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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윤석열 말대로면 트럼프는 한국의 '반(反)국가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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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제79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윤석열 정부의 몇몇 인사들은 "일본 제국주의 시절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이다", "1945년 광복을 인정할지에 대해서는 코멘트하지 않겠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등의 발언들을 쏟아냈다. 소위 '뉴라이트' 계열로 분류되는 극우적 색채를 띈 인사들이 정부 주요 직위의 전면에 나선 결과다.

이러한 뉴라이트 인사들의 등용을 두고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은 "이들은 일본의 식민지배를 합법이라고까지 했다. 이는 한국의 대외 정책에 굉장히 큰 문제로 작용할 수도 있어 보인다"며 "이는 이른바 '정보질서'를 재편하려는 목적으로도 읽힌다"고 분석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국제정보질서가 군사질서, 경제질서보다 늦게 생겼는데 정보질서를 만드는 종주국은 군사‧경제‧안보와 관련해 다른 국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여기에 포섭된 국가들은 종주국이 주는 정보만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예전 사회주의권에서 소련이 보여주는 정보만을 보는 것처럼, 한국은 주로 미국이 주는 정보만 봐왔다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최근 정부 인사들의 이러한 발언을 두고 "8.15 경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이야기를 보면 누군가가 보여주고 싶은 국내정치적 모습을 써준 그대로 읊은 것으로 보인다"며 "윤 대통령 주변에 뉴라이트가 포진해서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정보질서 속에 대통령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실제 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반(反)국가세력이 암약하면서 반일(反日)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고 말했다"며 "뉴라이트가 보여주고 싶은 정보질서 속에서 이야기를 하니 미국과 일본을 추종하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일본과 관계에서도 과거사 문제가 해결됐다는 식의 입장이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 7월 한미일 안보협력 프레임워크와 관련 "미국이 동아시아에 극동 사령부를 만들고 그 지휘권을 일본에 넘겨버릴 경우 한국군이 사실상 일본 자위대 지휘를 받게 되고, 독도를 사실상 일본의 영향력이 미치는 군사 구역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인데, 뉴라이트 세력은 이것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정보질서를 구축하려는 것 아닌가 싶다"고 전망했다.

박 상임고문은 "윤석열 개인의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이나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고 미국의 영향력이 대단히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며 "한국 사회 내에서 미국 유학생들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라는 것도 미국만을 바라보는 주요 이유가 되는 것 같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미국식 세계관을 받아들인 학자, 관료, 경제 엘리트들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기도 하다"고 해석했다.

그는 미국과 일본에 편중된 뉴라이트의 세계관이 군사적 문제 뿐만 아니라 경제적 분야에서 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 더 우려스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박 상임고문은 "러시아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 아세안(ASEAN)이 자율적 외교 주체로 참여하고 있고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협의체)가 G7보다 GDP 규모가 커졌고 중국 대외 무역의 절반이 달러가 아닌 다른 화폐로 운영되고 있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박 상임고문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중국과 러시아를 지금처럼 대하면 군사 영역이 아닌 경제 전선에서 더 먼저 무너질 수 있다"며 "뉴라이트가 대외 정책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입장을 편협한 방향으로 강화하게 되면 이후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과 일본만 바라보는 현 상황 타개를 위해 정부의 정책 변화가 필요하지만, 윤석열 정부 집권 중에는 현실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가운데, 정 전 장관은 이보다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등 외부 요인이 상황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면 트럼프가 김정은을 워싱턴으로 불러낼 수도 있다"며 "다만 트럼프 정부의 목표는 비핵화는 아닐 것이다. 트럼프는 '비확산'이 목표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비확산을 전제로 하고 북미관계 개선을 용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전 장관은 "트럼프가 당선되면 싱가포르 북미 협상 시즌 2가 시작될 것이다. 새로운 북미관계수립,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 한반도 비핵화 이 세 가지가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인데 이 중 비핵화는 비확산 및 ICBM 중단 등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그는 "트럼프는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이같은 세 가지 통로를 실현하는 입구로 종전선언을 추진하려 할 것인데, 윤석열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추진하면 '반(反)국가세력'이라고 했던 것을 적용해보면 트럼프가 남한의 반국가 세력이 되는 셈"이라고 윤 대통령의 발언을 꼬집기도 했다.

