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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수)

[횡설수설/정임수]범정부 TF까지 꾸려진 ‘빈집’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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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인구 감소를 먼저 경험한 선진국들 사이에서 빈집은 오랜 골칫거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등은 2000년 전후로 일찌감치 ‘빈집세’(Empty Homes Tax)를 도입했다. 2년 이상 비워 둔 집에 많게는 지방세를 300%까지 중과하는 식인데, 집을 오래 비워 두지 말고 빨리 팔거나 세놓으라는 채찍이다. 네덜란드,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선 ‘1유로 프로젝트’가 활발하다. 리모델링을 조건으로 단돈 1유로에 처치 곤란한 빈집을 팔고 싶은 주인과 시골 주택을 싸게 사고 싶은 사람을 맺어주는 식이다.

▷빈집 문제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일본은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빈집(아키야·空き家)이 900만 채에 달한다. 이 중 별장이나 임대·매매용 등을 빼고 사용 목적 없이 방치된 빈집이 385만 채인데 20년 새 갑절 수준으로 불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빈집특별법’을 만들고 지방자치단체마다 입주를 원하면 공짜나 헐값에 살 수 있는 ‘아키야뱅크’(빈집은행)를 운영하고 있지만 급증하는 빈집을 따라잡을 수 없는 처지다.

▷저출산·고령화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도 빈집이 빠르게 늘고 있다. 전국 지자체마다 폐가가 된 시골 빈집 처리로 골머리를 앓은 지 오래다. 재개발·재건축 계획이 틀어져 도심 곳곳에도 흉물로 변해 버린 빈집이 적지 않다. 국내 대도시 가운데 빈집 1위는 “노인과 바다만 남았다”는 말이 나오는 부산이다. 전국 광역시 중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탓에 부산 인구는 서울의 3분의 1인데, 방치된 빈집은 훨씬 많아 5000채가 넘는다고 한다.

▷전국 곳곳의 낡은 빈집에는 쓰레기가 쌓여 악취가 진동하고 쥐와 벌레가 들끓는다.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간 방치된 빈집이 이웃의 안전을 위협하는 건 물론이고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마을에 빈집 하나가 생기면 주변에 빠르게 빈집이 생기는 전염 효과도 강하다. 빈집이 늘면 주변 아파트 값이 3000만 원 가까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을 빌리자면 버려진 빈집 하나가 동네 전체를 슬럼가로 만드는 현상이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데도 정부의 빈집 실태 파악도, 관리도 둘쑥날쑥이었다. 통계청의 2020년 주택총조사에서 전국 빈집이 151만 채인데 미분양·신축 등이 모두 포함됐다. 1년 이상 아무도 거주하지 않거나 사용하지 않는 ‘진짜’ 빈집은 13만2000여 채인데 이마저도 도시 지역 빈집은 국토교통부가, 농어촌 빈집은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가 각각 관리해 왔다. 이들 부처와 행정안전부가 포함된 범정부 태스크포스(TF)가 지난달에야 꾸려져 빈집 철거 등 정비에 나선다고 한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는 일부터 서둘러야 한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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