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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서울갱생원·대구희망원·양지원…37년 만에 드러난 ‘제2 형제복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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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98년 9월 쇠창살 안에 갇힌 천성원 산하 양지원(양지마을) 입소자들의 모습. 당시 민간조사단 방문자들은 “양지원은 인권유린과 비리로 얼룩진 생지옥이었다”고 증언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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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학살의 광풍이 전국을 휩쓴 한국전쟁이 끝나고 난 뒤, 이번에는 납치와 감금의 시대가 시작됐다. 시설 수용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부랑인 정책은 시설 쪽 이해와 결합하면서 부랑인만을 표적으로 삼지 않았다. 술 취해 행패를 부린다고, 일정한 주거 없이 배회한다고, 행색이 초라하다고, 심지어는 얼굴이 창백하다고 경찰과 단속반원에 잡혀가 짐승처럼 ‘사육’됐다. 헌법에 명시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신체의 자유’는 무시되었고, 이는 내무부 훈령 제410호, 구걸행위자보호대책, 보건사회부 훈령 제523호로 뒷받침되면서 형식적 민주화를 이룬 1987년 이후에도 지속됐다. 1987년부터 폭로된 부산 최대의 부랑인수용시설 형제복지원이 다가 아니었다. 서울시립갱생원, 대구시립희망원, 충남 천성원(대전 성지원, 연기군 양지원), 경기 성혜원 등 5곳(4개 법인)에 대한 진실화해위의 대규모 인권침해 진실규명을 계기로 이 문제를 다각도로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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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나가 삼일 전에 나갔다 아직 돌아오지 않습니다. (…) 아무래도 희망원에 잡혀갔을 것이 라고 생각해 봅니다. 나는 불쌍한 순나가 어서 집에 들어오기를 기다립니다.” (6월15일 토요일 맑음)



“‘검’을 팔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이었읍니다. (…) 멍하니 바라보면서 있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갑자기 나의 멱살을 잡고 “너 ‘검’파는 아이제?”하고 끌고 가기에 ‘와 이카십니까?’하니 ‘잔소리 말고 따라와’하고 끌고 가기에 명찰과 옷차림을 보니 시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 또 희망원에 잡혀가게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니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읍니다.” (6월16일 일요일 흐림)



대구 명덕국민학교(초등학교) 재학생 이윤복의 일기를 바탕으로 출간된 책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년, 신태양사)에 나오는 몇 대목이다. 이 책을 모티브로 같은 이름의 영화가 1984년(감독 김수용)과 2007년(감독 한명구)에 걸쳐 두 번이나 제작되기도 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 번지게 된 것은 연고가 확실한 아동들을 납치해 감금했기 때문이었다. 순나는 대구시립희망원에 감금됐다.



1960년대 초반에 시가 설립해 1980년과 1981년 민간에 위탁된 대구시립희망원과 서울시립갱생원을 비롯해 1980년대 초반 개원한 충남 천성원 산하 대전 성지원과 연기 성지원, 1978년 개원한 경기 화성 성혜원 등 전국 5곳(4개 법인)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피해 인정)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6일 열린 제86차 전체위원회에서 ‘서울시립갱생원 등 성인부랑인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 피해자 윤아무개씨 등 13명이 낸 진실규명 신청에 대해 이같이 의결하고 “국가는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과와 실질적 피해 회복 조치를 하라”고 권고했다.