대담은 지난 4일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사)한국통일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

▲ 정세현(오른쪽) 전 통일부 장관과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 ⓒ프레시안(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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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 인사의 기용이 강화되면서 대미 추종, 대일 예속 외교도 심화되고 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는 발언을 보면 그 정도가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명박 정부 때도 김태효 당시 비서관이 일정 부분 역할을 했지만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 정보 보호 협정) 체결 논의가 들통 나자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독도에 방문, 일본과 외교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다. 박근혜 대통령 때는 2015년 세계 2차대전 승전 70주년에 베이징 천안문에 올라가기도 했다.

이처럼 이전 정부는 뉴라이트와 유사한 색채를 보이기도 했지만 나름 자주적이라고 평가되는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는데 윤석열 정부는 죽으나 사나 미국‧일본만을 바라바고 있다. 결정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배를 합법이라고까지 했다. 이는 한국의 대외 정책에 굉장히 큰 문제로 작용할 수도 있어 보인다.

이들의 이러한 활동은 이른바 '정보질서'를 재편하려는 목적으로도 읽힌다. 저서 <통찰>에서 미국이 군사질서, 경제질서, 정보질서 장악을 통해 세계를 지배한다고 지적했는데, '정보질서'가 우리의 세계인식 및 현실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체계적으로 살펴봤으면 한다.

정세현 : 국제정보질서가 군사질서, 경제질서보다 늦게 생겼는데 정보질서를 만드는 종주국은 군사‧경제‧안보와 관련해 다른 국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여기에 포섭된 국가들은 종주국이 주는 정보만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4년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는 KBS로부터 국제 정보질서에 관한 연구 용역을 받았다. 이 중 북한이 외부 사회를 인민들에게 어떤 식으로 보여주는지에 대해, 즉 북한이 어떤 국제정보질서 속에서 국내 정치를 하는지에 대해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하게 됐다.

그런데 북한을 연구하기 전에 중국이나 소련이 어떤 식으로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지 언론 매체 보도를 통해 분석해봤다. <인민일보>를 포함해 중국의 여러 언론을 보니 특정한 정치적 사건에 대해 소련의 <타스>통신만 인용하고 있었다. 영국의 <로이터>통신이나 프랑스의 <AFP>통신이 인용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중국은 중소 분쟁으로 소련과 사이가 좋지 않은 때에도 소련 언론사를 인용했다. 스탈린 집권 때부터 소련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유고슬라비아도 <타스>통신을 인용했다.

이들 국가와 서방 언론 보도를 비교해보면 한 사건에 대해 육하원칙 형식은 맞추지만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즉 '언제, 어디서, 누가' 등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두고 '무엇을, 어떻게, 왜' 등 해석의 영역이 있는 부분들에서 달라졌다. 사실이 달라지면 평가가 달라지고, 그렇게 되면 이후 대책이 달라진다.

이걸 발견하고 소련이 어떻게 이들을 영향권에 두게 됐는지 알게 됐다. 정치 질서를 이식하고 이후에 눈과 귀를 소련 식으로 만들기 위해 '정보질서'가 동원된 것이다. 즉 군사‧경제 질서를 장악하고 안보질서를 정리하면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 때 화룡점정이 되는 것이 바로 정보질서였다.

이걸 가지고 북한에 대입해서 보니 북한도 1950년대 주체사상을 내걸었지만 역시나 대외 문제에 있어서는 <타스통신>을 인용하고 있었다. 이처럼 정보질서라는 것은 강력하면서도 무서운 것이다. 국제정치 문제와 관련해 소련이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국제 정치질서에서 대국은 소국들이 자신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정보질서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이러한 정보질서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외신을 인용한 보도를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 러시아가 금방이라도 망할 것 같이 보였다. 이는 우크라이나 배후에 미국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보여주고 싶은 쪽으로만 보도가 되기 때문이다. 예전 정보질서를 주무르는 국가가 미국과 소련이었다면 지금은 미국 또는 중국의 정보질서 속에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15 경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누군가가 보여주고 싶은 국내정치적 모습을 써준 그대로 읊은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 주변에 뉴라이트가 포진해 있는 가운데,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정보질서 속에 대통령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윤 대통령은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이 시작된 19일 국무회의에서 반(反)국가세력이 암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지난해 9월 1일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식에서 이미 공산주의 세력과 반국가세력이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있다면서 이념 공세를 하기도 했다.

