “텔레그램이 수사 자료를 안준다고 해서 범죄를 검거 못한 건 아니다”라며 “저희 나름대로 수사 기법이 있는데 될 수 있고 안될 수 있지만 기법상 알려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여군을 대상으로 한 불법합성 성범죄물 공유 대화방은 언론 보도 이후 방이 사라지면서, 경찰은 수사 단서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 본부장은 “언론에 보도되자마자 여군 딥페이크 텔레그램방은 당일 소멸했고, 수사 단서를 조속히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한 주 동안 전국에서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신고는 88건 접수됐다. 이 가운데 신원이 파악된 피의자는 24명이다.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관련 피해 신고가 297건, 주당 평균 9.5건 접수됐던 것과 비교하면 최근 관련 신고가 급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우종수 본부장은 “이전 ‘미투 운동’처럼 범죄가 된다고 인식해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신고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피해자들이 신고를 할 때 피의자를 같이 특정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우 본부장은 디지털 성범죄 수사를 위해 경찰 신분을 노출하지 않는 이른바 ‘위장 수사’ 확대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현재 위장 수사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일 경우, 사전 승인을 거쳐야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성인 대상으로 한 성범죄의 경우는 위장 수사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우 본부장은 “수사 대상이 (피해자가) 청소년을 넘어 성인까지 확대돼야 할 것 같고, 긴박한 경우 사전 승인이 아닌 사후 승인도 가능하도록 적극적으로 개정을 추진해보겠다”고 했다.

[주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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