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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수)

어설픈 검찰개혁, 검찰-보수정당 밀착 불렀다 [이철희의 돌아보고 내다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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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보수에 검찰은 민주당의 위선·부패를 파헤치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보수가 인적·사상적 공백을 검찰로 메꾼 이유다. 검찰과 보수정당의 밀착엔 진보정부의 검찰개혁이 두차례 실패한 탓도 있다. 어설픈 개혁이 검찰과 보수정당이 손잡도록 만들었다.





한겨레

2012년 8월 새누리당은 대선자금 수사를 주도하고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에 발탁됐던 안대희 전 대법관을 정치쇄신특별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같은 해 9월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안대희 위원장이 박근혜 대선 후보로부터 대통령 선거대책기구 임명장을 받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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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 때문에 야당이 탄핵까지 몰고 간 거다. 그게 근본 원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의 회고록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에 나오는 내용이다. 노무현 탄핵 때문에 한국 정치는 일대 격변을 겪었다. 탄핵의 후폭풍으로 의회 권력이 교체됐고, 보수의 몰락이 시작됐다. 그 탄핵의 원인으로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거론한 것이다. 검찰 수사 때문에 한국 정치의 꼴과 행로가 달라졌다는 얘기다.



민주화 이후 권력의 총아는 검찰, 그중에서도 특수부 검찰이었다. 검찰이 자신의 힘을 자각한 때는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다. 그 정부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했다.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5·18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진압한 책임자의 단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995년 7월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처벌을 거부했다. 그런데 3달 뒤 박계동 의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을 폭로하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11월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구속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검찰 내 주류 세력의 판도가 바뀌어 ‘공안’이 밀려나고 ‘특수’가 부상했다. 사상 최초로 전직 대통령을 소환해 조사하고, 구속까지 함으로써 검찰은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대통령까지 감옥에 보냈는데 이제 건드리지 못할 게 뭐가 있겠느냐’는 기류가 생겼다.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은 “검찰의 배포를 키운 사건”이었고, 검찰은 “그때부터 겁이 없어졌다.” 국민 여론도 정·재계 거물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떠받치는 뒷배가 되어 주었다.(중앙일보플러스, ‘특수부 사람들’)



따지고 보면, 노태우·전두환에 대한 사법처리가 검찰의 주도하에 의해 이뤄진 일은 아니었다. 지방선거 참패 후 당내 갈등으로 위기에 몰린 김영삼 대통령이 그간의 입장을 바꾸어 국면 전환을 위한 카드로 전직 대통령 때리기를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검찰로선 불과 넉달 전의 불기소 처분 입장을 바꿔야 하는 굴욕이었지만 이 굴욕을 통해 그들은 정치를 학습했다. 민심을 얻고 정치를 움직이는 방법도 깨달았다. 이 경험을 계기 삼아 검찰은 1997년 소통령이라 불린,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을 별건 수사로 구속하는 결기를 보일 수 있었다. 이는 비록 임기 말에다 지지율이 바닥이긴 했지만 검찰이 아직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선 최초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때부터 검찰의 기관 담력이 커졌다. 법을 무기로 누구든 제압할 수 있다는 명제를 의식화해 나갔다.



검찰이 정치를 재단할 수 있는 결정적 국면은 사실 1997년 대선 때 주어졌다. 당시 여당인 민자당(현 국민의힘)이 야당의 유력 후보인 김대중의 비자금을 폭로하면서 검찰 수사를 강하게 압박했다. 만약 이때 검찰이 수사에 응했더라면 1997년 대선의 승자가 바뀌었을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얘기를 종합하면, 당시 검찰 내에서 수사 강행과 유보 사이에 의견이 엇갈렸으나 김태정 총장이 최종 중단을 결정했다고 한다. 김영삼 대통령도 “비겁한 짓”이라며 이를 지지했다고 전해진다.



수사 유보로 정권 교체, 김대중 정부 출범의 지분을 챙긴 검찰은 심리적 독립성을 획득했다. 부패한 정치권을 상대하기에 자신들의 파워가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프라이드도 가졌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 후기에 있었던 ‘홍삼 트리오’(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에 대한 수사도 이런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검찰의 이 자신감이 우월의식으로, 수사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소명의식으로 업그레이드한 계기가 노무현 정부의 대선자금 수사였다. 대선자금 수사를 통해 검찰은 다수당이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대통령까지도 위축되게 만들었다. 노무현 정부의 검찰개혁 드라이브도 막아낼 수 있었다. 이제 검찰의 힘을 제어할 수 있는 기관은 없었다. 사법부는 무기력했다. 국회가 입법을 통해 견제할 수 있었으나 여야로 나뉘어 다투느라 도낏자루 썩는 줄 몰랐다. 그때 한나라당이 탄핵이 아니라 검찰개혁에 나섰더라면 한국 정치는 지금보다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결국 노 대통령이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를 용인하고, 한나라당이 탄핵으로 이에 맞선 구도는 한국 정치를 심각하게 후퇴시켰다.