뉴라이트가 보여주고 싶은 정보질서 속에서 이야기를 하니 미국과 일본을 추종하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일본과 관계에서도 과거사 문제가 해결됐다는 식의 입장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정부 정책도 이러한 방향에서 전개되고 있다. 지난 7월 한미일 안보협력 프레임워크를 통해 한미일 3국 국방장관이 안보 협력각서에 서명했는데 여기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에 일부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그간 행보를 고려했을 때 독도를 공동 군사 연습장으로 만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동아시아에 극동 사령부를 만들고 그 지휘권을 일본에 넘겨버릴 경우 한국군이 사실상 일본 자위대 지휘를 받게 되고, 독도를 일본의 영향력이 미치는 군사 구역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인데, 뉴라이트 세력은 이것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정보질서를 구축하려는 것 아닌가 싶다.

프레시안

▲윤석열 대통령이 8월 1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을지 및 제36회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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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 한국의 경우를 보면 뉴라이트가 저변으로 확산되는 것보다는 정부 요직에 많이 등용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노태우 정부 때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고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기도 했다. 또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며 미국이 마냥 좋은 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국민들이 알기도 했다.

미국이 지난 2003년 발발한 이라크 전쟁에 실패하고 이후 2008년 금융위기,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당선까지 이어지면서 세계 경영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지자, 한국에 미국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통치 세력을 집권시켜야겠다고 생각했고 그에 따른 결과가 지금 윤석열 정부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정세현 : 미중 경쟁 시대에 미국이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데 그러면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과 원만한 관계를 설정하도록 놔두면 안 된다. 최근 중국 부동산 위기를 많이 언급하는데 이 역시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 속에서 만들어진 부분이 있어 보인다.

그런 큰 틀에서 보면 현 정부의 뉴라이트 세력은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헤게모니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미국이 보여주려는 것만 보면서 대통령을 구석의 골방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건 지도자의 성향도 영향이 있다. 사실 최종 결정권자는 어떤 사실을 인지했을 때 이것이 사실인지 '크로스체크'를 해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 외무부 장관의 이야기만 듣지 않았다. 외교안보수석 이야기도 함께 들으면서 상황을 다각도에서 파악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참모들이 제공한 정보질서 속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독자적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북핵 문제가 있음에도 한미관계가 대미 추종적이지 않을 수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말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설득해서, 북한과 대화하고 북한에 쳐들어가지 않으며 인도적 지원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도출해내기도 했다.

박인규 : 그런데 정부 관료가 '테크노크라트'라고 하더라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부에서 관료를 했던 사람들은 그래도 나름대로의 자기 판단 능력과 실행 능력 같은 게 분명히 있었는데 지금 윤석열 대통령 집권 시기에 보면 우리 외교의 자기중심성을 가질 수 있을 정도의 판단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는 것 같다.

상급자가 시키면 그대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본인이 국가와 민족, 시대를 위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에 대한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갈수록 더 없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과 합의는 했지만 그래도 대놓고 '중일마'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었다.

정세현 : 김영삼 정부 때는 일본과 관계에서 네오콘이 주장하는대로 끌려가지만은 않았다. 미국이 북한과 대화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 하고 우리도 대화에 같이 들어가야 한다고 미국에 항의하기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뉴라이트의 접근이 불가했고 독자적인 판단을 통해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북한과 관계를 원활하게 끌고 가면서 미국과 중국에 발언권을 높이는 식이었는데 윤석열 정부는 일단 대통령 본인이 그런 문제를 고민하려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국가의 정책 결정권자가 고민해야 하는 것을 방기하다 보니 특정 세력의 정보질서에 갇힌 것 같다.

박인규 : 윤석열 개인의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이나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고 미국의 영향력이 대단히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한국 사회 내에서 미국 유학생들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라는 것도 미국만을 바라보는 주요 이유가 되는 것 같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미국식 세계관을 받아들인 학자, 관료, 경제 엘리트들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기도 하다.

