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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월)

[세상 읽기]농촌의료 최후 보루, 공보의마저 빼앗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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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번기나 성묘 시기에 지역 언론을 통해 농촌 주민들에게 ‘교상’을 조심해 달라는 당부가 이어진다. 곤충이나 뱀에게 물리는 불상사가 교상인데, 농촌에서는 벌에게 쏘이거나 뱀에게 물리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2020년 홍성준 외의 연구자들이 쓴 <도시와 농촌에서 발생한 독사 교상 환자의 임상적 양상과 합병증 비교 연구>를 보면, 뱀물림 사고로 읍급실로 실려 오는 환자 57.1%가 농촌지역 환자였다. 다만 고령자가 많고 병원과 거리가 멀어 응급처치가 도시보다 늦어지는 바람에 교상 환자 예후가 훨씬 더 좋지 않다는 것이 논문의 결론이다. 의료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결론이다. 그래서 농촌 주민들이 가장 빨리 도달할 수 있는 시군 보건소에라도 뱀독소 치료제를 갖춰야 한다는 의견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뱀에게 물릴 일은 농촌 주민이 더 많건만 치료는 농촌에서 더 어렵다.

도시생활자에게 보건소란 요식업계 종사자들이 보건증을 받거나 아이들이 어릴 때 예방접종을 받으러 가는 곳 정도다. 그러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보건소는 공공의료 최전선이자 최후방어선임을 깨달았다. 다만 도시에는 지근거리에 병의원이 많아 평상시엔 보건소를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농산어촌의 보건소는 차원이 다르다. 외진 곳일수록 보건소의 존재감은 더욱 크다. 시군에 보건소가 있고 읍면에 ‘보건지소’가 있는 지금의 보건소 체계는 해방 직후인 1946년 미군정 때 도입되었다. 그러나 6·25전쟁과 재원 부족으로 1960년대 후반 넘어서 겨우 꾸려진 체계다. 본래 보건소 설립 목적은 예방접종, 가족계획, 위생, 영양교육과 같은 보건사업, 즉 질병을 막는 예방사업이 주요 업무다. 환자의 진료 업무는 병의원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 미군정의 의도였으나 당장 ‘무의촌’ 환자들이 넘쳐나 진료사업을 놓을 수 없었다.

보건소의 진료 역할은 의료시설이 태부족한 외진 농촌일수록 여전히 중요하다. 감기뿐 아니라 고혈압, 당뇨, 호흡기 관련 만성질환 관리와 농촌 주민의 고질병인 근골격계 치료도 이루어진다. 약 조제와 복약 지도도 보건지소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에 벌레나 지네에게 물린 교상 치료도 종종 이루어진다. 치매예방 사업과 정신건강 증진사업 같은 보건사업은 큰 호응을 얻고 있지만 지원 부족이 아쉽다는 의견이 많다. 귀농귀촌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로 농촌의 의료공백 문제를 꼽을 정도로 농촌의 의료사정 빤한 거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나마 농촌의료의 최후 보루인 보건소마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곳이 늘어나 고심이 깊어진 지도 오래되었다. 공중보건의 부족 현상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보의 근무 기간은 36개월, 군 복무기간은 18개월이다. 이에 공보의 대신 군 입대를 택하는 의대생이 늘었다. 이번 의료대란 사태에 의대생들이 대거 입대하여 향후 공보의 부족 문제는 심화될 것이다. 이미 보건지소를 통폐합하거나 공보의 한 명이 여러 면을 도는 순환근무로 농촌의료 공백을 겨우 메워오던 차였다. 여기에 농어촌 보건소장 모집도 어렵고, 공보의까지 부족하니 보건사업은커녕 면 지역 1차진료에도 차질을 빚어왔다. 이 와중에 지난봄부터 의료대란을 막겠다며 그나마 있던 농촌 공보의마저 도시의 대형병원으로 차출해 가기 시작했다. 빠져나간 공보의가 돌아오기도 전에 작금의 응급실 대란까지 맞아 의사를 또 빼가니 농촌 보건지소는 문을 닫을 지경이다. 명절과 수확기를 맞아 농촌에서는 아프고 다칠 일이 더 많아질 텐데 한걱정이다.

급한 환자들 먼저 살리고 오겠다며 기다려 달라는 정부의 궁색한 변명에 농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직감했을 것이다. 한번 비어버린 면 보건지소는 다시 채워지지 않을 것임을. 농촌의 늙고 가난한 몸 따위는 처음부터 거추장스러워했다는 걸 말이다. 이를 국가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지 몰랐을 뿐이다.

경향신문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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