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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요즘은 중학생도 전담이 필수”…전자담배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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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입법 계류에 사각지대 심화

지난달 20일 서울 관악구의 한 24시간 무인 전자담배 판매 매장. 밤늦은 시각 인근 중·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구경만 하고 가자”며 무리 지어 들어왔다.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본지 기자가 직접 들어가보니 자판기에서 신분증이나 휴대폰 인증만 하면 기기와 액상(합성 니코틴 용액) 모두 바로 구매가 가능했다. 본인 대조 절차가 없어 담배를 구입할 수 없는 미성년자라도 다른 사람의 신분증만 빌리면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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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담배 담뱃갑에 표시되는 경고 그림/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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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담배 가게 사장 A(51)씨는 “인근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학원 끝나고 밤에도 종종 전자담배를 보러 온다”며 “구매를 하는 것은 아니니 제지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처럼 전자담배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만 19세 이하임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거나 본인 대조 등을 거치지 않는 등 ‘형식적인 인증’만 거치다보니 일반 담배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그 해 기준 전자담배를 직접 구매한 청소년은 13.4%, 대리구매는 12.8%였고. 친구나 선배에게 받은 경우는 무려 67.7%에 달했다. 특히 전자담배는 기기와 액상 모두 다양해 취향 따라 중고 거래도 활발하다. 중고 거래 사이트 ‘이베이프’에선 별다른 인증 절차가 없어도 입금만 하면 택배로 받을 수 있다.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별도 성인인증 없이도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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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전자담배 자판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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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담배는 ‘청소년 담배 입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에 ‘궐련 담배를 끊으려 전자담배 피운다’는 통념과는 반대되는 양상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흡연을 하는 청소년 중 32%가 액상형 전자담배로 흡연을 시작했다. 궐련 담배는 64.9%, 궐련형 전자담배는 1.4%다. 액상형 전자담배로 흡연을 시작한 청소년 중 60.3%는 현재 궐련을 주로 피우는 것으로 파악됐다. 학원 강사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요즘 중학생들도 쉬는 시간 화장실에서 몰래 전담 피운다”고 하거나 “냄새가 나질 않으니 들키지도, 잡기도 어렵다”는 하소연하는 글이 올라와있다.

국내 전자담배 시장은 급성장 중이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수입 위주인데 국내 액상 수입량은 2020년 56t, 2021년 97t, 2022년 119t, 작년 200t으로 급증했다. 국내 담배 시장 전체에서 전자담배 비중도 커지는 추세다. 지난해 궐련형 등 전자담배 판매량은 약 6억1000만갑으로 2022년(약 5억4000만갑)보다 6.1% 늘었다. 담배 판매 중 전자담배 비중은 2017년 2.2%에서 작년 16.9%로 상승했다.

하지만 액상형 전자담배는 통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실정이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유사 담배’로 규정돼 경고 그림·문구 표기 등 각종 담배 규제나 개별 소비세 등 과세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22대 국회엔 여야(與野) 가리지 않고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지만, 여야 대치가 심해지며 아무런 입법 논의 없이 계류되고 있다. 주요 개정안의 골자는 담배의 정의를 ‘연초의 잎’에서 ‘연초 및 니코틴’으로 확대해 전자담배를 규제 및 과세 대상으로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다만 이전 국회에서 유사 법안이 발의됐다가 모두 폐기된 것을 보아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2008년 개원한 18대 국회부터 현재까지 16년 간 총 9건의 비슷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본회의 턱을 넘지 못했다.

[안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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