경희대학교 사회학 교수 김종영의 저서 <지배 받는 지배자>(2015년)를 보면 한국의 미국 박사는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 3위지만 인구 당 숫자는 세계 최고라고 한다. 2013년 통계 기준으로 유학생 수가 중국이나 인도가 20만 명 내외인데 한국이 7만 명이었다고 하더라. 이들이 한국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우리의 세계 인식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의 뉴라이트가 사실 미국으로 따지면 '네오콘'이다. 미국의 네오콘이 1960년대 베트남 전쟁에서 패해하면서 생겨났다. 베트남 전쟁에서 지는 꼴을 도저히 못보겠는 사람들이 이들인데, 이 중 상당수는 좌파에 '트로츠키스트'들이었다.

이들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 닉슨 대통령이 중국 등과 데탕트(긴장 완화)를 하는 것을 봐줄 수 없다는 식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 공산주의와는 타협하지 않고 때려잡아야 한다는 식인데, 198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해서 2000년대 부시 대통령 집권 때는 정부의 전면에 등장했다. 미국의 대외 정책을 완전히 망쳐놓은 주역인데 오바마와 바이든 집권 때도 이들의 영향력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뉴라이트는 대체로 1987년 민주화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전면에 나선 것은 이명박 정부 때다. 이들 이념은 "서방과 자본주의, 시장주의가 옳다"로 요약된다. 서방이 비서방을 착취한 적 없고 일본이 우리를 문명화시켰고 한일합병조약도 합법이라는 세력인데, 이들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1905년 을사조약 때 우리가 외교권을 뺏겼고 1965년 청구권 협정은 미국이 시켜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일본과 협정을 맺었다. 이런 와중에 내년이 또 을사년인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지금도 군사적 자주권이 없지만 미국과 일본 밑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경제 문제다. 러시아에서 동방경제포럼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아세안(ASEAN‧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 참여하고 있다. 자율적 외교 주체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경제 상황을 보면 이미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협의체)가 G7보다 GDP 규모가 커졌고 중국 대외 무역의 절반이 달러가 아닌 다른 화폐로 운영되고 있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예전처럼 사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중국과 러시아를 지금처럼 대하면 군사 영역이 아닌 경제 전선에서 더 먼저 무너질 수 있다.

뉴라이트가 대외 정책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입장을 편협한 방향으로 강화하게 되면 이후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미국이 일본과 화해를 주문하면서 우리가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이게 한국의 미래를 봤을 때 적합한 선택인지가 의문이다.

정세현 :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지고 있어서 초조해서 그런 것 같다. 몰락의 시간을 늦추기 위한 것인데, 중국을 찍어 누르면 자기들의 몰락이 늦어진다고 생각하니까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을 데리고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는 것이다.

즉 미국이 한국을 찍어 눌러서 한일 간 군사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려는 것이 미국의 힘이 빠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한 행동임을 알아야 한다. 미국이 동맹과 스크럼을 짜고 들어가지 않으면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약해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한데, 뉴라이트 등은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윤석열 정부는 러시아, 중국, 북한 모두 기회만 있으면 군사적으로 괴롭히려고 하니, 이를 막으려면 미국으로부터 확장억제를 보장 받아야 하고 전술핵 재배치를 통해 북핵에 대응한 억지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하라는 건 무조건 따라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 자신의 대리인으로 일본을 내세우려 한다. 여기서 윤석열 정부는 미국이 시키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일본에 굽히고 들어가려 하는 것 같다.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해 '미국식'의 동아시아 평화를 유지한다는 건데, '헛꿈'을 꾸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일본이 뉴라이트와 유사하게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협조하고 있지만 속셈은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일단 미국 휘하에 들어가 있다가 더 이상 미국이 힘을 못쓰면 자기가 아시아의 주인이 되어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을 부활시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뉴라이트는 미국 말을 들으면 된다는 친미주의 성향이 강해서 미국이 하라고 하니까 일본과 손잡고 있는데, 사실 일본은 러일, 청일 전쟁에서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어 한다. 일본의 이러한 속셈을 생각하지 않고, 군사적으로 일본 밑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이러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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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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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 그런데 미국의 대외정책은 베트남 전쟁부터 이미 실패의 연속이다. 이라크 전쟁 일으켰다가 정권을 잡고 있던 소수 수니파를 몰아내고 다수 시아파가 정권을 잡게 해서 시아파의 맹주 국가인 이란에 좋은 일만 하게 됐고,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서 20년 동안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결국 도망치듯 나왔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난민들은 유럽으로 들어가면서 극우화를 촉발시켰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베트남전 이후 성공하지 못한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내세워 러시아를 무너뜨리려는 것인데, 이 역시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트럼프, 남한의 '반국가세력' 될까

