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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수)

[권석천의 컷 cut] 등이 당신의 모든 걸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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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애니메이션 영화 ‘룩백’에는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 후지노가 등을 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만화가를 꿈꾸는 소녀 후지노가 창문 앞 책상에 앉아 연필로 선을 긋고 지우개로 지우는 동작은 모두 등의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등은 필사적이 된다. 또래인 쿄모토의 그림 실력에 충격을 받고 그림 공부에 매달린 것이다.

등 너머 창밖으로 펼쳐지는 사계절의 변화는 그가 쏟은 시간들을 이야기한다. 은둔형 외톨이였던 쿄모토와 친구가 되어 함께 만화를 그리면서 후지노의 등은 또 다른 역할을 한다. 후지노가 쿄모토의 손을 잡고 앞장서 달려갈 때 쿄모토는 그의 등을 보며 따라간다. 이제 그의 등은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쿄모토가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해준 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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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앞모습에만 신경을 쓸 뿐 뒷모습이 어떤지는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뒷모습인지 모른다. 무엇엔가 몰두하고, 다른 이를 도우려고 손을 내밀고, 어떻게 할까 골똘히 생각하는 뒷모습이 하나하나 꼼짝없이 노출된다. 등은 자신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준다.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처럼 등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닐까.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면 등을 지켜보는 마음들 때문이다. 쿄모토가 자신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지 않았다면 후지노는 계속 정진하지 못했을 것이다. 둘이 협업하는 경험이 없었다면 창작의 새로운 즐거움에 눈뜨지 못했을 것이다. 쿄모토는 단순히 후지노의 등을 따라간 게 아니라 그를 나아가게 했다.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더 잘 그리고 싶어서’, 누군가는 ‘더 잘 쓰고 싶어서’, 누군가는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애쓰고 있을 것이다.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고통과 좌절을 오직 등의 힘으로 밀고 나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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