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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월)

"독점 탓에 쪼개질 위기?" 우리가 지금 구글 걱정할 땐가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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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영 기자]

숱한 미디어가 '구글'의 미래를 우려한다. 구글이 반독점 소송에서 패소한 후 기업 분할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쓸데없는 걱정이다. 구글의 미래가 어찌 되든 우리와 별 상관 없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미국이 '반독점법'을 근거로 구글을 견제하는 시스템을 살펴보는 거다. 우리나라엔 시장 지배자의 횡포와 갑질을 통제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시스템이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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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반독점법을 근거로 빅테크 기업의 독점을 강력하게 제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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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 미국 법무부가 마이크로소프트(MS)에 반독점법 위반소송을 제기했다. 개인용 PC 운영체제(OS) '윈도'로 시장을 90% 이상 장악하고 있던 MS가 강력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자사 웹브라우저 '익스플로러'를 끼워팔았기 때문이다. 1심 법원은 MS가 "반독점법을 반복적으로 위반했다"며 기업 분할 판결을 내렸다.

MS는 항소심에서 합의해 기업 분할을 간신히 면했지만,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무엇보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였던 빌 게이츠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몇가지 사항도 약속해 경쟁사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이처럼 미국은 MS에 철퇴를 내릴 만큼 '독점'에 민감하다. MS는 합의하는 선에서 끝났지만, 실제로 기업을 쪼갠 사례도 있다. 1984년 미 법무부는 당시 통신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AT&T 통신사를 총 8개의 독립회사로 분할했다. 석유시장을 독점했던 '스탠더드 오일(1911년)'과 지상파 채널을 독점했던 NBC(1942년)도 과감하게 분리했다.

이같은 '반독점 소송'은 시장에 공정한 기회를 부여했다. MS 반독점 소송은 인터넷 소프트웨어 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춰 소프트웨어 혁신을 꾀했단 평가를 받고 있다. MS의 힘을 제한하자 다양한 경쟁사가 시장에 뛰어들었던 거다. 반독점 소송의 수혜를 받은 대표적인 경쟁사가 바로 '구글'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2019년 9월 MS 반독점 소송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소송 판결에 따라 MS는 자사의 운영체제를 오픈해야 했는데, 이는 구글·애플·아마존 등 MS 이후 등장한 빅테크 기업이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How the Microsoft Antitrust Case Paved the Way for Big Tech)."

이런 기조는 지금도 유효하다. 지난 8월 1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미 법무부가 최근 반독점법에서 패소한 구글을 해체·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법무부는 구글의 검색 사업 부문과 다른 주요 부문을 분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며 "구글의 모바일 운영체제 '안드로이드'와 웹브라우저 '크롬' 사업 부문을 분할하고 광고 플랫폼 '애드워즈'를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떨까. MS·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의 독점성을 견제하고 있는 미국처럼 '강력한 통제 시스템'을 갖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던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은 목적지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플랫폼법의 골자는 한국의 네이버·카카오, 미국의 구글·애플 등 거대 플랫폼 기업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사전 지정해 독과점 남용행위를 규제한다는 건데, 업계의 강력한 반발을 뚫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외 빅테크를 규제하는 '칼'이 날카로운 것도 아니다. 구글과 애플이 강력한 지배력을 무기로 악용하고 있는 '인앱결제 시스템'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참고: 더스쿠프 통권 612호 '구글·애플 우리만 규제 못 하는 까닭'].

물론 "국내 플랫폼 기업의 규모나 규제 방향이 미국과 달라 미국의 반독점 규제를 그대로 적용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있긴 하지만, 공정한 경쟁을 유지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엔 이견이 거의 없다. 특히 국내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플랫폼 기업'을 통제하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취약하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국내 플랫폼 기업 가운데 '독점 논란'에 휩싸인 곳이 숱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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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통제장치가 없는 우리나라는 ‘시장 지배자’들이 뛰어놀 수 있는 좋은 무대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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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보자. 2021년 택시호출시장의 95%를 점유하고 있던 카카오모빌리티는 경쟁사와 계약을 체결한 택시엔 콜 서비스를 차단하고 자사 가맹택시에 더 유리한 콜을 배치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배달앱 업계 1위 배달의민족도 중개수수료를 일방적으로 인상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지난 8월 9일 요금제를 개편하며 '배민1플러스(배달의민족 자체 배달 서비스)'의 중개수수료를 기존 6.8%에서 9.8%로 가파르게 끌어올린 게 발단이 됐다. 두 사례 모두 시장을 지배하는 사업자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정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양용현 한국개발연구원(KDI) 규제연구실장은 "우리나라는 플랫폼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를 규제할 때 법률을 개정하기보단 심사지침을 마련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며 "플랫폼 행위가 경쟁을 얼마만큼 제한하는지 판단하는 기준과 규제 수준을 정립해야 법률 개정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성호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플랫폼은 전통적인 산업과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일반법인 공정거래법으로 규율하는 건 어려울 수 있다"며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의 본산인 미국 규제 사례를 파악하고, 국내에서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 공정화와 독점방지법 입법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조서영 더스쿠프 기자

syvho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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