박인규 : 앞서 언급했지만 최근 아세안의 외교적 행보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소속 국가 중에 패권국가도 없고 베트남 같은 공산국가도 가입해 있고 군비경쟁도 없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등거리 외교를 하는 등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싱가포르의 외교 책사라고 하는 키쇼어 마부바니 싱가포르국립대학교 리콴유공공정책대학원 학장은 유엔대사도 지냈던 인도 출신 인물인데,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라고 하면서 중추에 아세안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세안 중에 강대국은 없지만 국가들 간 관계가 원만하다고 평가한다. 서아시아, 즉 중동의 경우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동아시아는 선진국이 있긴 하지만 별로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이 마부바니 학장의 평가다. 그는 중국과 남북한, 일본, 몽골 등이 동북아 협의체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도 이와 유사한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역시 동북아 공동체 형성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본의 진보적 정치가나 지식인들은 이를 위해 남한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너무 폐쇄적이고 독재국가고, 중국은 너무 커서 움직이기 어렵고, 일본은 2차 대전 전후로 제국주의 일본이 주장했던 '대동아공영권' 때문에 지역주의 담론을 만들기 어렵다고 한다. 그나마 2000년 이후 남한이 정권교체되고 남북관계가 풀리면서 일본에서도 이러한 논의가 나오게 됐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남한이 앞장서서 동북아 평화와 공동번영을 만드는 이니셔티브를 추진해야 하지 않나 싶다. 식민지배를 겪은 나라 중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루고 선진국이 되어 대외 원조도 하는 나라가 됐는데 미국만 따라갈 수는 없지 않나.

정세현 : 아세안의 경우 식민지로 시달렸던 국가들이라 저항적인 민족주의를 가지고 있다. 또 제국을 이뤘던 국가도 없기 때문에 각자 '동병상련'을 가지고 뭉칠 수 있다.

그런데 동아시아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일본이 있다. 중국도 지금은 미국에 시달리고 있지만 예전에 얼마나 주변국가를 무시했나. 2049년 미국보다 GDP가 높아지면 한, 당, 명, 청의 예전 중국으로 돌아가려 할 수 있다.

아세안은 뭉칠 수 있는 공감대가 있는데 동아시아는 그런 공감대를 만들기가 좀 어려워 보인다. 관념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국가 국력 차이가 너무 커서, 같은 급으로 멤버십을 가지기가 어렵다.

박인규 : 물론 동남아와 동북아는 각자 겪은 역사적 경험 때문에 세계 인식이 좀 다르긴 하다. 동남아 국가들이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서구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면, 동북아의 경우 미국‧영국의 지원을 받은 일본에게 핍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국의 경우 일본의 침략성을 잘 알지만 미국에 대해서는 해방자, 유럽에 대해선 선진문명이란 생각이 훨씬 강하다.

그럼에도 동아시아에는 한일중 3국회의도 있고, 동아시아가 전 세계의 엔진이고 공장이라서 대만이든 남중국해든 한반도든 전쟁이 나면 인류가 끝나는 수준이라 적어도 평화와 공동번영 정도의 공감대는 가져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정세현 : 뉴라이트 때문에 어려운 점도 있다. 주도적으로 대외 정책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미국을 추종하는 식이면 동아시아 공동체에 중국이 포함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동남아 국가들의 지정학적 위치와 한반도는 다르다. 우선 여기는 주변 국가들이 너무 크다. 남북이 먼저 화해협력해서 주변 국가가 남북한 평화를 보장하는 방식을 꿈꿀 수도 있는데, 미중이 저렇게 경쟁하는 와중에 이러한 것을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에 균형자 역할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미국과 중국 모두 '불가근 불가원'해야 하는 상황이다.

박인규 : 세계 정세가 바뀌는 전환의 시대에 한국이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데 그 중 하나로 노무현 정부 때 나왔던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다시 한 번 시도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세계 경제가 두 쪽으로 갈라진다고 하는데, 이미 1974년 '오일쇼크' 때 제3세계 국가들이 신 국제경제질서, 신국제정보질서를 내세웠던 역사도 있다.