이번 진실규명은 수용시설 사건으로서는 2022년과 2023년의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과 2023년, 2024년의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에 이은 대규모 진실규명 결정이다. 덜 알려져서인지, 형제복지원(337명)과 선감학원(230명)에 비해 진실규명 대상자 수는 훨씬 적지만 각 수용시설에서 벌어진 인권침해의 양상을 폭넓고 심도 깊게 파헤쳤다. 진실화해위가 9일 이 사건만 별도로 기자회견을 연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에 진실규명된 천성원 산하 성지원과 양지원은 1987년 2월 부산 형제복지원과 같은 시기에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전국민적 관심을 모은 곳이기도 하다. 티브이(TV)에 나온 형제복지원 비리를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1987년 2월 양지원 원생은 중대장에게 곡괭이 자루로 맞아 숨졌고, 성지원 원생들이 집단탈출해 봉고차를 탈취하고 서울 방면으로 도주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에서 조사단을 꾸리기도 했다. 그러나 천성원 쪽이 정문을 막고 국회의원·기자 등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조사가 좌절됐다. 1998년에도 민간 조사단이 꾸려졌으나 시설 내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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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조사단이 천성원 산하 대전 성지원에서 집단폭행당한 사건을 보도한 대전일보 1987년 2월11일자와 성지원 탈출자들의 증언을 보도한 조선일보 1987년 3월1일자. 진실화해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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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1월 양지원에 입소했다 1987년 5월에 도망친 홍아무개씨의 경우 입소 다음 날부터 새벽 3~4시에 일어나서 밤 11~12시까지 농사 일을 했으며, 식당에서 밥 짓기, 야채 썰기 등의 노역을 했다고 한다.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을 많이 당했고, 일부 사람들은 심한 폭행으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진술했다. 또한 양지원 내 사망자 매장 업무에 동원되기도 했는데, 사망자 발생 시, 양지원 간부 지시에 따라 일반 수용자 4명이 천으로 감은 시신을 경운기에 싣고 인근 산으로 가서 매장했다. 삽과 곡괭이로 손바닥 2~3뼘 깊이로 땅을 판 뒤 시신을 묻었고 매장지에는 사망자 성명, 사망 일시 등에 관한 정보를 남기지 않았으며 이런 방식의 매장이 반복되었다고 한다. 진술인이 직접 매장한 시신은 10구가량이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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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2월11일 천성원 산하 성지원 봉제부 농성자 호소문. 진실화해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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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생 김아무개씨의 경우 10대 후반(1980년대 초반) 길에서 박카스를 팔다가 경찰 및 방범대원에 의해 대구시립희망원에 입소해 3회나 입퇴소를 반복했는데 입소할 때마다 신규 동에 배치되어 감금생활을 했고, 일반 동으로 옮겨진 후에는 보일러실 관리 등 무급 노역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동료 여성 수용자가 시설 직원 이아무개씨에게 세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녀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수녀는 ‘정신병자의 헛소리’라며 묵살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들 시설에서 “단속 및 강제수용은 상위 법령의 위임이 없는 자의적 구금이자 적법절차 원칙에 위배되는 위헌적 조치로서 신청인들의 신체의 자유 등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했으며, 회전문식 전원 조치로 인해 수용이 장기화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판단했다. 또한 “법정 수용인원을 초과한 과밀수용, 군대식 통제하에 독방 감금, 폭행 및 가혹 행위, 강제노역, 임의적 정신질환 진단 및 격리수용, 시설 내 출산 아동에 대한 임의적 해외입양 조치, 사망자 시신의 의과대학 해부실습용 임의적 교부 등 인권침해가 발생했다”고 보았다. 진실화해위는 “이에 따라 국가 및 해당 지자체는 경찰‧공무원을 동원하여 불특정 민간인을 부랑인으로 낙인찍고 단속하여 이들 시설에 자의적으로 구금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인권침해를 야기하고, 또한 이를 인지했음에도 방치해 온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진실화해위는 “이에 따라 국가 및 해당 지자체는 경찰‧공무원을 동원하여 불특정 민간인을 부랑인으로 낙인찍고 단속하여 이들 시설에 자의적으로 구금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인권침해를 야기하고, 또한 이를 인지했음에도 방치해 온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이상훈 상임위원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1년간 조사하는 동안 천성원과 충남 도청 및 연기군과 주고받은 문서 3만여쪽을 처음으로 입수해 국가책임을 규명했다”며 “4개 시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말로만 떠돌던 회전문식 입소의 구체적인 실상을 진실규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진실화해위 조사 만료 이후에도 조사활동을 제도화하라는 유엔 고문방지위원회의 권고를 담았다”고 했다. 유엔 고문방지위 권고를 바탕으로 피해자가 개별 소송 없이도 국가가 구제 조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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