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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단독] 영화 종사자 51% ‘성희롱·성폭력 경험’ 응답…남성 피해 31%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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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위 조사

영화계 성희롱·성폭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최근 2년간 피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9년 조사 때보다 남성 응답자의 피해가 30%p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2023년 한국영화산업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를 지난달 30일 발간했다.

세계일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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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위가 지난해 12월 12일부터 올해 1월 5일까지 영화계 종사자 812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여성응답자의 53.0%, 남성의 49.6%가 피해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2019년 실태조사와 비교하면(여성 50.0%, 남성 18.5%) 남녀 모두 피해 비율이 증가했다. 특히 남성의 피해 비율이 31.1%p 높아졌다.

전체 응답자의 피해 경험은 51.5%였다. 이는 2019년 실태조사(36.0%)보다 15%p 높아진 수치다. 보고서는 “최근 전국 공공기관 및 민간 사업체 근로자의 성희롱 피해 비율이 4.8%, 서울시 소재 소규모 사업장과 경기도 소재 소규모 사업장의 성희롱 피해 비율이 각각 29.6%와 16.7%로 나타난 것과 비교하면 영화계의 피해 비율은 매우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할리우드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미국 영화계에서 언어적 성희롱을 중심으로 한 성적 괴롭힘을 경험한 비율은 남성과 여성 모두 60% 이상이며, 원치 않는 성적 관심 및 행동을 경험한 비율은 남성 22%, 여성 42%로 상당히 높았다”며 “이번 조사의 높은 피해비율은 영화 산업·제작 환경의 특수성에 기인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아울러 미투 운동, 영화계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의 제도화, 영화계 성평등을 위한 전담기구 운영으로 이전에는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 행위를 점차 성희롱·성폭력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한 원인으로 봤다.

조사 결과를 연령대별로 보면 20대(55.2%)와 30대(56.2%)의 피해 비율이 40대 이상(18.3%)보다 월등히 높았다. 직군별로는 촬영·조명이 64.0%로 피해 비율이 가장 높고, 이어 분장·헤어·의상 60.3%, 동시녹음 59.4%, 미술·소품 58.0% 순이었다.

보고서는 “이들 직군은 주로 영화 촬영이 이뤄지는 현장에서 스태프로 종사하고 남초·여초여서 성별 분리가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소위 ‘남성적인 일’ 혹은 ‘여성적인 일’이라는 성 역할 고정 관념을 바탕으로 설정된 ‘정상성’의 규범이 성적 차별 및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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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비율은 6∼10년차에서 68.7%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1∼5년 48.8%, 11∼15년 42.9%였다. 저연차의 피해 비율이 높은 것은 직급에 따른 위계가 성희롱・성폭력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다만 여성의 경우 실장·팀장이나 임원도 피해를 겪어, 성희롱・성폭력이 직급뿐 아니라 젠더 위계에 의해서도 발생함을 시사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16개 항목에 대해 최근 2년간 피해 경험이 있는 경우 표시하도록 했다.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 음담패설, 성생활·성적 지향에 대한 집요한 캐물음, 데이트 강요, 원치 않는 성관계 요구, 술을 따르거나 옆에 앉도록 강요, 성적 요구에 대한 불응을 이유로 고용, 평가 등에 불이익 등이 항목에 포함됐다.

응답자들이 직접 겪은 성희롱·성폭력 피해 유형은 ‘음담패설 및 성적 농담’(33.5%)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30.7%) 같은 언어적 성희롱・성폭력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술을 따르거나 옆에 앉도록 강요 또는 원치 않는 술자리 강요’(9.9%), ‘특정 신체 부위를 쳐다봄’(9.6%),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을 하거나 신체 접촉을 하도록 강요’(9.0%) 같은 시각적, 신체적 성희롱・성폭력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남성은 ‘음담패설 및 성적 농담’ (35.0%)을 가장 많이 당했고 여성은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36.7%)를 많이 겪었다.

가해행위자는 남성이 94.0%, 여성이 6.2%였다. 남성 피해자의 92.1%, 여성 피해자의 95.4%가 남성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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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당시 대처로는 ‘참고 넘어감’ 56%, ‘친구, 동료 등에게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고 넘어감’이 37.1%에 달했다. ‘행위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등 개인적 처리’ 20.6%, ‘상급자에게 보고’는 6.0%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32.3%는 피해를 당한 후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고 했으며 30.6%는 ‘불안, 두려움, 우울 등 부정적 감정’을 경험했다.

최근 2년 동안 다른 사람이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입은 것을 인지했는지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63.4%(남성 64.7%, 여성 62.4%)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2019년 실태조사(전체 53.8%, 남성 35.5%, 여성 68.5%)보다 증가한 수치다.

이들은 영화계에서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적절하게 해결되지 않는 원인으로 ‘문제제기하기 어려운 권위적·위계적 분위기’(24.9%), ‘영화 촬영이 중단되거나 제작에 차질이 생길까봐 걱정하는 분위기‘(24.6%), ‘인맥, 소문 등이 중요한 조직 문화’(16.9%)를 꼽았다.

이번 조사는 최근 2년 동안 장·단편 영화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작품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영화계 종사자 812명을 대상으로 했다. 직군은 연출부터 촬영, 조명, 배급, 마케팅까지 전 영역을 망라했다. 응답자 중 남성은 44%, 여성은 56%였으며 평균 연령은 31.7세, 경력은 평균 6.1년이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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