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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월)

이름 몰라도 보면 ‘아~’ 하는···연기 내공 30년, 요즘 틀면 나오는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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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 ‘파일럿’, ‘딸에 대하여’에서 인상적인 연기 펼치는 배우 오민애

경향신문

찬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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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면 나온다’는 관용적 표현이 오민애(59)만큼 잘 어울리는 배우가 또 있을까. 과장 조금 보태 요즘 나오는 드라마와 영화 중 오민애의 이름이 없는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갓 태어난 손녀에게 배냇저고리로 ‘퍼스트 구찌’를 선물하는 시어머니부터 45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중인 영화 <파일럿>에서 주인공 한정우의 엄마이자 트롯 가수 이찬원의 팬인 김안자, 넷플릭스 <돌풍>에서 가혹한 운명에 놓이게 된 대통령 영부인 유정미까지. 당장 최근 2년 사이 그가 출연해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만 해도 열 손가락이 모자라다.

9월 극장가에서는 ‘오민애들’이 벌이는 경쟁도 펼쳐지고 있다. 4일 개봉하는 영화 <딸에 대하여>와 흥행몰이 중인 <파일럿>, 지난달 28일 개봉한 고아성 주연의 <한국이 싫어서>까지 그가 출연한 작품 3편이 동시에 관객을 만나게 된 것이다.

30년 무명 생활 끝에 존재감을 빛내고 있는 오민애를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딸에 대하여>에서 레즈비언인 딸 ‘그린’과 그의 애인 ‘레인’과 동거하게 되는 엄마를 연기한 그는 연한 ‘그린’색 투피스를 단정하게 입은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요즘 너무 기쁘고 행복해요. 아무도 제가 누군지 모르는 세월을 쭉 겪다가 이제 열매는 맺는다고 할까요. 사람들이 ‘그 역할 한 게 이 배우였어?’라고 할 때 ‘훗 그게 바로 나야!’ 하는게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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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일럿>에서 오민애(왼쪽)는 주인공 한정우의 엄마이자 가수 이찬원의 팬인 김안자를 연기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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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오민애는 하도영의 엄마를 연기했다. 그가 갓 태어난 손녀에게 ‘퍼스트 구찌’를 선물하는 장면은 큰 화제가 됐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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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딸에 대하여>는 레즈비언인 딸 ‘그린’, 그의 애인 ‘레인’과 동거하게 된 엄마의 이야기다. 찬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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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어느 날 갑자기 ‘혜성 같이’ 등장한 라이징 스타처럼 보이겠지만, 오민애는 연극·독립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중 베테랑이다. 1992년 연극계에 발을 들인 이래 30년 넘는 연기 경력을 쌓아왔다.

이날 오민애가 풀어놓은 인생사는 그가 맡아온 여러 역할만큼이나 드라마틱했다. 10대 후반에 생활 전선에 뛰어든 그는 신문 배달부터 서빙, 각종 사무직까지 안해 본 일이 없다. 스물일곱 무렵 그의 직업은 에어로빅 강사였고, 운명이 바뀐 것도 그 즈음이다. 잠시 일을 쉬고 인도 배낭여행을 해보려 찾은 여행사에서 한 직원이 오민애의 얼굴을 보고는 직업을 맞춰보겠다고 나섰다. “카리스마가 느껴져요. 연극 배우 아니세요?”

오민애는 그 길로 연극계에 발을 들였다. 시작은 연극 <마지막 키스>(1992)의 조연출이었다. “저는 호기심이 병이에요, 병. 활동적이고 두려움도 없죠. ‘연극 배우 같다’는 말에 ‘잘 모르겠지만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해보자!’ 하면서 그냥 들어갔어요.”(웃음)

스태프가 되어 바라본 무대 위 배우들은 자유로웠다. 오민애는 폐쇄적이었던 자신의 삶에 진정 필요한 것이 그 자유로움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연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좋은 배우가 되는 것’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무명 생활은 길고 길었다. “무명인 30년 동안 많이 외로웠고 아팠어요. 실수도 많았고요. 버티고 견디고 살아온 그 시간이 내 안에 축적된 것 같아요.”

오민애가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중후반이다. 연극에서 독립영화로 주요 활동 무대를 옮긴 그는 단·장편을 가리지 않고 다작했다. 2019년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단편영화 <나의 새라씨>로 심사위원특별상 연기부문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고, <윤시내가 사라졌다>(2022)로 장편 영화 첫 주연을 맡았다. 그 뒤는 우리가 목격한 대로다. 오민애는 이제 스크린과 안방극장 모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지난해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딸에 대하여>로 올해의 배우상을 차지했다.

오민애는 자신의 호기심을 “병”이라 했지만, 배우로서 개성이나 역량을 빚어준 것 역시 그의 왕성한 호기심이다. 시어머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따둔 요양보호사 자격증은 요양보호사 역할을 맡은 <딸에 대하여>에서 요긴했다. 레즈비언인 딸과 그의 애인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섬세한 연기 역시 “오랜 세월 무명 생활을 견디며 아픔 덩어리”가 된 자신이 있기에 가능했다.

50대에 전성기를 맞은 소감이 어떨까. 오민애는 “전성기는 아직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웃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너무 늙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뭐가 있겠어’ 하는 생각이 가끔 저를 두렵게 만들어요. 한편으론 ‘이만큼 온 것도 기적이야’ 라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저는 스스로를 가스라이팅 한답니다. 앞으로도 나 자신을 믿는다면, 더 많은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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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오민애. 찬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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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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