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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월)

[고영의 문헌 속 ‘밥상’]추석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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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이랑 토란국은 서울·경기 거 아닌가?” 매체마다 뻔한 추석 음식 이야기를 뻔하게 한 꼭지 만들겠다고 나 같은 사람을 찾는 즈음이다. 담당자가 마침 서울·경기 출신이 아니라면 위와 같은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예컨대 울산과 포항 쪽으로 가면 이렇다. 동남 해역에서는, 서해안과 서울·경기의 조기굴비 못잖게 전갱이·민어·문어·가자미가 중요하다. 논란 속에서도 고래고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상어고기는 동남 해역과 경북 곳곳의 제수이다. 늘 먹는 가자미라도 추석에는 치자로 노랗게 물들여 부치기도 한다. 군소산적을 올리지 못하면 헛차례, 헛제사 지냈다는 소리가 나오는 집이 아직 있다. 나물은, 여느 나물과 함께 미역·톳·모자반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문어·전복·대구·오징어는 말려 포로 올린다. 당연히 북어도 쓴다.

떡은? 이 지역에서 송편은 낯설다. 워낙은 추석에 인절미·절편·시루떡·경단·부편 등을 했다. 오랜만에 명절 집안잔치 또는 동네잔치를 한다고 마음먹으면, 부편만큼은 할 수 있는 한 화려하게 빚는 데가 울산에서 밀양에 이르는 지역이다. 영덕 쪽은 무조건이라고 할 만큼 문어가 중요하다. 오징어는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이다. 잡았다 해도, 대게는 이즈음의 제수는 아니다. 겨울에 살지고 맛이 드는 자원이니 설 차례에 쓴다. 가자미·고등어·대구 등은 잘 말려 찐다. 쪄서 고임으로 높이 쌓아 올린다. 구이는 드물다. 산간으로 가면 송이가 있다. 송이 나는 데는 산골짜기 곳곳에 있고 나는 데서는 송이를 산적으로 해 올린다. 팔자는 송이가 아닌, 내 식구와 의례를 위한 계절의 진미이다. 유통업이 모르는 송이가 이때의 경북과 강원과 충청 어름 산간에 있다. 산간에서는 감자와 메밀도 추석 상차림에 요긴했다. 감자송편이라고? 원형적인 감자떡이 감자송편에 앞섰다. 메밀전병인 총떡도 부쳤다.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사람은 있는 자원을 쥐고 최선을 다한다. 있는 대로 무와 배추부터 지졌다. 무전, 배추전에는 밀가루풀보다 메밀가루풀이 어울린다고 여기는 분은 지금도 많다. 기름은 아주 조금 두른다. 간신히 번철에 바른다. 지져야, 부쳐야 전이다. 튀김은 전이 아니다. 명절에는 전감과 곡물 및 기름의 향을 까다롭게 감각하면서 번철을 챙겼다. 전남에는 홍어가 있다. 홍어는 부쳐도 좋다. 꼬막도 낙지도 전이 된다. 바닷말로 무친 나물과 조개로 낸 국물은 서남해안 공통이다. 다시, 떡은? “빨라야 1970년대 초 텔레비전을 통해 추석에 송편을 만드는 것을 보고 송편을 빚게 됐다”는 말씀은 여수와 전남, 아니 영호남 민속자료집 곳곳에 보인다. 송편 아니라도 명절 떡은 얼마든지 있다.

이러다 오늘날이다. 추석은 1세기 신라의 팔월 보름 명절에서부터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 유서 깊은 날이지만 법정공휴일로 제정되기는 1949년이다. 지역에 따라 추석 못잖았던 음력 9월9일 중구절(重九節)은 공휴일이 아니어서 명색이 바랬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는 신문·방송·잡지가 새 민속을 견인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곳곳의 추석에 바래는 데가 생겼다.

경향신문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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