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18 (수)

햅쌀 10만톤이 사료라니, 영농형 태양광이 답이다 [아침햇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영농형 태양광 시설이 설치된 충북 오창읍의 논에서 농민이 콤바인으로 가을 걷이를 하고 있다. 한국영농형태양광협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이봉현 | 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9월인데도 햇살이 맹렬해 기후변화가 실감 났다. 그 볕을 받아 벼가 익고, 논 위에 드리운 태양광 패널에서는 전기가 생산됐다. 논이나 밭에 설치해 농사도 짓고 햇빛발전도 하는 영농형 태양광을 보러 찾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객현 2리. 이 마을에는 2019년 말 한국동서발전이 농지 3곳에 총 300kW 규모의 영농형 태양광을 시범 설치했다. 발전수익은 마을에 기증하는데 연간 1천만원 정도이다. 현장을 보여준 김태영 이장(64)은 “곡물 수확량이 20% 정도 줄어들지만 전기에서 나오는 수익이 더 크다”며 “처음엔 반대하던 주민도 이젠 좋아한다. 주변 마을들도 기회가 오면 하겠다고 나선다”고 말한다.



여기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파주시 농업기술센터 분소. 태양광 패널 아래 콩이 자라고 있고, 바로 옆 노지에도 콩이 심겨 있다. 영농형 태양광으로 일조량이 30%쯤 줄어드는 데 따른 작황 변화를 비교·측정하는 중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0년부터 파주, 보성, 제주 등 전국 5곳에서 영농형 태양광 아래서 잘 자라는 지역 작물과 재배방법을 실증 연구하고 있다. 연구자인 강인철 주무관은 “고추냉이와 같이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이나 단가가 높은 작물을 심는 게 유리하다”며 “좀 더 나아가 태양광 구조물을 활용해 정보통신기술이 결합한 스마트팜으로 발전시킬 여지도 있다”고 한다.



한겨레

파주시 적성면 객현2리 김태영 이장이 마을에 설치된 영농형 태양광 발전시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봉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영농형 태양광은 도입을 위한 준비가 많이 진척됐다. 정부, 대학, 협동조합 등이 2016년부터 전국 70여 곳의 시범사업을 통해 경제성, 작물 수확률과 품질, 경관 변화 등을 관찰해 왔다. 그 결과 식량 안보를 위한 농지 보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에너지 전환, 농가소득 증대 등 주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방안이란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2017년 100kW 규모의 영농형 태양광을 시범 설치해 운영 중인 김창한 한국영농형태양광협회 사무총장은 “지금까지 1700명 정도가 보고 갔는데, ‘이걸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며 “경관 훼손을 우려하지만, 익숙해 진 비닐하우스보다 나쁘지 않다” 고 말했다. 일본, 유럽 등 해외에서도 성공적인 도입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



기후위기와 농촌소멸이라는 국가적 과제에 대응하는데 영농형 태양광의 잠재력은 돋보인다. 국내농지의 5%에만 설치해도 현재 돌아가는 태양광 전체 발전량보다 큰 34GW가 나온다. 정부의 탄소 중립 목표에 견줘 매년 3.2GW의 태양광 발전설비를 늘려야 하는데, 영농형이 아니면 세울 땅이 없는 실정이다. 고령화된 농촌에 연금처럼 고정 수입이 생기는 것은 장점이다. 논 700평에 100kW급 영농형 태양광을 설치하면 투자비, 이자 등 모든 비용을 제하고 연 1천여만 원의 수익이 생긴다. 소출은 곡물에 따라 10~20% 줄지만 전기에서 나오는 수익이 이를 만회하고도 남는다.



한겨레

파주시 파평면 덕천리에서 파주 농업기술센터가 실증 비교시험을 하고 있는 영농형 태양광 시설 아래 콩이 자라고 있다. 이봉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본격 확산을 가로막는 걸림돌도 많다. 지금은 논·밭 위에 영농형 태양광을 운영할 수 있는 기간이 관련법 상 8년으로 제한된다. 1~2억원을 투자해 놓고 8년 만에 철거하면 타산이 맞지 않는다. 이를 20년 이상으로 늘렸을 때는 경제성이 있다. 태양광에 대한 농촌의 거부감도 여전하다. 그간 산지와 농지에 무분별하게 설치된 농촌 태양광과 영농형 태양광이 다르다지만 하루아침에 인상이 바뀌지 않는다. 그 때문에 지자체마다 설치 이격거리 제한을 해 태양광이 설치되기 어려운 농지도 많다. 가장 큰 난관은 송배전망 연결이 제때 안되는 것이다. 이미 태양광이 많은 전남 등은 한국전력이 계통연결을 추가로 하지 않고 있다. 생산지와 소비지가 가까워야 좋은 태양광 발전의 특성을 살려 분산형 에너지 체제 구축이나 알이(RE) 100 대응이 필요한 기업의 지역 유치 등 좀 더 ‘큰 그림’이 함께 나와야 한다.



지방정부는 적극적이다. 농가소득 증대, 청장년 농촌 유입, 알이 100 기업 유치 등으로 소멸위기에 놓인 농촌을 살릴 최적의 방안이라고 보고 있다. 한 예로 전라남도는 영광 월평마을 염해간척지에서 마을주민 협동조합 방식으로 3㎿급 상업단지를 최초로 건설한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이에 발맞춰 지난 4월 활성화를 위한 전략을 내놨다. 외지인이 아닌 농업인만 설치할 수 있게 하고, 우량 농지인 농업진흥구역을 제외한 땅에만 23년간 운영할 수 있게 하며, 밀집되도록 재생에너지지구를 지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해당 농지에 농업직불금을 계속 지급하고, 생산된 전기를 판매할 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포함됐다.



이제 공은 국회에 가 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위성곤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영농영태양광 지원 법안이 있다. 두 법안은 농지전용 기간을 20~23년으로 연장하는 등 농림부의 전략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특별법이다. 연말에는 상임위에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이지만 장담은 어렵다. 이전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5건 발의됐으나 제대로 논의도 안 된 채 임기종료로 폐기됐다.



며칠 전 정부는 올해도 쌀이 과잉생산됐다며 햅쌀 10만톤을 수매해 즉시 사료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런 시대에 영농형 태양광은 농촌문제 해결과 에너지 전환을 함께 달성하는 좋은 정책이 될 수 있다. 이제 국회가 일할 차례이다. bhlee@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