지금 중국, 러시아와 비 서방 국가들은 자기들끼리 경제권을 만들려고 한다. 거기에 우리는 참여하지 않아도 될까? 우리처럼 무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 그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남북 화해를 통한 동아시아 평화 구축이 어렵고 미중 화해를 통한 공존도 어려운 상황에서 그렇다고 미국만 일방적으로 추종할 수도 없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남한 정부가 독자적으로 대외관계를 펼쳐나갈 수 있는 여지가 있을까?

프레시안

▲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 ⓒ프레시안(이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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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 지금 정부처럼 뉴라이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한미일 3각 협력이 미국의 대중, 대러시아 압박정책인지도 모르고 참여했고 이를 보고 북한은 남한에 선을 그어버렸다.

다만 북한이 헌법 개정을 통해 두 개 국가를 명시할 줄 알았는데 아직 헌법은 수정되지 않았다. 혹시라도 남한 정권이 바뀌면 대북 화해‧협력 단계로 돌아가려는 것 아닌가 하는 전망을 하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어 보인다.

남한의 정권이 교체된다면 이후 북한에 화해‧협력 정책으로 다가가면서 미중 간 등거리 외교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것도 현실화하려면 양측의 경제력 격차가 크기 때문에 북한이 원하는 부분을 일정 정도 들어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남한 내에서 소위 '퍼주기' 논란이 나오고 국민 여론 악화되고 미국이 말리는 등등의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2019년 1월 남한 정부에서 타미플루를 보내려고 했지만 결국 올라가지 못했는데, 북한은 이걸 보고 상당히 실망한 것으로 보인다. 그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6월 30일 남한의 중재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났는데 이 때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고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면 상황이 좀 달라질 가능성은 있다. 우선 트럼프가 김정은을 워싱턴으로 불러낼 수도 있다. 다만 트럼프 정부의 목표는 비핵화는 아닐 것이다. 트럼프는 '비확산'이 목표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비확산을 전제로 하고 북미관계 개선을 용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남한은 미국에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할 수 있는데 이러면 남북 간 공포의 균형이 일어나 버리니까 남한이 더 이상 미국 무기를 사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미국은 전술핵 재배치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트럼프는 비확산이라도 달성해서 노벨평화상을 받고 재선을 노릴 것이다. 비핵화는 못했지만 북한과 같은 소위 '깡패국가'를 달래서 핵은 더 만들지 말고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폐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타협하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싱가포르 북미 협상 시즌 2가 시작될 것이다. 새로운 북미관계수립,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 한반도 비핵화 이 세 가지가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인데 이 중 비핵화는 비확산 및 ICBM 중단 등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이같은 세 가지 통로를 실현하는 입구로 종전선언을 추진하려 할 것인데, 윤석열 대통령이 종전선언 추진하면 반국가세력이라고 했던 것을 적용해보면 트럼프가 남한의 반국가 세력이 되는 셈이다.

북미관계가 안정되면 지금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옹색해질 수 있는데, 소위 '통미봉남'이 상당 기간 갈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북미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줄어들기 때문에 이른바 '코리아리스크'는 줄어들 수 있다.

비확산 조건 하에서도 남북 간 평화 화해협력을 추진할 경우 북한이 이를 거부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두 국가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인접 국가'끼리 경제적 협력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북한도 미국, 남한과 협력하면 국방비에 돈 적게 쓸 수 있으니까 인민경제로 자원을 돌릴 수 있고다 지방경제 관련해서 '20X10' 정책 추진하려면 자원이 많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북미관계가 개선되면 중국 입장에서는 인중에 비수가 꽂히는 것이다. 평양에 미국 대사관이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건 반대로 이야기하면 북미 관계 개선이 미국 입장에서도 전략적으로 이득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인규 : 트럼프가 대북정책에 실패한 이유가 네오콘을 등용했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이번에도 또 네오콘이 입각하면 어려워지지 않을까?

정세현 : 그건 예단할 수는 없는데 실패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조심할 것으로 본다. 트럼프는 중동 쪽에서 이란, 이라크 못지않게 악의 축으로 분류된 북한과 관계 개선을 통해 남북한 평화 및 중국의 부상을 막을 수 있는 전초기지를 서울에서 평양으로 옮기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면 서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더 지속될 수 있다.

물론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될 경우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해리스는 트럼프와 차별화를 위해 김정은을 '폭군'이라고 규정하고 비굴하게 굴복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해리스가 당선되면 김정은과 정상회담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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