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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월)

[시론]티메프보다 우리은행이 더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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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회장 부당대출로 사익 추구해

사업상 투자실패 구영배보다 불량

손태승·임종룡도 국회 출석시켜야

아시아경제

고객이 맡긴 돈을 내 돈인 양 썼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구영배(큐텐그룹 대표)보다 손태승(전 우리금융 회장)의 죄질이 더 불량하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 선을 긋는 임종룡(현 우리금융 회장)·조병규(현 우리은행장)는 각각 티몬과 위메프 대표인 류광진·류화현과 다를 게 없다. 그러니 국회는 구영배 등 3인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은행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3인방도 정무위원회 현안질의에 불러내야 할 것이다.

왜 유독 우리은행에서 횡령이나 배임 등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는지를 두고 많은 분석이 나온다. 본지 진단이 핵심에 가장 가깝다. 개인의 일탈이 반복되면 시스템 문제일 것이다. 시스템을 바꾸거나 보완해도 악습이 잘 바뀌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 문화에 젖어있는 사람들로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관치에 대체로 반대하지만 필요할 땐 해야 한다.

“뼈를 깎는 각오로 시스템을 정비하고 있으니 믿고 기다려달라”고 호소하는 목소리가 우리은행 내외부에 있는 것도 안다. 그러나 우리은행은 2년 전 내부통제 혁신 방안을 발표했음에도 도덕적 해이를 끊지 못했다. ‘우리은행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단언은 지나치지 않다.

왜 우리은행의 죄질이 티메프(티몬·위메프)보다 불량한가. 두 회사 모두 고객이 잠시 맡긴 돈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사업모델에 기반한다. 티메프의 구영배가 투자나 회사 운영에 돈을 쓴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판매자에 지급돼야 하지만 잠시 내 회사에 보관된 돈을 지키지 못한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그러나 최소한 구영배는 사적 이익을 위해 고객 돈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은 처남댁이나 처조카 등 친인척에게 616억원을 대출해줬고 그중 28건 350억원이 부당대출이다. 우리은행에 따르면 연체 등 부실로 인한 손실은 82억에서 많게는 158억원이 될 것이라고 한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손태승 부당대출 문제가 불거지자 내부 회의에서 “부당한 지시, 잘못된 업무처리 관행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부당한 지시’는 전임자인 손태승에게 책임을 묻자는 뜻이며, 관행을 언급한 것은 ‘내가 오기 전부터 있던 일’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책임을 면하려는 데 급급하다 보니 어설픈 자기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손태승 부당대출 건을 금융당국에 보고했어야 하느냐 아니냐는 임종룡·조병규에 대한 처벌을 결정할 사안인데, 우리은행은 이 문제를 내부감사로 발견하곤 ‘심사 소홀은 금융사고가 아니어서 보고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금감원이 사건을 공론화하자 부랴부랴 경찰에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배임은 금융사고이며 보고 대상에 해당한다.

고객의 돈을 어디에 투자할지 결정한 건 자신들이 아니라 구영배였다며 선을 그었지만, 자금 경색을 돌파하기 위해 상품권을 마구 할인해 뿌린 티몬과 위메프의 악질적이며 기만적인 행위를 반성하지 않는 류광진과 류화현. 임종룡과 조병규는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은행 사태가 티메프에 비해 국민 경제에 미칠 직간접 영향이 작다고 할 수 없다. 정무위는 손태승과 임종룡·조병규를 긴급 현안질의에 불러야 한다. 10월 국정감사에 증인 출석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예년처럼 국제행사 참석을 핑계로 불출석하려는 꼼수에는 미리 대비토록 하자.

신범수 편집국장 겸 산업 매니징에디터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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