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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만물상] 용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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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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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쓴 ‘레미제라블’은 ‘인간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용서인가 처벌인가’라는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이다. 소설 주인공 장발장은 빵을 훔친 죄로 19년 감옥살이하는 내내 세상을 증오한다. 그런데 출소 후 성당에서 은식기를 훔치다가 들켰을 때 성당 사제가 “내가 준 것”이라며 장발장을 감싸고 은촛대까지 선물하자 분노를 털어내고 이후 선한 삶을 추구한다.

▶소설 밖 세상에도 범죄와 비행의 나락에 빠진 이를 처벌 대신 용서로 구원하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많다. 서울 용산에서 국숫집을 하던 배혜자 할머니는 생전에 노숙자에게 공짜로 국수를 대접했다. 한 번은 어느 사람이 국수값을 내지 않고 도망가자 뒤따라 나가며 “그냥 가, 뛰지 말고. 넘어지면 다쳐!”라고 외쳤다. 그 외침이 실의에 빠져 있던 남자를 일으켜 세웠다. 남자는 그 후 외국에서 사업가로 살고 있다고 한다.

▶27년 전 양산 통도사 자장암 시주함에서 3만원을 훔쳤던 가난한 소년이 최근 200만원을 시주함에 넣고 가며 남긴 편지가 어제 신문에 소개됐다. 남자는 그 당시 돈을 또 훔치러 갔다가 스님에게 들켰는데 스님이 말없이 고개만 젓고 어깨를 다독이며 보내줬다고 한다. 스님이 소년을 경찰에 넘겼다면 그는 이후 세상을 원망하며 더 깊은 범죄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자장암 편지 사연은 때론 용서가 처벌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화다.

▶용서가 곤경에 빠진 이만 구하는 것은 아니다. 용서하는 이에게도 마음의 평화를 준다. 가수 조용필은 ‘큐’에서 ‘너를 용서 않으니/ 내가 괴로워 안 되겠다’는 가사로 그 차원을 노래했다. 위대한 종교도 용서로 자신을 고통에서 구하라고 가르친다. 불교에선 ‘원한을 품는 것은 타인에게 던지려고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는 행위’라고 한다. 천주교 신자가 미사 때 암송하는 ‘주님의 기도’에도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는 대목이 있다.

▶1981년 괴한의 총탄에 쓰러졌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을 쏜 청년을 찾아가 손을 잡으며 “용서한다”고 했다. 크게 뉘우친 청년은 출소 후 유기동물 구출 활동가로 새 삶을 살고 있다. 용서를 세상을 향한 더 큰 사랑으로 승화하는 이도 있다. 1987년 아들을 학교폭력으로 잃은 이대봉 참빛그룹 회장은 가해 학생들을 용서한 데 이어 아들 이름으로 장학금을 만들어 40년 가까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있다. 이런 분들이 성인이고 그들 덕에 세상이 아름답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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