지금처럼 민주당과 검찰이 서로 화해할 수 없는 갈등에 빠져든 계기는 노무현 정부의 검찰개혁이다. 노무현 정부는 검찰개혁을 포함한 사법개혁을 시그니처 공약으로 내걸었다.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이니만큼 검찰의 저항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검찰도 마냥 저항만 할 수는 없으리라 예상됐다. 웬걸, 검찰은 완강하게 버텼고, 더 나아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통해 역공을 취했다. 2003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정치권을 초토화했다. 검찰은 제도적 권한에 더해 여론 호응이란 정치적 자산까지 얻음으로써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민주당 대 검찰의 장기 대립이 핵심 갈등 축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보수정당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로 궤멸하는 수준의 피해를 보았다. 적폐 수사로 두 전직 대통령뿐만 아니라 숱한 보수 엘리트들이 퇴출당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보수의 인적 공백을 검찰이 메웠다. 검찰이 민주당과 대립하면서 자연스레 검찰 출신 인사들의 보수정당 진출이 줄을 이었다. 대선자금 수사를 주도하고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에 발탁된 안대희가 대표적이다. 민주당이 검찰개혁을 강하게 외치면 외칠수록, 밀어붙이면 붙일수록 검찰과 보수정당의 밀착은 강화됐다. 반민주당이 밀착의 명분이자 동력이었다.



보수정당의 사상적 공백도 작용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성장과 지역주의, 반공에 기대왔다.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이 불가능해지고, 지역주의도 퇴색하는 데다 평화에 대한 선호가 강해짐에 따라 보수는 ‘새로 고침’에 직면했다. 불행하게도 그들의 선택은 진화가 아니라 미래를 상징하거나 비전을 가진 정치인, 예컨대 유승민이나 이준석을 쫓아내는 퇴화였다. 평화나 복지 등 시대 과제를 반영한 정책들도 폐기·축소했다. 사상적으로 공허한 정당이 되었으니 누군가 또는 무엇에 대한 반대만 일삼는 ‘반’주의(anti-ism)에 빠질 수밖에. 공허한 보수에 검찰은 민주당의 위선·부패를 파헤치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보수가 인적·사상적 공백을 검찰로 메꾼 이유다. 근래 보수정당은 비전이나 정책 없이 오직 권력에 탐닉하는 이익공동체로 전락하고 있는 느낌마저 준다.



과거엔 보수가 주류였지만 지금은 진보가 주류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검찰이 이 진보와 격렬하게 맞짱뜨면서 자연스레 그들이 국정의 관제권, 정치의 조타권을 행사하고 있다. 독립성·중립성을 전가의 보도로 내세우는 기관이라 조심할 법도 한데, 검찰은 ‘거침없는 하이킥’이다. 이도 놀랍지만 뒷전에서 겁먹은 졸개처럼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보수정당의 모습도 못지않다. 어쨌든 민주당 대 검찰 간의 하이텐션이 줄어들지 않는 이상 검찰의 쓸모와 그에 따른 위세는 유지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경화 내지 팬덤화도 막거나 탓하기 어렵다.



검찰과 보수정당의 밀착엔 진보정부의 검찰개혁이 두차례 실패한 탓도 있다. 어설픈 개혁이 검찰과 보수정당이 손잡도록 만들었다. “정치 경험과 국정에 대한 비전, 국가 경영에 관한 철학이 전혀 없는 검찰 내 사조직 집단이 개혁의 대오가 흐트러진 틈을 타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정권 장악 시나리오를 현실로 불러낸 것은 검찰개혁을 외치면서도 검찰의 달콤한 유혹과 단절하지 못한 ‘입진보’였다.”(이춘재) 그렇다. ‘때려잡자 검찰’의 태도와 방식으로는 검찰을 이길 수 없다. 당할 만큼 당했는데도 어째 여전히 그대로다. 현재 미국 대선에서 유행하는 말처럼, 이쪽이나 저쪽이나 참 이상하고(weird), 기이할(creepy) 따름이다.



한겨레



이철희 | 방송에서 정치평론을 하다 정치에 나서 20대 국회의원, 문재인 정부 마지막 정무수석을 지냈다. 2020년 ‘대통령 탄핵 결정요인 분석: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 비교’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인자를 만든 참모들’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등의 책을 냈고,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 등의 역서가 있다. 우리 정치가 어쩌다 이렇게 나빠졌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나아질 것인지 등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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