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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수)

’도넛 도시’ 국내서도 가능할까…지구생태와 공존 경제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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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11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에서 열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도넛 도시 포럼’의 참석자들이 도넛 모양을 만들며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녹색전환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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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저출생, 기후위기 등 다양한 사회, 경제적 문제가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 그중 가장 크게 타격을 받는 곳이 바로 지역이다. 과거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처방했던 기업 투자 유치, 산단 혹은 대규모 신도시 개발 정책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 지금과 같은 저성장 시대에 자원 투입 여력도, 기대효과도 예전만 못하다. 성장만을 전제로 한 지역 개발 정책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소멸의 위기에 처한 지역을 되살리는 해답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지난 11일, 생태적 한계를 지키며 사회적 기초를 높이는 지역 만들기를 고민하는 국제포럼인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도넛 도시 포럼’이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에서 열렸다. 녹색전환연구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협동조합 빠띠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지구의 생태적 한계 안에서 사회적 기초를 확보하며 사회의 번영을 누리는 경제 모델이 도넛 경제학이다. 2017년 영국의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가 지구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무한 경제 성장을 전제로 하는 전통적 경제학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들고 나온 개념이다. ’도넛 도시’는 도넛 경제를 도시와 마을에 적용한 사례다. 현재 도넛경제액션랩을 중심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덴마크 코펜하겐, 벨기에 브뤼셀 등 세계 40개 이상의 도시에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이날 첫 번째 발제를 맡은 레오노라 그레체바 도넛액션랩의 도시와 지역 책임자는 “지역에 도넛 경제를 적용하려면 지역의 환경, 사회적 인프라, 주민들의 요구를 모두 고려한 모델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도넛 도시는 지역의 자연환경을 개선하고 유지하며, 주민들의 건강한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나아가 인접 지역과 국가, 세계적으로 우리 마을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를 고려하는 장기적 비전을 함께 그려가는 작업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도시의 종합적인 비전을 도넛 모델을 통해 제시한 대표적인 도시다. 2020년 기후위기와 코로나의 이중 위기를 맞은 시는, 도넛 경제를 도입해 도시의 사회•경제적 회복과 지속가능성을 꾀하고자 했다. 사회주택을 확산해 주거 안정을 높이고, 식료품, 의류의 순환경제 공급망을 마련하는 등 도시의 전환을 위한 프로젝트 사업을 도넛 경제 안에서 총체적으로 추진했다. 그레체바 책임자는 “도넛 모델은 지역 주민뿐 아니라 건축가, 운송책임자, 도시 행정가 등 각 영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을 도넛 비전 아래 통합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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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보람 녹색전환연구소 지역전환 연구팀장이 국내 도넛모델 적용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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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도넛 도시의 실험이 국내에도 이뤄질 수 있을까. 서울 노원구와 충청남도 보령시를 대상으로 도넛 경제를 적용한 녹색전환연구소의 연구결과도 이날 함께 소개됐다.



사회, 생태, 지역, 지구라는 4개의 렌즈를 통해 지역의 현재를 진단하고 지역 환경의 한계 안에서 사회적 기초를 늘리는 방향으로 도시 비전을 설정하는 작업이 두 지역에서 이뤄졌다. 서울 타 자치구에 비해 노후한 아파트 중심의 주거환경과 서울 중심지로의 접근성 중심으로 계획된 구내 교통 접근성의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진단된 노원구에서는 주거의 다양성과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주거 정책과 구내 대중교통의 개선 정책이 제안됐다. 반면,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등 에너지 전환의 충격으로 인구 10만 규모가 무너지고 있는 보령시는 도시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떨어지는 축소도시의 현황에 맞춘 탄소 중립 전략과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이끈 배보람 녹색전환연구소 지역전환 팀장은 “국내에 도넛 모델이 적용•확산되려면, 지역의 비전을 제시하고 종합적인 프레임워크를 수용할 수 있는 지역 주체들과 지역의 다양한 정책들을 도넛 모델의 틀 안에 통합할 수 있는 행정의 참여와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도넛 모델의 관점에서 지역의 탄소 중립 정책을 실천하는 광명시의 사례도 함께 소개됐다. 박승원 광명시장은 시의 그린 리모델링 정책을 소개하며 도넛 모델에 기반을 둔 도시 비전이 제대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지역 주체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박승원 시장은 “정권의 변화와 상관없이, 시민들과 함께 그린 도시의 비전이 장기적으로 추진되기 위해 시민사회 힘을 키워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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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발제를 맡은 박승원 광명시장이 도넛 모델 관점에서 광명시 탄소중립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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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도넛 모델의 토대가 되는 데이터와 영역별 지표에 대한 문제점도 함께 제기됐다. 최경호 주거중립성 연구소장은 “주거와 자산, 교통과 노동시장 등 도넛을 구성하는 영역 간 연계성과 지역의 특성이 데이터와 지표에 충분히 반영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지역 주민, 나아가 인접 지역과의 연합 워크숍 등 다양한 시민 참여를 통해 보완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선경 씨닷 대표도 “도넛 모델을 지역에 적용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의 현재를 같이 확인하고, 미래를 고민하는 시민들의 학습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마지막 토론자인 양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변동팀장은 “도넛 도시는 현재 지역 위기를 타개하는 데 핵심인 지역 공동체 회복을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지역의 다양한 공동체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행정의 리더십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더나은사회연구센터장 ek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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