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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수)

불 켜보고 물 틀어보고…대통령 관저 준공검사조서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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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023년 9월28일 영상 메시지를 통해 한복 차림으로 추석 대국민 영상 메시지에서 명절 인사를 하는 장면.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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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살고 있는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의 준공검사조서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핵심 국가시설이 제대로 지어졌는지 따지는 준공검사를 아예 안 한 것이다. 2022년 윤 대통령 당선 직후 이뤄진 관저 증축·보수 공사는 김건희 여사와 친분이 있는 인테리어 업체가 주도했다. 발주처인 행정안전부와 대통령비서실은 법이 정한 준공검사를 하지 않고도 ‘모든 절차를 밟았다’고 서명했다. 관저 증축 내역이 담긴 최종 도면도 작성되지 않았다.



감사원은 2022년 10월 참여연대의 국민감사청구로 시작한 대통령 집무실·관저 이전 과정에 대한 감사 결과를 12일 공개했다. 감사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대통령 경호처 간부가 방탄창호 설치 공사비를 부풀려 15억7천여만원의 국고 손실이 발생했다며 경호처에 파면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저 이전과 관련해선 계약부터 시공, 준공 절차 전반에 걸쳐 법령을 위반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관련자를 주의 조처하는 데 그쳤다.



국가와 민간업체 사이에 이뤄지는 정상적 공사라면 계약→설계→시공→준공 절차를 밟는다. 하지만 한남동 대통령 관저는 공사가 한참 진행됐거나 마무리되는 시점에 공사대금 지급을 위해 형식적인 계약서가 만들어졌다. 2022년 5월25일 ‘21그램’과 1차 인테리어 공사 계약(14억4천만원)이, 8월16일 ㅇ종합건설과 2차 증축 공사 계약(16억4천만원)이 체결됐다. 21그램은 김 여사가 운영한 코바나컨텐츠의 후원업체였다.



2022년 4월 말 공사업체로 선정된 21그램은, 윤석열 대통령 임기가 시작(5월10일)된 직후인 5월12일에 견적서를 제출하고 사흘 뒤인 15일 공사에 착수하는 등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증축 공사를 할 수 없는 인테리어업체인데도 5월 중순에 이미 증축 및 구조 보강 공사가 이뤄졌다고 한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 등은 민간업체가 공사를 마치면 해당 업체 등이 입회한 상태에서 계약서·설계서 등에 따라 제대로 지어졌는지 준공검사를 받게 한다. 내구성 등 건물 안전성을 확인하는 최종 절차인 셈이다.



하지만 관저 준공검사는 없었다. 당연히 준공검사조서도 작성될 수 없었다. 그러나 1·2차 계약에 따른 두건의 준공검사조서가 버젓이 만들어졌다. 21그램 등에 공사대금을 지급하기 위해서였다. 준공검사조서에 서명한 이들은 감사원 조사에 “준공검사 절차는 하지 못했다” “준공검사 절차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하지도 않은 1차 계약 준공검사조서에 단독 서명한 행안부는 ‘합리적이지 않다’며 2차 계약 준공검사조서에는 비서실에 공동 서명을 요청했다. 그런데도 감사보고서는 “관련 업무를 소홀히 했다”고만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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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은 준공검사를 하지 않은 이유로 ‘비서실과 경호처가 안전점검을 직접 했기 때문’이라는 해명을 감사보고서에 자세히 담았다. 점검 날짜는 7월29일이었다. 비서실은 감사원에 “건축물의 도장, 방수 등 마감 상태와 상수도 가압펌프 등의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한편, 점등이 불량한 전기 시설, 소방 감지기 등에 대한 개선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내구성 등 안전도 확인이 중요한 준공검사와는 큰 차이가 있다. 감사원은 “통상의 준공검사 순서와 완전히 동일하게 이뤄지지는 못했으나, 준공검사 취지에 맞춰 필요한 절차를 각 단계에서 성실히 수행했다”는 비서실 해명을 전했다.



준공검사를 건너뛰게 되자 설계·시공업체들은 법에 따라 실제 공사 내역을 정확히 반영해 작성해야 하는 최종 준공도면 등을 행안부에 제출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브리핑에서 ‘대통령 관저 도면이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질문에 “원칙적으로는 있어야 한다.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고 최종하고는 안 맞는다는 의미”라고 했다. 감사원은 한겨레에 “최종 도면이 없는 것은 맞지만, 공사 중간중간 행안부와 경호처에 제출한 도면들이 있다. 모두 폐기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감사보고서에는 관저에 증축된 공간이 무엇인지 나와 있지 않다. 감사원은 ‘드레스룸·사우나실 등이 증축됐는지 확인했느냐’는 물음에 “국가보안시설이라 어떤 용도의 구조가 있는지 감사보고서에 담지 않았다”고 했다. 관가에서는 “최고 보안을 요구하는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공사보다 주거가 주목적인 관저 공사가 더 폐쇄적으로 진행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준공검사조서 조작은 허위공문서 작성에 해당한다. 이를 지시한 이에겐 직권남용 혐의를 물을 수 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당시 김대기 비서실장, 이상민 행안부 장관까지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관저 공사에 개입한 의혹이 짙은 김 여사는 직권남용죄의 공범으로 검토될 수 있다”고 했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와 관련해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앞으로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라”며 주의 조처만 하고 끝냈다. 관저 이전 실무를 총괄했던 김오진 당시 대통령실 관리비서관에게는 관리·감독 책임을 물어야 했지만, 공직에서 물러났다는 이유로 인사혁신처에 인사자료통보(재취업 때 참고)를 하는 데 그쳤다. 김 전 비서관은 국토교통부 1차관으로 영전해 지난해 12월 퇴직한 뒤 최근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응모했다. 대통령실은 감사원 감사 결과를 두고 “특혜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는 입장을 냈다. 검찰은 이날 집무실·관저 이전 과정에서 공사업체와 유착한 의혹을 받는 경호처 간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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