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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여권 "이대론 공멸"…용산도 '의대증원 유예' 카드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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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7월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초청 만찬에서 한동훈 대표(왼쪽), 추경호 원내대표와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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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도 의대 정원 증원을 포함해 의료개혁에 대해 얼마든지 열린 마음으로 ‘원점’에서 논의할 수 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2026년도 증원 유예까지 포함해서 논의할 수 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

“의료개혁을 위한 여·야·의·정 협의체를 구성하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6일 하루 동안 여권에서 쏟아진 의·정 갈등 관련 발언이다. 원점, 증원 유예 등 그간 여권의 책임 있는 인사들이 언급하지 않았던 강한 톤의 발언이 잇달아 나왔다. 특히 대통령실에서 2026년도 증원 유예를 언급한 것은 내년도는 입시 문제와 연계돼있어 어쩔 수 없지만, 그 이후엔 제로베이스로 논의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전향적인 발언”이라고 말했다. 2026년도 의대 증원 유예는 한동훈 대표가 지난달 25일 고위 당정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처음 제안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에서 직·간접적으로 불쾌감을 표하면서 버려진 카드로 인식됐으나 이날은 다른 메시지가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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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4일 경기 의정부 권역응급의료센터인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을 방문, 응급 센터 상황을 살피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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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의·정 갈등과 관련해 여러 갈래의 목소리가 혼재돼있던 여권에서 이날 동시에 한목소리가 나온 것은 그만큼 사안의 심각성을 공유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당정은 의대 증원 유예,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 경질 등을 두고 번번이 엇박자를 냈지만 “이대로는 공멸”이라는 위기의식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날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한동훈 대표는 “의대 증원 문제로 장기간 의료공백이 발생해 국민 불편이 가중되고, 응급 의료에 대한 국민 불안도 크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한 대표의 제안에 긍정적”이라며 “의료계가 대화 테이블에 나오는 것이 우선”이라고 호응했다.



실제 의·정 갈등을 둘러싼 분위기는 악화일로였고, 이런 여론이 여권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2~4일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둘 다 27%였다. 윤 정부 출범 뒤 이 조사에서 대통령·여당 지지율이 동시에 20%대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다. 한국갤럽의 3~5일 전화면접 조사에서도 윤 대통령 지지율 23%, 국민의힘 지지율은 31%에 그쳤다. (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이런 상황에서 당정이 의대 증원 유예 검토 등 전향적인 카드를 의료계에 내밀자 “상황을 반전시킬 여건이 일단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대통령실은 의료 개혁을 일방통행으로 밀고 간다는 인상을 일부나마 지웠고, 여당은 한 대표가 제안한 증원 유예안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 체면을 지켰다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당정 갈등 우려를 불식시키고, 수렁에 빠졌던 의·정 갈등의 전환점을 찾은 것만으로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당정의 일치된 움직임 이면에는 사태 해결의 공을 의료계에 넘기겠다는 계산도 깔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당정은 한발 물러서면서도 “의료계가 과학적인 수요 예측에 따른 증원 규모 의견을 제시해달라”(추경호 원내대표)고 요구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부가 ‘제로베이스’까지 거론했는데 의료계가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대안도 제시하지 않으면 반대 명분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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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일 오후 서울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응급실을 찾아 의료현장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국민의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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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당정이 일치된 목소리를 내기까지는 숱한 물밑 작업이 있었다고 한다. 한동훈 대표는 5일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만나 증원 유예안 재검토를 포함한 유연한 대응을 주문했고,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같은 날 장 수석과 장시간 메시지를 조율했다고 한다. 최근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 의장 간의 비공개 실무 당정도 수시로 이뤄졌다. 한 대표 측은 “대통령실과 다양한 경로로 소통하면서 해법을 모색했다”고 전했다.

추 원내대표 측은 껄끄러웠던 대통령실과 한 대표 측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추 원내대표는 당정 입장 발표 전날에도 대통령실과 교감을 나눴다고 한다. 원내 관계자는 “추 원내대표와 대통령실이 전날 ‘원점 논의’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전향된 모습을 보이자는 공감대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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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대전의 한 대학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 도착한 충북 지역 등 119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응급실로 급히 이송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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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물게 당정이 하나 된 모습을 보였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이견은 여전하다는 평가도 있다. 대표적인 게 최근 여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분출된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 경질론이다. 부적절한 발언 등을 이유로 박 차관을 교체해야 한다는 공개 주장이 잇달았지만, 대통령실 관계자는 “의료 개혁을 수행하는 중에 장·차관 교체는 생각할 수 없는 일로 내각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선을 그었다.

민심이 악화한 원인을 두고도 양측의 인식이 엇갈린다. 대통령실은 당초 여권에 유리했던 ‘의료 증원 찬성 vs 반대’ 구도가 ‘2000명 증원 고집 vs 반대’ 구도로 불리하게 뒤집힌 기점이 한 대표의 2026년도 증원 유예 제안이라고 본다. 반면 한 대표 측은 증원 유예 제안은 의·정 갈등에서 벗어날 출구전략이란 입장이다. 한 대표 측은 “정부가 유턴할 명분을 여당이 대신 마련해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진ㆍ손국희ㆍ윤지원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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