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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편식을 허하라… 고기파 남편과 채식주의자 아내가 같이 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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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부부가 둘 다 놀고 먹고 씁니다]

조선일보

윤혜자·편성준 부부의 밥상. /윤혜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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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같이 하는 일 중 가장 많은 것은 무엇일까? 젊은 부부는 우리와 조금 다르겠지만 우리 부부에겐 단연 ‘같이 밥 먹기’이다. 남편에게 처음 추파를 던질 때 나는 ‘고노와다에 소주 한잔 하실래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남편은 ‘고노와다’가 무엇인지 궁금해 한걸음에 달려 나왔다고 했다. 고노와다는 해삼 내장이다. 고노와다를 단일 품목으로 먹진 않는다. 보통은 맛이 평범한 광어회 같은 음식에 얹어 먹는데 당시 나는 이 고노와다에 빠져 있었다. 이렇게 ‘고노와다’라는 음식으로 시작된 우리는 내가 ‘장어 먹고 싶어’ ‘주꾸미 먹고 싶어’ ‘매운 낙지 먹자’고 말하는 것으로 데이트를 지속했다.

둘 다 회사를 다니지 않아 매 끼니 같이 먹는 우리에겐 문제가 하나 있다. 내가 4년 전부터 육류를 먹지 않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 된 것이다. 내가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남편에게 “우리가 돈을 내 고기를 사거나 음식점에서 고기를 사 먹는 일은 없을 것이고 더불어 우리 집에서도 고기 요리를 하진 않을 거야. 예외가 있다면 김장 날 수육은 삶을게(내가 수육을 좀 잘 삶는다). 당신이 먹는 것은 괜찮아. 그러니 고기를 먹고 싶으면 친구를 만나”라고 했다.

나의 이런 선전포고에 남편은 평소 소, 돼지, 닭의 공장식 사육에 반대하는 나를 알기에 ‘음 드디어 올 것이 왔군’ 하는 표정을 지으며 순순히 “알았다”고 대답했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고기를 먹지 않는다. 예외가 있다면 요리 수업을 들을 때 맛보기로 한입 정도 먹는 것과, 이거 저거 설명하기 어려운 자리에서 최대한 표를 내지 않고 먹는 정도다.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 일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남편은 아니었을 것이다. 결혼해서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퇴근해 저녁 밥상 앞에 앉은 남편은 약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오늘 무슨 날이야?”라며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난 아무 날도 아니라고 답하고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 물었다. 밥상에 고기 반찬이 올라와 자기 생일쯤 되는 줄 알았단다. 장을 보고 밥상을 차리는 사람은 습관적으로 자기가 좋아하거나 익숙한 식재료를 사서 음식을 하기 마련인데, 내가 고기를 좋아하지 않아 고기 반찬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밖에서 밥을 먹을 땐 남편은 얼마든지 먹고 싶은 고기를 먹는다. 문제는 음식점 선택을 대체로 내가 한다는 것!

남편만 내 음식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음식을 못 먹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남편 때문에 먹지 못하는 음식이 여럿 생겼다.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발의 가려움 때문에 남편은 최근 체질식을 시작했다. 체질식은 사람 몸의 특성에 따라 체질을 여덟 가지로 나누고 체질에 맞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남편의 체질은 토양인. 8체질 중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은 체질이라고 한다. 하지만 먹지 않는 게 좋다는 식재료 중에 흔히 먹던 식재료가 가득했다. 닭, 사과, 귤, 토마토를 비롯하여 감자, 고추, 현미, 미역, 다시마, 파, 참기름, 생강 등 음식의 기초 식재료가 다수 포함되었다.

닭고기를 좋아하는 남편이야 닭을 못 먹는 게 가장 아쉬울 것이다. 그러나 집에서 음식을 하는 나로서는 먹지 않아야 하는 음식에 기본 식재료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 정말 난감하다. 여름 최애 반찬인 오이지를 예로 들어보자. 오이지 무침은 청양고추 종종 썰어 넣고 다진 파, 마늘과 고춧가루 여기에 참기름을 넣어 무쳐야 제맛인데 고춧가루, 참기름, 파를 빼고 무쳐야 하니 어려운 일이 아닌가. 별수 없이 요즘엔 오이지를 들기름만 넣고 간단하게 무쳐 먹는다. 건강에 좋다 하여 늘 냉장고에 있던 토마토, 반찬 없을 때 만만하게 사용하는 감자, 국거리 없을 때 맛있는 간장으로 간한 맑은 미역국을 밥상에서 배제하고 음식을 해야 한다. 요리 좀 배운 내게도 이것은 무척 어려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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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오이지 무침인데 과거에는 청양고추, 다진 파, 마늘, 고춧가루에 참기름을 넣었지만 요즘엔 들기름만 넣고 간단하게 무쳐 먹는다. /윤혜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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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고 밥을 따로 먹을 것인가? 아니다. 음식으로 만나 같은 음식을 먹으며 정을 쌓았으니 상대의 편식 정도는 이해하고 같이 먹을 수 있는 것을 찾아야지. 생각보다 우리가 같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많다. 생선을 좋아하니 생선 음식을 같이 먹는다. 금기 음식에 계란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도 상대의 편식을 존중하며 같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는 모험을 한다.

[윤혜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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